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였다.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여기저기 건대 가는 길을 묻고 있었다.

시큰둥한 대답과 반응들에 초조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내가 건대 가노라고, 따라오시라고 말을 건넨다.

두 분의 얼굴에 왈칵 반가움이 서린다.

시청에서 2호선을 갈아타면서 어디서 오시는 길이냐고 여쭤보니,

대구란다. 의외의 우연에 놀람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대구 복현동이 집인데, 서울에 문상을 오시는 길이라고 한다.

1년 내내 서울에 한번 다녀갈 일이 있을까 말까 했던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가뭄에 콩 나듯 있는 서울 나들이에 잔뜩 긴장하고서도 지하철 출구를 잘못 찾아 나와서

한참을 헤매이곤 하던 일이 번번히 있었으니, 두 분의 불안감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지하철 안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는 변명하듯이 말을 건네온다.

남편분이신데, 길을 제대로 못 찾을까봐 벌써 몇번째 전화를 걸어오시는 거란다.

 

지방에서, 그것도 토박이로 긴 세월을 사노라면 서울에 대해 이상한 편견을 가지게 된다.

서울은 미로 속처럼 복잡하고, 사람들은 쌀쌀맞은 얼굴로 바삐 움직이고,

자칫 잘못 하면 순식간에 길을 잃어버리는 곳.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곳이어서

도저히 사람 살 데가 못 된다는 것이다. 공공연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난다.

그 사람 살데 못 되는 곳에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이 모여 산다는 생각은

아예 하질 않는 것 같다.

하기사 한 집에 사는 남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다 서울 나들이를 함께 나설 때면 엄마 치마자락 놓치면 큰일 나는 어린애마냥

불안한 얼굴로 잡은 손을 도통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예전처럼 교통이 불편하거나 안내가 부실한 시절도 아니고

눈만 돌리면 친절한 안내판들이 여기저기 가득한데다

부끄럼 많던 어린 시절처럼 낯선 사람에게 길 물어보기 어려워할 나이도 아닌데

단지 익숙치 않아서 느끼는 불안감으로 보기에는 좀 지나쳐 보이는 감이 있다

어릴 때부터 심심찮게 들어오던 서울은 코 베어가는 곳이라는 소리가

뿌리 깊은 공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내게도 그러했던 서울이, 외국의 낯선 도시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불안과 위화감을 주던

서울역이 매우 친숙한 곳으로 바뀌었다. 간혹 길을 묻는 이에게 안내를 해 줄 때도 있다.

한번도 대구를 벗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을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요즘은 가끔 서울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궁리를 해 보기도 하는 것을 보면

변화는 참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건대병원 장례식장을 가르쳐 드리고 잘 내려가시라고 인사를 나누고 두 분과 헤어진다.

앞으로도 여전히 이 길을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익숙해지는 길 만큼 학습도 훨씬 깊어지면 좋겠다.

대구에서는 보슬비 내리더니, 서울은 쨍하니 맑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