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선시대 음악가인 홍대용의 거처를 '유춘오'라 하였다 한다.
봄이 머무는 언덕이란 뜻이다.
어느 날 홍대용의 친구들이 유춘오에서 모여서 술을 마시다 보니 누군가 악기를 꺼내든다.
한 사람은 아쟁을 켜고 한 이는 슬을 내어 놓고 서로가 너무 흥에 넘치다 보니 책상위에 있는 구리쟁반을 치며 시를 읊으며 소릴 높인다. 모두가 흥에 겨워 하다 보니 제일 연장자인 교교공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이 어르신이 우리가 이리 노는 것을 보고 역정이 나셨나 하고 급히 찾아 나섰다. 교교공의 집에 다다르러 보니 교교공이 하늘위에 떠있는 달이 너무도 고와 집 앞에 있는 다리위에 걸터 앉아 금을 타고 있다. 이것을 보고 기뻐하며 서로 그 옆에 끼어 앉아서 다시 흥에 젖는다.
조선시대의 선비들 중에서도 풍류를 즐겼다는 연암 박지원의 지우들이다. 나이를 건너뛰고 신분을 넘어서 서로 교류를 나누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그림으로 눈을 즐거이 하고 글로 속을 내어 놓으니 이보다 가까이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절로 벅차 오른다.
사람이 그리워 그리하고 사람이 보고파 그리한다.
김소월의 시마냥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져 버린다.
세월은 쌓이는 것이라 말을 했다가 괜시리 눈을 붉히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쌓임이란 말이 단지 좋은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 어머니의 눈시울을 보고 있자니..그 세월 많이도 쌓아 오셨군요 해버린다..
내가 지나가고 지나 온 시절을 뒤돌아 보아 느껴지는 아스라한 미소지음이라 생각하는 쌓임과 어머니가 생각하는 한 많은 시간의 쌓임은 결코 같지 않은 단어인가 보다.
한 오십 년 정도 지난 후 아니 한 20년 정도 지난 후에 내 세월의 쌓임은 과연 뒤돌아 웃음지을 것 일수 있을까..다시 살라고 하면 도저히 살기 힘들것 같다는 우리 어머니의 뒤돌아 봄이 때로는 내 속 짖누르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충분히 만족하시는 어머니에 모습이 자랑스레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주름진 얼굴 뒤편에 그려지는 그 세월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과거도 현재도 어느 한 곳에 정착되고 고정된 현상이 아님을 뇌과학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과거는 그리게 되고 흐르는 시간은 즐기게 된다.
어디에도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데도 그러하다.
연암은 여전히 제가 가장 사랑하는(!) 코레아남자 중의 하납니다.
열하일기가 아니더라도 그의 문집을 읽으면 그는 생생한 현재형의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이 많았어요.
연암이 친구들과 술추렴하는 대목들 역시 아련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고..
(정조는 연암을 매우 싫어했지만)
연암글을 읽고 연암과 그 친구들 혹은 '조선의 마음'을 알고 싶어
거문고를 배우고 위해 용을 쓰다가 포기한 적도 있고 후후
조선은 아래 위로 10살 정도 터울에 친구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태어난 해보다 어떤 내용으로 삶을 채웠느냐가 더 중요한(이를테면 어떤 공부나 책을 읽었느냐 안읽었느냐..
어떤 글을 암기했느냐 안했느냐) 지식인 사회였지요. 그에따라 공부를 많이 한 젊은이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의 한국사회가 혈연 지연을 따지는 것이 과연 조선시대보다 덜한가는 생각해볼 문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