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진 한 여류시인의 시에 붙들려 일상의 분주한 준비를 접어두고, 밀쳐두고

하염없이 익어가는 밤입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  최승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아하 사실은

 

     (동시성의 하늘 아래서

     공시성인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시간이 아삭아삭

     시간이 바삭바삭

 

     아하 기실은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내 옆에서 사각이며 사라지고 있는 시간들,

눈처럼, 설탕처럼 아름다운 결정체 하나 만드는 시간이었으면 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 흔적도 없이 휙 하고 사라지는 시간일 것만 같아,

마냥 흔들립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멈춰서 돌아보면

그렇게 흘러간 세월의 잔해가 스산하게 널부러져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오래 오래 보고 싶은 스냅사진 한 장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하며 사각이는 시간의 소리를 듣습니다.

사각사각, 아삭아삭, 바삭바삭

바스라져 사라져버리는 것들 속에서

오래 오래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한 순간 새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