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제주도에 갔다 왔다. 사유는 제주도 사전답사 때문이다. 100여명이 곧 제주도 답사가는 데 미리 가서 얼추 견적을 뽑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부산 양산에서 박사님의 강의가 있어서, 그 강의를 마치고 바로 제주도까지 가서 답사하자는 생각으로 간 것이다. 대략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격이 되겠다. 그 다음 날 아침 제주도에 도착하여 거의 일주를 하며 역쉬 박자세다운 일정을 소화하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고생을 하였다. 이유는 그 전날 잠을 못자고 더구나 나홀로 술 한 잔하는 바람에 평상시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오름을 오르노라 생각나는 것은 와! 잠을 좀 못 잔다해서 이렇게 헛발질하는구나 하는 맘이었다. 젊을 때와 비교해 봐도 확실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잠을 줄이면 체력이 심히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내내 잠과 체력의 상관관계, 잠과 뇌의 기분 관계, 정서의 다운문제 등을 많이 생각하였다. 집에 오자 저번에 복사본 “수면과 뇌”를 자연스레 펴게 된다. 수면과 뇌를 읽는다. 부제는 사람은 왜 자야하는가 이다. 부제를 보건대 사람은 자야할 이유가 있기는 있는가 보다.

 

기실 우리는 이 현상에 대해 평소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아침에 좀 더 자고 싶어 땡깡을 부린 적도 있을 것이고, 시험 전날이면 한 자라도 더 보려고 잠을 쫓아내려는 마음이 간절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어떨 때는 일이나 고민으로 잠을 못 자고, 아니면 생리적인 이유로 잠을 느끼는 정도에서 머문다. 아마도 수면에 관심을 가질 때는 잠도 못자며, 나아가 잠을 줄였으면 하는 맘도 생길 것이다. 아마 대다수가 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뇌와 상관하여 접근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리라. 단지 몸이 피곤하므로 잠이 온다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할 것이며, 더 나아간다면 뇌를 포함한 온 몸이 피곤하므로 잠이 오는 것이라고 볼 것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잠을 뇌의 작동 측면에서 확실히 관점을 세워볼 수가 있었다. 저자의 관점이 잘 녹아든 구절은 다음과 같다. 잠은 진화의 산물이며, 뇌의 발달과 더불어 잠이 발달되어 왔다는 말이다. 인간은 생물인한 효율적으로 활동하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여야 한다. 잠은 휴식이지만 동시에 능동적인 비효율이기도 하다. 즉 잠을 통해 생명체가 에너지를 필요없이 사용하는 것을 제어하여 축적한다. 그 다음에는 꼭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상황에서, 즉 활동할 때 보다 정교히 하고자 뇌를 고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잠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원래 이 책의 저자는 의사로써, 집필의도도 수면장애의 이해와 진단 치료에 대한 기초지식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비교적 내용도 그에 충실한 책이랄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오히려 수면과 뇌의 역동적인 관계를 알고픈 것에 일단 머문다. 특히 수면이 가지는 의의를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데서 만족하고자 한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은 전반적으로 책의 전체 아웃라인을 제시하고 도입부의 역할도 하고 있다. 고등동물의 뇌는 잠을 필요로 한다. 수면은 뇌에 의해 컨트롤되며 뇌가 발달 할수록 수면도 발달한다. 즉 잠은 고등한 적응양식인 것이다. 그 적응양식의 발현으로 두 종류의 잠의 양식이 있으니, 즉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그것이다.

2장은 잠이 오려는 것은 뇌가 나타내는 잠의 신호로 보고 있다. 여기서는 잠의 기본적인 성질을 간단히 언급한다. 예를 들면 의식수준이 낮으면 잠이 온다. 잠은 1일주기성리듬이 있다. 는 등등의 잠의 특성을 말한다. 평이하다.

 

3장은 수면에 주어진 역할이 다양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전의 학자들이 주장한 잠의 역할로 잠은 창조적이며, 새로운 기능을 만든다는 등등의 의견을 20여 가지 제시한다. 생각 외로 잠에 대한 기능이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주장들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글도 쉽고 내용도 평이하여 읽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나 다음부터는 내용이 보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므로 좀 더 주의가 요구된다.

4장은 잠은 행동과 뇌파를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잠을 자면 의식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것을 측정하는 방법이 없게 된다. 의식이 없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도 옆에서 관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부분을 자극할 때의 반응행동에 따라 추측하거나 뇌파를 재는 방식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지는 23년 전이다. 한마디로 뇌의 연구가 이씨조선 때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양전자단층촬영, 자기공명장치 등의 기술이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예전에 비해 뇌를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 발달되었다. 따라서 이 책의 이야기는 23년 전의 수준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다만 그 본의가 무엇인지를 알기만 해도 충분한 바, 이 장은 잠을 연구하는 방법을 말한 부분이 되겠다.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잠과 수면의 관계를 말하기 시작한다.

 

5장은 뇌 안의 신경기구가 어떻게 잠을 조절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수면중추가 실제로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즉 뇌의 어떤 특정부위가 잠을 조절하는지를 묻고 있다. 수면중의 신경활동의 변화를 말하고, 특히 렘과 비렘의 수면조절 신경중추의 작동기제를 말한다. 결론은 뇌의 모든 부위가 일정 정도 연계하며 수면중추 역할을 한다고 본다.

6장은 수면물질이 잠을 조절한다고 말한다. 결국 신경중추가 있어도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신경전달물질로 보고 있다. 특히 액성으로 즉 뇌척수를 통하여 일시에 모든 뇌세포에 각성과 수면물질을 전달하는 기능을 적시한다. 요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신경전달 물질이 수면과 각성현상도 조절한다는 이야기이다.

