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과일 맛은 나지 않지만, 봄인데도 단감이 나온다.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서나 먹을 수 있었던 감을 지금은 사철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장하는 기술이 발달되어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어떤 과일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참 편리한 세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 반면, 어릴 적에 먹었던 과일 맛이 나지 않아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피난시절이라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전학 다니느라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뒷전으로 가버린 공부를 하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피난학교로만 다니다가 모두 서울로 수복해버려 부산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옮긴 것이다. 각 학년마다 치르는 일제고사를 본지 며칠 뒤였다. 아버지 반의 남학생이 큰 단감을 하나 들고 와서 네게 건네었다.


  “이거 선생님이 니 갔다주라 카더라.”


  영문도 모르고 받아 들었지만, 얼떨떨했다. 아버지는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었다. 일제고사에서 일등을 한 나에게 간접적으로 상을 내린 것을 집에 가서야 알았다. 평소엔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얼마나 기뻤으면 그랬을까! 그 당시 단감은 비싸서 아무나 먹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해 가을에 먹었던 단감의 아삭거리는 달콤한 맛은 정말로 잊을 수가 없다. 이젠 아버지께 그 고마움을 표하고 싶건만 저세상으로 여행을 떠나 간지 오래되어 가슴이 아프다. 노계 박인로 선생의 시조가 떠오른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어릴 적엔 앞니가 빠질까봐 홍시를 먹지 않았다. 외갓집에 가니 외할머니가 몰래 홍시를 건넸다. 그것을 안 짓궂은 외사촌 오빠가 뺏어 먹으려고 내게 거짓말을 했다.


  “너 그거 먹으면 할머니처럼 앞니가 빠져!”


  “정말이야?”


  어리석고 귀가 여린 나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옆에서 아무리 권해도 입을 다물고 끝까지 먹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외사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며 웃어댔지만, 어렸기 때문에 전연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 뒤로도 얼마동안은 입에 대지 않았는데, 거짓말이란 걸 알고 나서는 맛있는 홍시를 그 동안 못 먹게 한 오빠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소설가 최정희 선생님의 ‘감’에 얽힌 글을 보았다. 서울로 수학여행 왔는데, 여관의 옆방에 머문 남학생들이 잘 익은 빨간 홍시를 주었다. 전기를 함께 쓰는 방이라 전구 알을 사이에 두고 뚫린 구멍사이로 받았다. 이북에선 본 적이 없는 과일이라 먹는 방법을 몰라 고심하다가 깨물어 보았다. 주홍빛의 달달한 물이 입에 가득 들어오는데, 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다니! 하고 놀랬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서 어릴 적 홍시사건을 떠올리고는 혼자 웃었다.


  월내에서 향곡큰스님 시자를 살 때 감김치라는 걸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어느 신도분이 큰 들통으로 두 통을 가져왔다. 빨갛게 익었지만 단단하고 떫은 감을 큰 단지에 넣어 발효시킨 것이다. 하도 맛이 좋아 담는 법을 물어 보았다. 여뀌라는 풀을 삶은 물에 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식은 뒤에 감과 함께 단지에 붇고, 삶은 여뀌로 마개를 해서 얼마간 숙성시킨 뒤에 먹는데, 이 풀을 넣어야 감이 무르지 않고 시원한 맛을 낸다고 했다. 


달면서도 약간 신맛이 나는데, 단감보다도 아삭아삭한 식감이 있어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스무 개 정도는 거뜬히 먹어 치울 수 있었다. 큰스님은 유독 감김치를 좋아해 시원한곳에다 놓고 혼자서 두고두고 깎아 드셨다. 한 번 맛을 본 터라 그 후로 먹고 싶은 충동을 참을 길이 없었다. 처음에는 한 두 개 정도 몰래 꺼내 먹다가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실컷 먹어버려 항아리 안의 감이 쑥 줄어들어 큰스님께 들켜버렸다.


  “감 니가 먹었나?”


  “예”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온몸을 흔들며 큰소리로 웃는 게 다였다. 다 큰 사람이 그것도 수행자가 먹는 것 하나 참지 못하고 마구 먹어버린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럽고 창피할 수가 없었다. 이브가 맛있는 향이 나는 선악과에 홀려 그만 먹어버리고만 것과 무엇이 다르랴! 혼내지 않고도 스스로 뉘우치게 만든 큰스님의 웃음소리를 닮고 싶다. 가시고 안 계신 빈자리가 오늘따라 크게 느껴져서 가슴이 텅 비인 항아리처럼 휑하다.


  옛날과 달리 감의 크기도 굵어졌고 모양도 좋아졌지만, 예전처럼 맛이 나지 않는 다. 시장의 과일가게에 사철 나와 있는 감을 보면 사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는다. 아무래도 제철에 나온 감이라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과일을 맛보니 제철에 나온 과일 맛을 알 리 없으리라! 풍족하지만 진짜 맛을 모른 채 살고 있으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생각하면 모자라는데서 더 행복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봄에 나온 단감을 며칠 두었더니 물러졌다. 한입 깨무니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었지만 아까워서 억지로 먹었다. 철이 아닌 때에 나온 과일이라 값은 비싸지만 우리 몸에는 좋지 않다고 한다. 제철 과일이라야 제대로 된 영양분이 들어있다고 의사들도 권한다. 왜 사람들을 계절을 거스르고도 모자라서 앞지르려고 하는 걸까? 그 때 그 때 제철에 나오는 과일로는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걸까? 


시절인연에 따라 우주의 섭리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