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세가 추구하는 인간형 - 개념있게 !

 


 

1. 박박사에 대하여, 사적인 아주 사적인......

 

 


  박문호, 그는 자신을 ‘박박사’라 호칭한다. 박문호라 말하지 않고 꼭 박문호 박사 내지는 박박사라고 말한다. 각 분야에 박사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아직도 박사 공부에 대한 학자로서의 자긍심일까. 아니다. 그는 이미 여러 분야에 박사 이상의 학식을 갖추었기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직접 묻지 않아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박박사’는 박문호 박사가 과학 문화 운동가로서 자신을 최대한 객관화한 표현으로 보인다. 자신을 타인처럼 거리두고 표현하기. 그러나 나는 이 글을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써야겠다. 일단은 내가 한 사람과 조직을 객관화할 만큼 오래 지켜보지 못한 바요, 때로는 아주 사적인 모습에서 진실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그리 해보고 싶어서다.  

 


 

  박자세에 관해 박문호 박사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말한다. 박자세에 박문호 1인의 영향력이 너무 크게 행사되는 것은 아닌가, 요즘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 1인의 영향력이 크면 다른 사람들이 숨쉬기 힘들게 되는 것은 아닌가. 박자세 이야기의 90%를 박박사가 만들어내고 있으니...... 나는 잠이 덜 깬 관계로 속으로  말한다. ‘잘 아시네요’   

 


 

  박문호 박사는 공부의 핵심 내용을 외우고 이해한 뒤 수첩에 적어 늘 펼쳐본다. 그와 같은 자신의 공부법과 생활 태도를 소개하여 실행을 종용하고 수첩을 들어보라며 확인도 한다. 확신에 넘치는 사람은 남을 잘 고려하기가 어렵다. ‘내가 성공해봐서 아는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수첩은 독단과는 다르다. 그는 합당한 근거를 대어 반박하면 그냥 사과한다. 드라마틱한 설전을 기대했는데 그럴 땐 싱거울정도로 권위가 없다. 불같음과 공존하는 싱거움을 보고 한 사람이 지닌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도 된다. 서로 다른 것의 양립 덕분에 그의 카리스마와 권위는 경계가 없어지고 견고하지 못하니 독재가 될 수 없다. 

 


 

  통화 중 옆에 있던 남편이 ‘당신은 지령받고 글 쓰냐’고 놀린 이후 글이 써지질 않았다.  10대인 우리집 아이들도 내 요구를 자주 거부하는 걸 보면 나는 지령 받고 뭔가를 할 나이도 아니고 그런 거창한 이름에 걸맞는 능력을 가진 것은 더욱 아니다. 물론 촉발은 박박사가 하지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고 합작이다. 게다가 박박사의 주변엔 유쾌통쾌하게 지령을 거부하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사모님인 황해숙 여사를  필두로 좀 틀렸다 싶으면 ‘에이, 그건 아니지요’라고 단박에 말하는 김향수 선생님도 있고, 너무 의욕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싶으면 웃는 얼굴로 ‘그럼 박사님은 그리 하시던가요’하며 상쾌하게 퉁박을 주는 김현미 선생님도 있다. 그럴때면 박박사는 손오공한테 면박당한 삼장법사의 표정이다.

 


 


  그는 강의 시간마다 심지어는 일상에서도 시간만 나면 수식과 자연의 법칙, 그것을 연구한 과학자들의 노고에 감탄하고 찬사를 보낸다. 그럴 때면 그가 가진 것 중 제일 부러운 표정이 나온다. 나이와 무관한 해맑은 소년의 웃음이다. 나는 대가라 불리는 몇몇 시인들에서  그런 미소를 본 적이 있다. 그 방대한 지식이나 열정을 순수하게 지탱해 주는 것은 어쩌면 소년다운 호기심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는 매의 눈이다. 매섭게 몰아붙이며 변화를 강요한다. “박자세 회원이면 이건 다 알아야 해요. 모르면 박자세 회원 아닙니다. 이걸 모르면 숨쉬는 게 아니에요, 숨 쉬면 안돼요. 어떻게 이런 걸 공부하면서 잠이 오나. 졸리면 서서 들으세요. ” 그때마다 강의실엔 폭소가 터지지만 대사만 들으면 입시를 앞둔 수험생 교실이라 할만하다. 나는  내쳐져서 세포사 당하지 않으려는 심정이 되어 얼마나 열심히 듣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떨 땐 내가 내 의지로 공부하는 게 맞나 의심조차 간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의 많은 부분을 지휘하듯 박문호 박사의 지시에 따라 공부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는 그럴만하다. 미토콘드리아는 다른 세포와 공존하는 방식으로 꼭 필요한 유전자 13개만을 남기고 1천개나 되는 유전자의 99%를 세포의 핵으로 넘겨 주었다. 그는 박자세의 미토콘드리아다. 그래서 그는  돕는 방법을 잘 안다. 서호주 학습탐사에서 박박사는 카리지니 협곡의 아찔한 철계단을 내려갈 적에 자신의 발을 돌턱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발을 디딤돌 삼아 밟고 지나가게  한 명씩 손을 잡아 건네 주었다.


 

 

  앞서가는 자를 선생이라  부른다면 박박사는 선생이다.   제자들이 추격해올때 잘 도망가는 자가 가장 훌륭한 선생이라면 그  역시 훌륭한 스승이다. 따라잡을만 하면 저 앞에서 다른 종류의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박자세 회원들도  못지 않게  훌륭한 도반들이다. 그들은 참 잘 따라한다. 자연과학에서의 공부의 내용은 분야별로 궁극이 정해져 있다. 고로 인문학과 달리 끝이 보이는 공부다. 열심히 공부한 몇몇 회원들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고 박박사의 강의 내용을 전면 이해하는 눈치다. 어떤 부분에선 능가할 수도 있다. 박자세는 다중지성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