명절이 코 앞이다. 대로변에 많아진 차량으로, 길거리에 늘어난 노점상들로,

백화점 벽에 걸린 커다란 광고판으로 명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대기를 떠다니는 찬 공기 속에도 분주함의 분자가 섞여 떠다니는 것만 같다.

 

아들이 호주에서 돌아온지 꼭 1주일 째, 한 사람의 들고 남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

1년간 익숙했던 패턴의 깨어짐이 작은 혼란을 가져온다. 어딘지 모르게 두서가 없다.

여행 뒷정리로 꼬박 집에만 박혀 있던 아들이 모처럼 나들이를 가길래,

오늘은 간만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자, 마음 먹고 벼르던 자료 정리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다. 내일 광주 출장을 가야 하니, 오늘 쇼핑을 하자는 거다.

결혼하고 25년간 한 해에 꼬박 2번 걸러본 적 없는 일. 형제들 선물 챙기기.

인정으로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의무사항처럼 굳어져 버렸다.

문화는 이런 식으로 형성이 되는 것인가보다.

 

15년 전쯤이었나, IMF로 온 나라가 홍역을 앓던 해에 회사를 그만 두고 실업급여로 살던 시절에도,

컨설턴트로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간 직업 없이 떠돌던 8년 전 쯤에도 빠트려 본 적 없던 일이다.

명절은 언제나 선물세트의 목록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어 .

연휴 마지막 날 부산스러운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을 거쳐

방바닥에 퍼지면 끝이 나곤 한다.

한 해 두 번의 명절을 거치니, 선물을 결정하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지난 번에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가격은 비슷하고 받는 사람의 마음에도 흡족할 만한, 딱 떨어지는 것.

 

이미 각오했던 일이지만 그런 '행운'은 없다.

 

매장을 몇 바퀴나 돌고 다시 의논하고 그러면서도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선택을 위해 들이는 에너지에 저절로 진이 빠진다.

오늘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 날이고 그것을 위해 조용한 시공간이 필요했었는데

속절없이 빼앗기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간신히 결정을 하고 나니, 점입가경. 이번에는 친구 차례다.

재작년 고등학교 단짝을 30년 만에 해후한 남편은 그 친구들과의 부부동반 모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양보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명절에 만나기로 했는데, 명절이니 빈손이고 싶지가 않다는 것.

한숨이 저절로 나오지만 나로 인해 한숨 나는 일이 남편에게도 많을 터이니 속으로만 삼킨다.

 

장장 세 시간이 넘는 쇼핑을 끝내고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향하면서,

오늘 12시 안에 숙제 하기는 다 틀렸다…” 며 볼멘 소리를 했더니,

오늘은 시장을 보러 갔다. 명절이어서 손님이 참 많았다. 물건 고르는 게 쉽지가 않았지만,

장보기는 참 즐거운 일이다. ~~” 이라고 올리란다. 이왕이면 그림도 그려넣어서.

그렇게 장난 치는 곳이 아니야~~” 가벼운 퉁박과 웃음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어쨌든 명절 시작의 첫 의무를 이행했고, 핑계 김에 숙제도 마치는 것으로

힘든 하루의 일과를 접고, 힘들 며칠 간의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