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을 잘 쓰고 싶다” “글에 자신이 없어서 댓글도 잘 못달게 되더라”
이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것은 내 속에도 언제나 떠돌고 있는 말이긴 하다.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난다.
또 다른 마음 한켠에선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버려지지 않는 미련은,
‘나도 글을 잘 써보고 싶다’는 것.
욕심이 커갈수록 글쓰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댓글을 쓰는데도
쓰고 고치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포기해 버리기를 여러번...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갔다.
박사님의 해법은 “힘을 빼라”였다.
음. 어떻게? 그동안은 어땠길래?
글의 모양새를 살펴보고 나를 들여다 보았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과했다. 글에 치장을 하고 쓸데없는 무거운 의미부여도 많다.
자연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작은 모티브가 있으면 작게, 큰 주제가 있으면 그것대로 충실하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되는 것인데,
뭔가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 처럼 용을 쓰고 있었다.
힘이 들어간다는 게 무슨 말인지를 그제서야 깨닫는다.
힘을 뺀다는 것은 나부터 편안해지는 것.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한참 펜팔이 유행이었다.
어느날 우연히 날아든 편지 한 통에 답장을 쓰게 된 게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얼굴도 모르는 친구에게 답장을 쓰면서 설레고 떨리던 그 기억을 다시 불러 오는 일.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아무도 몰래 간직했던 비밀 일기장을 다시 열어보는 일.
이곳을 일기장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부담이 과하지 않다면, 훨씬 편안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기장에 나만의 얘기를 적어내려갈 때처럼 편안하고 담담하게. 진심을 담아서.
좀 서툴고 어슬프면 또 어떠랴.
글은 잘 쓰고 못 쓰는게 아니라, 진심을 어떻게 담아내고 표현해내는가 인것 같다.
모자란 점도 내보이고, 좀 잘되면 격려도 받고 그러면서 단련되다 보면
어느날인가에는 그럴듯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나요?
누군가가 얘기했다.
"우선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치세요“
시작이 중요한거다. 시작하지 않으면 그 다음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연애편지 쓰듯 일기 쓰듯 그렇게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하지만
연애편지도 일기도
쓰고 구기기를 여러 번, 쓰다 말다도 여러 번 그렇게 모두 흐지부지 해지지요
예쁜 종이에 새 노트에 늘 마음을 새롭게 다졌지만 빈 종이와 앞장만 쓰다만 노트들만 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박자세에 남긴 글들을 읽다보면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밀려 자판을 두드리게 되지요
그 글에 아주 짧은 댓글이라도 달리면 또 글을 쓰고 싶다는 작은 욕망에 사로 잡힌답니다..
내 글을 읽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
'건드리면 반응한다"
댓 글도 막전위 pulse와 같아서 건드리는 빈도가 늘어 날수록 글쓰기를 재울 수가 없어요
"글로써 타인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고 싶다면 진실하라. 진실은 사실과 다르다. 사실을 통해 그대가 얻은 감정이 진실이다. 글쓰기는 자기 인격을 드러내는 일이다. 글을 쓰면 그대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도 실체를 드러내고 가슴속에 있는 것들도 실체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글로써 타인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고 싶다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아야 한다.”
이외수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이 한시적 시간을 갖는 다면 글은 영원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말은 나오는 순간 수정이 불가능하지만 글은 수정이 가능하지요. 김용석 교수의 깊이와 넓이의 4막 16장에는 넓게 가는 길과 깊게 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넓게 가는 것은 함께 가는 것이고, 깊게 가는 것은 혼자 가는 길이다.
그러나 깊게 가는 것은 끝내 넓게를 더욱 확장 시키는 가능성에 대한 길이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써서 얻는 지식'이야말로 참된 글읽기의 보람과 가치가 있다고 피력합니다. 하물며 글쓰기야 어떠하겠습니까..
박자세를 접하고 바뀐 것은 바로 이 '깊게 가는 길과 애써서 얻는 지식'의 소중함에 대해 배워가고 있습니다. 애써서 배우는 것 그 안에 참됨이 숨어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말은 지도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위에 장소와 내가 가고자 하는 장소가 같아야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고민하여 내어 놓는 이야기는 애써서 얻는 지식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로 인해 바뀔 수 있는 것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면 말입니다. 짧은 생각 적어 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글쓰기에 관한 제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초등학교때 방학숙제로 일기쓰기를 하면 매일쓰는게 아니고 방학이 끝날무렵 하루 날잡아 쓰곤 했죠.
쓸말이 없고 기억나는 것은 없고 일기쓰기가 귀찮아서 일기를 매일 똑같이 간단한 몇단어로 쓰곤 했습니다.
일기 검사하시던 선생님이 묻는다."너는 왜 일기가 매일 똑같냐?"
제가 대답하기를 "방학이라도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그렇습니다"
서로 거짓말임을 뻔히 알고도 그냥 능청스럽게 6년을 잘 버텨나갔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글쓰기를 한번도 안했습니다.
교육과정에 없었나 봅니다.
글쓰기가 무언지 어떻게 써야하는지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다가 대학생이되고
여자를 사귀게 되니까 어떻게든 글을 안쓸 수가 없더군요.
당시는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어서 아날로그 방식의 연애편지를 쓰지 않으면 연락하기도 어렵고 마음전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라서 연애편지를 조금 써봤습니다. 글로 마음을 전하는게 얼마나 어색하고 어려운 일인지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연애편지에 다 쏟아 붓는 심정이었습니다.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나니 글쓰기는 제 인생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박자세가 제인생에 등장을 하면서 게시판에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번 알게되는 새로운 감동적인 세계가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이런 느낌을 어디든지 쏟아내고 표현하고픈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간 내면의 어느구석에 있었는지 모르던 호기심과 감상과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자연과학지식이 주는 즐거움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처음에 박자세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충격적인 감동에 사로잡혀서 글을 쓰느라고 글을 어떻게 써야한다는 의식조차 못했습니다.
자훈님이 말씀하신대로 자판을 생각나는대로 마냥 두들길 뿐이었습니다.
두드리는 자판에서 점차 길이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자연과학 지식도 얻고 글쓰기 훈련도 되고,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심정입니다.
그간 글을 써보면서 느낀 것은 글도 운동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시작하고 매번 반복하게 되면 저절로 미세한 조정이 일어나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쓰지않은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라 어색하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반복하면 쉬워집니다.
시작이 절반입니다. 연애편지쓰듯 자연스럽게 박자세게시판에 글쓰기 훈련을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