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차 천+뇌 모임을 마친다. 매번 그렇듯이 이번 발표는? 이라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여전히 부족하다. 실수하고 빠트리고 준비했던 것을 모두 하지 못했다. 발표 전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나니, 했어야 했던 것들이 머리 속에서 뱅뱅 맴을 돈다.

이렇게 진행하여 요렇게 결론을 맺으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는 것이었는데, 어째서 지지부진 엉거주춤하게 끝나버린 걸까.’ 같은 실수가 반복이 된다는 것은 준비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 터. 이제는 좀 더 체계적으로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감탄과 박수를 자아내는 발표와 자신의 발표가 무엇이 다르며, 그 안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 동안 했던 발표를, 내용보다 형식에 집중해서 자세히 들여다 본다 

 

첫번째로 보이는 것은 산만함이다. 설명하려는 욕구가 강해서 많은 말들을 끌어들이다 보니 요점은 흐려지고 방만해지는 것이다. 보는 사람도 어지러운 분주함이 있다. 말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 패턴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두번째는 과도한 긴장이다. 적당한 긴장감은 집중도를 높이고 탄력성을 갖게 하지만 지나치면 완급 조절이 어려워진다. 마치 전투를 하듯이 상황종료 만을 목적으로 내달리게 되면, 발표의 내용보다 발표자의 상황 쪽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게 된다.  

세번째는 잘 안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몰두이다. 안 되는 것에 지나친 몰두는 전체적으로 마이너스적인 상황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만다. 잘 하는 것도 있고 잘 할 수도 있음에도 안된다의 부정적 정서가 발목을 잡고서 쭈뼛거리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더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잡혀지는 것은 이정도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이것은 발표 할 때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화를 할 때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돌아서면 어딘가 모를 찜찜함이 한구석 남아 있곤 했던 적이 많았다. 결국은 자신의 기질적인 표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질적인 표상은 개인의 특질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고 개성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속한 문화적 상황 하에서 경험치들과 지식들이 쌓이고 환경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대상과 관계를 맺는 감정적 반응들의 축적이 고유한 개인의 기질적 표상을 형성한다. 이것이 잘 기능하고 효율적으로 동작하면 호감을 얻고 긍정적인 반응들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아니라면 그 반대의 결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많은 시간의 축적인 만큼 변화하기도 쉽지가 않다.

 

나에게 있어, 이러한 기질적 표상은 어떻게 형성되어진 것일까. 첫번째의 특질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절대의 목적 하나로 내달리던 청춘을 건넌 이후로는 일상을 벗어난 삶의 목표나 고민을 지녔던 적은 거의 없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안온한 삶이라 믿었었다. 책읽기 조차 방만한 호기심과 단편적인 갈증을 해소하는 수준에서 자족했으니, 산만함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습관으로 굳어진 세계 안에 안주하는 동안 문제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특질을 형성한 것은 훨씬 이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감정적 정서 안에 공포로까지 남아 있는 까마득한 어릴 적에 겪었던 일 하나가 그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의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이 오면 본능처럼 이미 부정적 정서를 동반하곤 했었다.

이 또한 변화가 용이한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이런 기질적 표상을 굳이 바꾸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몇 가지 문제점을 제외하면 나름 쓸만한 구석도 많은데, 좋은 점도 많이 지니고 있을 것인데 왜 애써 묵은 상처까지 헤집으며 변화에의 꿈을 꾸는 것인가.

답은 단순하다. 그러고 싶으니까. 타인의 평가나 칭찬, 질책 보다도 어땠니?”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 좋았어라는 대답을 꼭 한 번은 들어보고 싶다.

노력만큼 돌아오는 결과물의 달콤함을 맛보고 싶어진 탓이다.

내적 소용돌이를 가라 앉히고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일상의 산만함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만 할 것이다.

목적에 대한 집중도 있는 몰입도 필요할 것이고 나만의 고독한 방을 갖기 위한 쉽지 않은 노력도 이루어져야 한다.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고 결과물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꿈을 꾸고 '시작'을 한다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걸음을 뗀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