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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어든 신문을 무심코 폈다가 낯익은 작가를 봤습니다.

 어떤 문학상을 받은 인터뷰 기사.

 심사위원은 '언어 자체가 스스로 존재와 가치를 되묻고 그 운명에 대해 질문함으로써...'라고 선정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전엔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지금은 본질과 많이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 들거나 아니면 하나마나한 말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그것이 문학상이나 소설 자체의 당위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얘기가 딴 곳으로 새는 군요.

 2008년 여름 김애란씨를 흘끔 봤습니다. 고 이청준 선생의 장례식장에섭니다. 앳된 소녀같은 그녀가 몇몇 불콰해진 문인들 틈에 조용히 앉아있는 걸 봤지요. 그러고 보니 그날 몰라볼 정도로 마르고 얼굴이 까맣게 된 고 이윤기 선생도 봤습니다. 홀로 왔던 이윤기 선생이 조문을 마치고 서둘러 장례식장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알아보고 어떤 분이 '아니 이윤기씨 아니야?'하고 소리지르자 이윤기 선생은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다시 고개를 돌리더군요. 병색이 완연했고 이후 돌아가셨지요. 김애란씨의 젊은 외모와  이윤기 선생의 초췌한 모습이 그날 이청준 선생의 장례식장에서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었습니다. 

신문 기사에서 그녀를 보고 이청준 선생을 잠시 떠올렸습니다.

이청준 선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관련된 몇 개의 기억이 있는데 그 중에 생각나는 바가 있어 컴퓨터의 옛 이미지 파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여름입니다.

이청준 선생은 생전에 강진 마량포구의 '완도식당'에서 맛깔난 생선 백숙을 드시고 어머니를 생각하곤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의 호가 미백未白인데 그 이유는 선생의 어머니가 머리가 허옇게 센 아들의 절은 한사코 받기 싫다고 하셨거니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친구(고향후배인 김년식 선생인데, 그가 먼저 호를 백야라고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청준 선생이 그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며 호를 자신에게 주면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고 합니다)가 자신이 그에게 준 호인 백야白也대신 '아직 백발이 아니다'라는 뜻의 미백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답니다. 그래서 미백입니다.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많은 이청준 선생 덕에 그날 나는 강진 쪽에 왔다가 동료들을 이끌고 포구의 완도식당엘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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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 선생의 저 시가 남아있군요. 저 액자는 이청준 선생이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신거라고 합니다.


 마량이경馬良二景


 (1)

 강진만 

 뻘길따라

 갯나들 가는 길에


 까막섬 

 반겨주는 

 마량포구 완도집


 정성을 담아내는 한창나이 아낙네는

 시어머니 솜씨 배워

 모습 또한 닮았나


 (2)

 어머님 

 그리워서

 갯나들 가는 길에


 파도가 마중하는 

 마량포구 완도집


 재 너머 계시온데도 곧장 가지 못하고

 흰 머리 송구스러워 

 한숨 돌려 가는가


  cf.까막섬은 마량포구 앞 난대수림으로 꽉 찬 작은 섬 이름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선생의 시를 읽고 다시 아련해지더군요.

액자를 뒤집어 보니 선생이 그 이후 다시 들러서 적은 메모가 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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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남긴 말들로 그를 추억했던 생각이 납니다.

 '소설 따위'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보다가 이청준 선생의 깊은 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다시는 그 따위 실언은 

하지 않습니다. 잔재주를 자신의 실력으로 생각하는 일부 문인들보다, 조용하고 웅숭깊은 사색을 통과한 이청준 선생의 글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몇몇 예술 장르가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언어를 풀어놓는 문학이 갖는 무게감은 각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 고향친구가 늦은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해서 '너가 당선이라니 대한민국 문학은 다 죽었느냐'고 농을 치긴 했지만 오랜 세월 준비하고 다듬어오면서 주류와는 다르게 많이 읽고 경험하며 제 지평을 넓히면서 꿋꿋이 글을 써온 친구에게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청준 선생이 그립습니다.

사실 일면식도 없으면서 (이상하게 그 분과 매우 친하게 지냈던 몇몇 분을 압니다) 그의 말과 그의 글에서 아직도 생생이 살아있는 이청준이라는 인격체를 느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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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 널리 알려진 정태춘 선생은 실은 섬세한 시인이자 바이얼린과 얼후 연주자, 그리고

진보적 액티비스트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서예 배우는 맛에 푹 젖어 있다고도 하십니다.

[메이홀]의 관장은 방명록에 장난삼아 남겨놓은 오언절구를 액자에 끼워넣어 전시했더군요.


사람과 글.

언어와 행동, 그리고 인격.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었습니다.

 

 

*

 

(실은 이번 주에 읽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를 읽은 후

언어와 글에 대해 상념이 끊이질 않더군요. 그런 맥락에서 적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