7장은 5,6장의 내용을 연계하여 정리한 것으로, 수면조절이란 총체적인 현상을 뇌기구와 신경물질의 협연으로 본다. 이는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발달되어 왔다는 것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잠이 생명의 활동에서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장이다. 신경조절계와 액성조절계 즉 뇌척수액계는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협조를 하며, 또 복수의 수면물질이 복합작용을 하여 수면작용을 조절제어하는 것이며, 이 신경물질과 수면기구는 상관적으로 진화하여 왔다는 것을 말한다.

 

읽고 난 다음 들은 생각은 홍운탁월이라는 말이었다. 달을 그리려면 달을 직접 그리는 방식도 있지만, 홍운탁월은 오히려 달 주위에 있는 구름에 색을 입힘으로 달을 드러내는 방식을 말한다. 동양에서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쓰는 방식의 하나이다. 뇌를 연구하려면 뇌의 기능과 작용 등을 보는 방식도 있지만, 반대로 뇌의 휴식을 이해하는 방식으로도 뇌가 궁극으로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들었던 생각이다. 수면과 뇌에 대한 독서에서 느낀 생각이라고나 할까. 뇌의 휴식방법을 간단하나마 체계적으로 이해하니, 뇌의 기본적인 본질에 육박해 들어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결론은 간단하다. 수면은 뇌의 작용을 보다 안정적으로 효율적으로 하기위해 나름 발달되어 온 것이다. 피할 필요도 없으며 즐길 필요도 없다. 잠을 잘 때 보다 깊이 편안히 푹 자면 될 일이다.

 

 

다음 글은 안 읽어도 되는 넋두리이다. 웬만하면 패스하면 좋을 듯하다.

 

생명작동은 빅뱅의 원초적인 힘, 즉 열망이 그 힘을 뻗다가 생명의 흐름으로 이어가며, 그 생명의 약동이 보다 정교한 형태로 태초의 열망을 담아낸다. 우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생명이 어울려 약동하기 때문이며, 그 정교한 어울림이야말로 빅뱅이전 존재의 열망이 가진 축복이리라. 생명의 약동은 자기의 방향을 보다 정교히 다듬어 간 것이다.

 

그 힘은 줄곧 뻗어감에, 힘을 보다 정교히 하기위해 즉 보다 고도화하기위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는다. 그 온 힘을 담아내기 위해 생명을 창출한 후에 뇌를 발달시키고, 또 휴식을 통해 뇌를 보다 고도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에 따라 뇌는 최대의 활용을 통해 생명이 보다 깊이 약동하기 위한 방향을 찾아갈 수 있던 것이다. 즉 뇌는 잠을 통해 생명에 부여된 한계를 그때그때마다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내려다보며 그 자신이 유래된 오랜 자취를 더듬을 수도 있는 것이다. l와 같이 태초의 열망이 뻗어간 지평을 바라보며, 지난 기나긴 시간과 앞으로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단계를 위해 잠이 탄생된 것이리라.

 

생명은 그 원초적인 열망이 집적되어 나타나는 탓에, 그 사용대가는 비교적 비싸다. 즉 고도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소모 정도에 따라 우주의 본질을 깨닫는 수준에 단도직입으로 만길의 담장을 휙하니 뛰어넘나들 수 있다. 그게 고상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심지어 빅뱅이전의 존재와 그 의미를 천갈래 만갈래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우리 뇌의 작동에게 주면서 말이다.

 

잠은 열망이 잠시 쉬는 찰라의 응결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려는 열망의 힘이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 온 우주와 교감할 수 있는, 그래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의 본래면목이 아닐까. 그곳에서 태초 자신의 고향을 느끼고, 또 열망이 본래 뻗어가는 기나긴 여정의 관절점이 아닐까. 매번 잠을 자는 행위는 생명이 열정을 얻는 즉 열정으로 재충전하는 성스런 의식이 아닐까. 그것도 무한히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잠을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잠이 그냥 생리적인 것이라는 것, 휴식을 위한 것, 뇌가 잠시 쉰다는 것 등의 이해를 넘어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137억년의 좌표를 상기해 보자. 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물리학자들은 의미가 없다고 하여 더 이상 묻기를 멈춘다. 하지만 형식상의 좌표를 설정하여 살펴보는 것은 가능하다. 마치 숫자도 자연계에서는 마이너스가 없지만, 혹은 0이라는 존재도 없지만 인간이 그 숫자를 고안하여 실생활에 편히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빅뱅이전으로의 거꾸로에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것도, 의미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 이전의 오랜 응어리짐을 열정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제는 잠을 자면서 빅뱅이전의 순간으로 돌아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속에서 새로운 열망을 꿈꿔본다. 어느 것 하나 분별되거나 구별되지 않는 순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열망 그 자체가 만들어낸 것으로 보는 모든 것과 너나없이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순간에서 깨어서 일어나면, 일상의 현실속으로 다시 아무 일없다는 듯이 들어가야 한다. 즐거이. 그렇다면 얼마든지 빅뱅이전의 세계가 열정이라고 말할 그리고 느낄 여지가 생긴다.

 

따라서 잠은 열정이 자기를 바라보게 하는 작동이 아닐까. 뇌의 작동이 없다면 모를까. 동물마냥 본능에 의한다면 결코 깨달을 수 없었을 빅뱅이전의 존재로 나아간 것이다. 우리는 뇌에 의해, 나아가 잠에 의해서 더 정교화하고 고도화할 수 있는 뇌의 시스템에 의해 우주가 열정의 팽창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뇌를 가진 존재라면, 그 원초적인 열정의 존재가 잠을 통해 뇌로 자신을 확인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자신의 존재는 열정 그 자체였다고. 무한할 수 있는 힘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