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놀이

 

마룻바닥에서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공깃돌이 올라가고 내려간다. 하도 오랜만에 보는 터라 들여다보니 가지고 놀던 학생이 내게 건네며 놀아보란다. 어릴 적에 많이 해본 놀이라 서슴없이 다섯 개를 잡고 손등에 올려 한 개만 받으려고 하니 미끄러져내려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예전 솜씨가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그동안 하지 않아 녹슬었나보다.

같은 경상도라도 공기놀이를 북도는 짜구받기, 남도는 살구받기라고 한다. 어릴 적엔 공깃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큰 길에서 도로에 깔려고 잘게 부순 돌 더미에서 골라왔다. 뭐든 귀하던 때라 쌀 것이 없어 치마폭에 싸서 날랐다. 치마가 많이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돌이 삐쭉삐쭉해서 옷에 구멍이 날 때도 있어 엄마한테 혼이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귓전으로 흘리고 공깃돌을 부지런히 주워 와서 감춰 놓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숨긴 곳을 들키면 몽땅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잘 숨겨도 엄마는 귀신같이 찾아내서 내다버렸다. 그러기를 반복하지만 공깃돌 사랑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공기를 받으려면 땅바닥이 골라야 하기 때문에 놀 주변을 고르게 한 뒤에 놀았다. 그렇게 공을 들이지만 손이 더러워지고 거칠어지는 건 물론 땅에 스쳐 상처가 나기도 했다. 반반한 시멘트바닥은 놀기는 좋지도 손등이나 손바닥이 까져 손이 성할 날이 없이 상처투성이였다. 특히 겨울에는 손등이 터서 탁탁 갈라져 피가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손을 감추느라고 애쓰지만 결국은 들켜서 엄마의 꾸중을 들어야했다. 거칠어진 손을 뜨거운 물에 담그게 한 뒤, 돌로 문질러서 깨끗이 씻겨 글리세린이나 맨소레담을 많이 발라준 뒤, 양말로 손을 싸매주고 재웠다. 엄마의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자다가 갑갑하니까 양말을 벗겨버려 말짱 도루묵이 되곤 했다. 아무리 못하게 말려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비오는 날에도 남의 처마 밑에 앉아 놀았을 정도였다.

몽골에 학습탐사 갔을 때, 바양홍고르 박물관에 들렀다. 매트 위에 작은 뼈 무더기가 수북이 쌓여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직원이 와서 양의 등뼈로 만든 것으로 “샤가”라는 놀이를 할 때 쓴다고 했다. 먼저 시범을 보이자 둘러서있던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아! 공기놀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저마다 매트에 앉아 공깃돌을 받으니 곁에 서 있던 몽골사람들이 더 신이 나서 떠들었다. 어릴 때 갖고 놀았던 공기놀이가 몽골에도 있다니! 놀라움을 넘어 문화의 공통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공기놀이는 옛날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니 오랜 역사를 지닌 놀이이다. 서양에서도 처음에는 양의 등뼈를 둥글게 갈아서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조선 헌종 때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문헌에 실려 있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동서고금이 같은 놀이를 개발해서 놀았다는 것을 알고 지구촌이 하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놀이는 융통성이 있어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사람 수에 관계없이 놀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다섯 개의 공깃돌은 주로 사람이 적을 때 했고 사람이 많을 때는 공깃돌을 수북이 갖다놓고 놀았다. 모양이 좋은 놈으로 다섯 개의 공깃돌을 골라 책가방에 언제나 넣고 다니다가, 장소에 구애 없이 교실바닥에서도, 학교마당에서도 친구랑 앉아 공깃돌을 받았다. 지금은 일부러 돈을 많이 들여 인공적인 놀이교육 시키는데 반해, 예전엔 자연 속에서 스스로 놀이기구를 찾아내서 놀았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공기놀이를 통해 친구랑 친해지고 숫자도 익히며 손기술도 느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런 재밌는 놀이문화들이 점점 사라져가니까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공깃돌이 양 뼈에서 돌로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바뀐 걸 보고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간 까마득히 잊었던 일들도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놀지 못하게 극구 말리면서도 손이 거칠어지면 정성들여 씻어주며 웃으시던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언제부턴가 어린이들은 밖에서 뛰노는 대신 방안에서 기계를 들고 게임을 하며 논다. 지금은 일부러 돈을 많이 들여 인공적인 놀이교육 시키는데 반해, 예전엔 자연 속에서 스스로 놀이기구를 찾아내서 놀았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손을 많이 쓰기 때문에 뇌의 순환이 빨라서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니 크는 아이들에게 이런 놀이를 권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물질문명에 길들여진 생각을 자연친화적인 놀이를 통해 정서적으로 바꾸는 가르침이 절실한 때라고 여긴다. 아이들이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공기놀이를 하는 그날이 되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