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당시 나는 울룰루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게도 에어즈락이 유명한 영화에 나왔었기 때문이었다. 그 영화가 주는 정보에 따르면 에어즈락은 세상의 중심이었다. 기회가 있는데도 세상의 중심에 가보지 않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사실 사막을 횡단하는 더 간(The ghan)이라는 열차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여행 경로를 통해서 에어즈락에 닿고 싶었다. 비록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삶을 걸고 그곳을 개척하던 사람들이 보았던 길을 따라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열차가 다니는 횟수는 뜸했고 다음 열차가 출발하기 까지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다. 결국 비행기를 타고 호주 한 가운데 있는 사막에 날라갔다. 첫날 백배커에서 머무르고 다음날 예약했던 패키지 여행에 참가하기 위해 나섰다. 한데 막상 도착하니 내 자리가 없었다. 예약이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예약을 부탁했던 건 분명 그날이었고 스케줄표에도 그렇게 나와있었는데 그 느긋하던 여행사 직원이 실수를 한 것이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일이 쉽게 풀렸다. 다른 차에 빈자리가 있었고 나는 원래 참가하려던 것보다 더 고급 패키지 여행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패키지 여행에서 에어즈락은 가장 중요한 스팟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날씨가 흐리거나 바람이 불면 위험해서 등반이 금지된다고 한다. 지난번 팀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등반할 수 없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다행히 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등반로의 입구에는 애버리진들이 관광객들에게 이곳은 자신들의 성지이니 등반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하고 있는 글이 있었던 것이다.


 

원래 애버리진들의 땅이었던 호주는 어느 날 영국 왕의 소유가 된다. 그리고는 점점 백인들이 몰려들어 애버리진들을 몰아내거나 노예로 부리고 그 넓은 땅을 모두 차지한다. 당연하게 그 과정에서 애버리진들은 말 못할 고난을 겪는다. 언제나 그렇듯 정복자들은 잔인하고 거만했다.


 

내가 호주에서 감탄했던 점 중의 하나는 호주 사람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서관에서 볼 수 있었던 어린이 도서들은 이런 과거의 잘못들이나 사회적 이슈들을 아이들에게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전하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인지하고 공개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단순히 자원 부국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호주의 문화적 힘을 느꼈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백호주의의 나라로 불리던 호주가 성장지속을 위해서 타인종에게도 이민의 문을 열고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더 이상 백인들의 나라라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애버리진들 역시 자유와 스스로의 문화를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자유는 애버리진들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애버리진 사회에서는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이 만연해 있다고 한다. 갑자기 찾아온 자유로 인해서 공중에 붕 뜨게 된 것 같은 공허감이 닥친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


 

2008년 호주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 문제는 여전하고 애버리진들은 여전히 최하위 계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애버리진 사회에서는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지만 호주 정부에서는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나는 일시적인 보상보다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려고 하는 호주 정부의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호주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육은 어쩔 수 없이 백인들의 문화가 그 중심에 있을 것이고 호의적인 의도에서 시작되더라도 애버리진들의 문화를 파괴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효율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현대의 발전된 문물을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 애버리진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 좋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독특한 생김새나 의식주 방식은 다른 호주 국민들이나 여행객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스스로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행복할 수도 있다.


 

이런 양면성은 어려운 고민을 낳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고민을 호주 정부 혼자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삶의 핵심은 선택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스스로의 문화를 지켜나갈지 애버리진들 스스로가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기다리는 것이 호주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갈 때에 애버리진들이 정말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에어즈락 등반의 문제 앞에 섰을 때 패키지 여행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선택은 거의 반반으로 나뉘었다. 누군가 그걸 싫어한다면 하고 싶지 않다며 쿨하게 산책길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의 모습은 왠지 모를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에어즈락 등반은 당시 여행의 핵심 목표였다. 나는 그 위에 올라갔을 때 그 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 지 궁금했다. 이미 위를 오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나는 나 한 사람이 더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상을 향했다. 사방이 뻥 뚫려 있는 모습은 대단했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내 머릿속도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아마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모습이었기에 가능한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열심히 둘러 보았다. 애버리진들이 계속 에어즈락을 신성시 해나간다면 나는 에어즈락에 다시 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불편했기에 타협책으로 스스로에게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멋진 곳이었지만 애버리진들의 의지를 무시하면서까지 다시 올라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하기 전 울룰루 주변의 사막을 탐색하는 일이 오지를 탐험하고 방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된 그곳은 더 이상 오지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내가 간 모든 곳은 누구든 쉽게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9차 해외학습탐사대는 길을 만들어가면서 마블바를 왕복 한다고 한다. 진짜 모험을 한 탐사대가 내일 돌아온다. 아마 흥미진진한 소식들을 가득 담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