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랜 풍상에 절어 해골만 남은 선사시대 유골처럼
무방비 상태로 놓여진 내가 사랑하게 된 잿빛바위
휘어지고 뒤틀리고 하늘을 향해 충동적인 몸짓을 드러낸 잿빛 협곡
잿빛 바위를 부숴 버릴 듯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가끔씩 소슬한 바람이 불어 희끗희끗한 구름이 막아서면
계곡은 살아있는 듯 기쁘고 슬퍼보였다.
이런 공간에 오면 위험을 감지한 호랑이의 포효가 내 존재의 심연의 맥박을 두들기고,
나의 상상력은 불이 붙기 시작하고, 오랜 기억의 무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아득한 계곡에서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수많은 소리로 이루어진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태초에 쏟아지는 장엄한 비소리를 듣고,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대지의 소리를 들으며,
야수처럼 으르렁 거리며, 이 계곡을 넘나들며 잿빛바위를 핥아대던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멀리서 계곡바람에 몸을 실어 율동을 즐기던 새가
잿빛 바위사이로 날개를 접으며 소리치면,
계곡 전체가 오랜 침묵의 시간에서 깨어나 화답한다.
이렇게 만사가 기적으로 다가오고, 모든 사물이 신비로 다가오는 때에는
나는 아직 충분히 살아보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되고,
영원같은 시간의 낙원 속에 우두커니 있고 싶다.
출발합시다! 라는 소리에
나는 그만 구름에서 떨어졌고,
대낮의 이 매혹적인 계곡은 죽음같이 무섭고 신성한 침묵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그렇게 항가이 계곡을 함께 했던 기억은
인식의 세계를 쉽고 빠르게 멀리 데려갔다 데려오는
마술을 부립니다.
멘토님, 지구별 여행자의 독백이 흐릿해질 시점의 몽골여행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섬세한 부싯돌이 되어줍니다. 이른 아침 좋은 기분을 선물받았습니다.
2,000미터 고도에 부풀어 오르는 것은 비단 차가운 날씨에 커피 한잔 마시려
들어올린 커피믹스 봉투만이 아닙니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머리속은 부푼 혈관으로 고산병의 옅은 흔적이 감싸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둥켜 안게 됩니다.
산에는 바람이 걸리고, 바람에 함께 날아 온 구름이 걸립니다.
땅이 움직여 뒤틀어버린 공간에 멈춰서면 시간의 흔적이 시선을 붙들고 있습니다.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 돌멩이 속에 광물이 저마다 소리를 내어 뭉쳐져 있고,
흩어진 흙은 산에 걸린 구름 속 물줄기에 사막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사막에는 바람에 흔적으로 파도같은 바람 자욱이 선명하고
생명이 살았다는 흔적은 메말라 비틀어진 나무등걸 사이에 작은 바람에 놀라
손살같이 사라지는 도마뱀만 알고 있습니다.
밑바닥부터 솟아오른 맨틀 플룸의 현상은 지구만의 현상이 아닌가 봅니다.
솟아오른 흔적위를 지나쳐 가는 내게도 고요하고 묵직히 속을 비틉니다.
항가이 산맥이 남긴 뒤틀림의 흔적은 내 속에도 흔들리고 머물러 몇 글자 쏟아내게 합니다.
다시 한 번 찾아들면 하트트쿼트를 부딪치는 바람소리 다시 취하고 싶습니다.
인도판이 아시아판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이 솟고, 티벳 고원이 만들어 집니다. 이 때 몽골 밑에 있던 거대 맨틀 플룸이 올라옵니다. 2,000미터 이상의 고도를 만들며 넓은 평원을 올립니다. 히말라야와 티벳 고원을 밀어 올린 힘은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알타이를 4,000미터 이상으로 올리면서 산맥을 형성합니다. 항가이 산맥이 플룸현상으로 올라오고 알타이 산맥이 밀기 시작하자 땅이 뒤틀어지고 꺾이고, 단층이 형성됩니다. 화이트 케이브에 만들어진 수정은 분별결정화된 현상입니다. 화성암과 퇴적암, 변성암이 고루 섞여 습곡을 형성하고 있는 '하트트쿼트'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몽골의 땅의 일부분은 과거 테티스라 불리었던 바다였습니다. 고대 바다의 퇴적층이 남아 있는 곳도 있습니다. 거대 대륙 판게아를 형성할 때 네 개의 대륙 중간에 있던 바다는 대륙이 모이면서 대륙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그 바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몽골입니다.
아직도 몽골의 여러군데는 지질학적 영향력에 의해 온천이 유명합니다. 심지어 보고되는 논문에는 지열을 이용한
발전소를 제안하는 보고서도 허다합니다.
초원을 떠올리는 몽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항가이산맥! 장엄한 시간의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협곡에서 받은 느낌에 공감합니다.
강을 건너고, 진흙에 빠지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헤치고 갔던 그 길들이 눈에 선합니다.
출발합시다! 탐사대장님의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
멘토님의 덕분에 그새 잊었던, 그때 그 시간속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온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