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군대 제대 후 지난 2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간 녀석이다.

원래도 곰살맞은 성격은 아닌지라, 남편만 안달복달 전화를 하지

자진해서 연락 한 번 잘 하지 않던 애여서 갑작스런 전화가 외려 걱정부터 안겨준다.

그냥 안부전화라며 지금 엘리스 스프링스에 있다고 한다.

 

처음 멜번으로 가서 가판대 운동화 파는 일도 하고 마트 청소도 하면서 투잡한다는 연락 한번, 

더 나은 페이를 쫓아서 멜번 아래 작은 섬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도 있었고,

돈은 좀 모은 것 같으니, 여행이나 다니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건 두어달 전이다.

이왕 여행을 할 거면 서호주로 가보라고 권유했지만,

대도시가 더 구미에 당기는지, 브리즈번, 시드니 일대를 돌아다니며

친구도 만나고 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원래 예정은 12월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으니 귀국 준비중이냐고 물었더니

뜬금없이 앨리스 스프링스에 있다는 거다.

? 엘리스 스프링스는 거의 호주 대륙 한복판 쯤에 있는 도시이다.

그곳에 일자리가 나서, 백일 정도 채우고 2월에나 들어올 예정이란다.

이곳은 기온이 40도가 넘어요”.

우는 소리를 하는 아들의 목소리보다 울룰루 락을 가는 관문

엘리스 스프링스에 귀가 번쩍 띄었다.

울룰루는 세계의 배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 최고의 성지로서,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남서쪽으로 450km에 위치한 울룰루 국립공원 안에 있는

세계 최대의 단일 암석이다. 해발 867m, 표고 342m 둘레 9km에 달하는 웅장한 바위산이다.

최근에 호주를 홍보하는 책자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진이

석양에 비친 울룰루 락의 모습이다.

그만큼 관광객도 늘고 있고 아웃백을 즐기는 사람들이 준비를 위해 많이 머무르기 때문에,

꽤 번창하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덕분에 아들에게도 일자리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서호주책에서 맡은 챕터가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 이었기에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염원하고 있던 곳이니 귀가 번쩍 뜨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먼저 울룰루를 가보았냐고 물어본다.

어무이, 저 놀러온 거 아니고 일하러 왔거던요대답이 이렇다.

그러게, 돈만 벌지 말고 거기를 가보라니까. 내 말이다.

호주로 가기 전에 마침 출간된 <서호주>를 짐 속에 잘 챙겨 넣어 주면서

시간 날 때 꼭 읽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분명히 건성 훑어보고 만 것일게다.

섭섭함과 괘씸함이 함께 밀려온다.

근데, 다음 말이 그걸 싹 거둬가준다.

근데, 어무이, 여기서는 오리온이 거꾸로 보이데요

아니, 오리온은 또 어떻게 알지? 전혀 이쪽으로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차인지라,

그 한마디에도 왈칵 반가운 맘이 된다.

내친 김에 대마젤란, 소마젤란을 찾아보라고, 열을 올리는데, 옆에서 한 소리가 끼어든다.

애 안부나 물어보고 어떤지 사정이나 알아보지, 엄마가 되어서는 쯧쯧..”

타박하는 소리에 이내 머쓱해져서는, 꼭 책 읽어보고 밤하늘 많이 보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기는 할머니에게로, 아버지에게로 건너간다.

국제 전화로 긴 얘기를 할 것도 아니긴 하다.

 

아들과의 통화에 한참 동안 다시 서호주 밤하늘 아래로 달려간다.

아는만큼 보이는 거랬는데, 박자세에서 공부하며 바라보던 그 밤하늘에야 비할 수 없겠지만

대륙 한 복판 사막 가운데이니, 눈을 들어 하늘을 보기만 한다면

그 장관은 대단할 거라는 건 짐작해볼 수 있다.

아들이 다른 걸 다 못하더라도 건강한 몸과 함께

그 밤하늘 한 장, 가슴속에 담아서 올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지녀본다.

시작은 그렇게 선명한 사진 한 장에서부터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