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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venus transit 보신 분 계신가요?

구름이 오락가락 했지만 얼마전 구입한 태양망원경으로  관측했답니다.

그저 붉은 태양 안을 조그만 검은점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에 불과해서 것도 아닌 같은데 이렇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걸까요? 물론 이번에 못 보면 10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아무리 드문 천문현상이라도 별 의미가 없다면 그다지 흥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사실 현재의 venus transit 천문학에서 아주 사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250 전에는  event 당시의 가장 중요한 천문 현상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761...

유럽대륙 아니라 세계적으로 강대국 거의 모두가 연루된 7년전쟁이 한창 진행 중일 때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암투속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고... 있다 후회하고... 그럴때입니다.

에드문드 핼리(핼리혜성의 핼리...)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이용해서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있다고 발표한 이래 1761년의 venus transit 과학계의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 였습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1 했을때 태양으로부터 행성까지의 거리 비례는 케플러의 3법칙을 통해서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지구에서 금성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있다면 지구에서 태양 거리를 있게 되고, 이를 안다면 별의 연주시차를 이용해서 밤하늘에 보이는 별까지의 거리를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태양계의 크기를 실제로 있게 되는 것도 보너스로 따라 옵니다. 사실 전에도 지구-태양의 거리를 재려는 여러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1672 카시니(토성띄의 카시니 간극을 발견하신 바로 ...) 화성의 연주시차를 파리와 남아메리카에서 동시에 측정하기 전까지의 시도들은 그다지 과학적인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카시니의 방법도 측정방법과 기구의 한계로 인해서 아주 정확한 측정은 아니었지만 실제 거리의 10% 정도의 오차로 접근했었습니다.

 

핼리는 이전에 그레고리(Gregorian 반사망원경을 발명하신 ...) 주장한, 수성의 태양면 통과를 지구상의 여러곳에서 측정하면 지구-태양 거리를 계산  있다는 방법을 믿고 아프리카 앞바다의 세인트 헬레나섬(나중에 나폴레온이 유배되는 바로  외딴 )에서 수성의 transit 측정합니다. 하지만 측정값이 정확하지 않았고, 자신 이외에는 명만 transit 측정했기 때문에 지구-태양간의 거리를 계산하는데 실패합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논리로 금성의 transit 이용하면 정확히 지구-태양의 거리를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제적인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이용한 측정 방법을 발표하지요. 하지만 정작 자신은 transit 보지 못하고 1742년에 세상을 뜹니다.

 

아무튼 1761년에는 영국을 위시해서 프랑스 독일 등이 세계 여러 곳으로 원정대를 보냅니다. 하지만 전쟁중이라는 특수상황과, 경험 부족, 일기 불순 등으로 transit 시간을 정확히 측정한 곳은 유럽대륙을 제외하고는 한두군데 밖에는 없게 됩니다. 금성까지의 거리를 알려면 지구상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여러곳의 측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1761 transit 관측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밖에는 없었습니다.

 

절반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1769 transit 때에는 미국, 러시아 등을 포함해서 그야말로 전세계가 힘을 합해 세계 방방곡곡 지역의 정확한 transit duration 측정하게 됩니다. 7년 전쟁 직후 식민지 확장과 수탈로 다들 정신 없을 때였지만 과학계에서는 국제적인 협조와 공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멋진 사건입니다하지만 과정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그렇게 우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비행기 타고 슝~하고 가서 재면 되겠지만, 당시에는 달이 걸리는 항해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과정에서 풍토병에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Le Gentil이라는 천문학자의 관측여정은 너무나도 극적으로 불운해서 나중에 연극과 오페라로 만들어 정도였습니다. Le Gentil 1760년에 프랑스를 떠나서 인도의 프랑스 식민지로 떠납니다. 하지만 그가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영국군이 인도의 프랑스 식민지를 점령하게 됩니다. 어쩔 없이 그는 배를 돌려서 중간 기착지였던 프랑스령 모리셔스로 향하게 되는데 항해가 순탄치 않아서 그는 위에서 venus transit 맞게 됩니다. 당일 날씨는 아주 맑았지만 배가 너무 흔들려서 정확한  transit 시간 측정에 실패합니다. Le Gentil 8년후에 다시 transit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모리셔스에서 기다리기로 합니다. 년후 그는 필리핀에서 관측하면 태양의 고도가 높을때 transit 관측할 있음을 알고 필리핀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필리핀에서는 그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영국과 프랑스의 7년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게 빼았겼던 인도의 프랑스 식민지가 다시 프랑스에게 돌아왔기 때문에 그는  곳으로 향합니다. 결국 인도에 소규모 천문대를 건설하고 1769년의 transit 1년간 끈기있게 기다립니다. 드디어 transit 당일이 되었는데... 한달 동안 매일 아침이 맑았었지만, 관측 당일에는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서 결국은 아무것도 보고 끝나게 됩니다한편 transit 당일 필리핀의 날씨는 매우 맑았다고 합니다. 지난 일이지만, 필리핀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냉대를 견디고 버텼었다면 좋은 관측을 있었을 것이었습니다아무튼 Le Gentil 일로 인해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서 한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항해도 순탄치 않아서 장염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풍랑으로 표류하다가 작은 섬에서 구조되고 나서는, 겨우 겨우 다른 나라 배를 얻어 타고 2년만에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그가 파리를 떠난지 11 만의 일입니다. 하지만 고향에서는 이미 그에게 사망선고가 내려졌었고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으며 그의 모든 재산은 친척들이 나눠서 버린 이후였습니다. 결국은 프랑스 국왕의 중재로 재산을 되찾고 프랑스아카데미의 일원으로 복귀해서 남은 생애를 천문학자로 살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백조자리의 넓은 암흑성운(Le Gentil 3)등으로 지금도 밤하늘에 빛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두번의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이용한 세계 각지의 측정값으로 인해 지구-태양의 거리를 거의 정확히 측정할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계산은 153백만 km이었는데 레이더를 이용해 측정한 실제 거리인 1496십만 km 비해 불과 2% 정도 오차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태양-지구 거리의 정확한 측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별들의 연주시차를 이용해서 인류는 드디어 별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주의 거리를 알기 위해 내딛은  걸음이었지요.

 

우리가 지금 어떤 은하가 억광년 떨어졌다고 말할 있는, 또는 빅뱅이 137억년전에 일어났다고 말할 있는바로  우주 거리 측정의 단추가 바로 금성의 태양면 통과의 관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붉은 태양면을 천천히 소리없이 지나가는 검은 점이 사랑스러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