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꽤나 성공적이었던 소극장 창작연극의 재공연문제로 오랜만에 찾은 연습실.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연출가에게 책을 건넸다.

 

 

"모에요?“

"응. 내가 요즘 뇌과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함 읽어보라고요."

"참, 수현씨는 가지가지 한다. 다시 공연일이나 하지?"

"....."

 

 

제법 이름 있는 연출가가 된 그의 눈에는 내가 이상한가보다.

이 곳 사람들은 주로 육아문제나 금전문제로(공연계는 여전히 가난하다) 일을 그만둔다.

하지만 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더 이상 할 이유를 못 찾아서 접었다.

그때도 그는 갸우뚱.

그러던 내가 갑자기 뇌과학을 공부한다니 생뚱맞다 생각한 게 틀림없다.

 

 

당시 솔직한 심정은 무슨 대단한 작품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게 난 너무 싫었다.

드라마나 영화일 보다는 여유롭다지만, 아침부터 자정이 다 될 때까지 반복되는 작업도 견디기 힘들었다.

 

 

또, 공연계에서 50년 넘게 계신 선생님께

성공한 작품이든, 실패든, 공연을 올린 후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찬찬히 다시 봐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다 나는.

잘못된 것들을 찾아내서 조금씩 개선하는 것이, 발전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복기를 하지 않았으니...

작품이 늘어갈수록 난 고갈되었다.

 

 

옛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박자세에 내가 올린 글들이 생각나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아... 폰트도 엉망,

글 형태는 어지럽고,

내용은 차치하고,

딱 봤을 때 깔끔해 보이지 않았다.

 

 

박사님 말씀이 떠오른다.

 

 

'번지르하고 뻑뻑하다.'

 

 

맞다.

아무리 컴맹이고, 인터넷에 처음 글을 올린다 해도, 복기를 했어야 했는데...

아니, 오히려 더 살폈어야 했는데...

그냥 올려놓고, 나 몰라라 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내가 글재주가 있거나, 뛰어나게 머리가 좋거나, 아니면 지식이 많지도 않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 항상 보고 또 보고 그래야 한다는 것을.

 

 

30대에 들어서 내가 느낀 건, 어느 것 하나 간단한 일이 없다, 였다.

 

 

모든 공부의 시작은 철저한 자기검증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간 본인이 알고 있던, 생각했던 지식을 깡그리 버리고,

새롭게 다가서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 것이라 생각한다.

글쓰기가 어려운 공부인 것을 입으로만 웅얼거렸지 머릿속에 각인시키지 않았다.

 

  

뭔가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은 그리 자주 생기지 않는다.

아주 우연하게 된 일이지만,

요즈음 정말로 배운다는 생각을 아주 오랜만에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