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사람들을 둘러본다. 일행없이 홀로 가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문명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디스플레이 속 영상물을 가만히 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현란한 그래픽을 선보이는 게임을 하며 터치스크린 위에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놀리는 사람, 또는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메신저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책 읽는 사람이 있어서 눈에 띄었다. 무슨 책을 읽는가 살짝 보니 과학소설이다. 책 읽는 남자를 보니 세시간 전에 만났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연구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가는 길, 전철에 앉아 출력해둔 「몽골」 책의 원고를 읽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옆사람이 읽고 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옆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은 전철에서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만해도 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흥미위주의 소설책들이긴 하지만. 요즘은 그나마도 스마트폰 덕분에 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더더욱 책읽는 사람이 희귀해보인다. 옆사람이 읽는 책을 곁눈질로 훑어보는데 '뇌과학'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대략보니 '언어'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일까'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나는 사무실에 가야했고, 사무실이 있는 고속터미널역으로 가려면 온수역에서 내려야 한다. 온수역까지는 두 정거장이 남은 상황, 짧은 시간이지만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저 혹시 뇌과학을 전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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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실례가 안된다면 전공이 무언지 알려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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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렇군요. 요즘같은 때에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희귀한데, 더군다나 뇌과학 책을 읽고 있어 반가워서 말을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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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전공도 뇌과학은 아니지만 뇌과학을 공부하는 단체의 회원이에요.

마침, 나의 손에는 박자세를 홍보할 좋은 수단이 있었다. 특집편을 펴서 특별한 뇌과학의 현장 사진들을 보여주었더니 그 남자는 관심을 보였다. 그에게 박자세 홈페이지 주소를 불러주었을 때, 나는 내려야만 했다. 만나서 반가웠다는 말과 함께 모레 일요일에 천문우주+뇌과학 모임이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내리고나니 전화번호라도 받을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읽고 있던 라마찬드란의 책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의 서평을 누가 썼는지 말해줄걸-하는 생각도.

  전철에서 뇌과학 책을 읽던 그 남자,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