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김치를 먹기 시작한 것은 30대가 되어서 정확히는 34살 무렵입니다. 이제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면, 되돌아오는 질문은 "아니 어떻게 한국 사람이 김치를 안 먹어요?"입니다. 그럼 전 " 아... 네... " 라고 얼버무립니다. 그냥 김치는 맛없었다가 제 속내입니다. 어쩌다 밥상 위에 올라 온 백김치와 겉절이는 한두 점씩 먹으며 살아왔고, 김치찌개는 가끔 먹었으니 아예 안 먹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김치를 먹게 된 계기는 사찰음식 수업을 듣고 난 이후부터입니다. 공연 무대미술가라는 직업에 대한 권태와 삶의 싫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2011년이었습니다. 단순하고, 한 가지 고민을 30분 이상 못하는 성격인 제가 몇 달째 가라앉은 모습으로 지내는 걸 보신 친정엄마의 권유로 사찰음식 강좌를 수강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에 그다지 취미도 재능도 없는건 알고 있었으나, 딱히 할 일도 없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배우다 보니 재료에 충실한 담백한 요리가 제 입맛에 잘 맞았고, 음식 만들기 또한 재미있어 이런저런 다양한 음식수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음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김치'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지만 우리네 밥상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간장, 된장, 고추장 그리고 김치니까요. 또한 요렇게 조렇게 만든 예쁜 장식을 중요시 하는 음식 만들기는 영 성격에 맞지 않아 토속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있었습니다.

 

 

제가 배우는 선생님께서는 나주 나씨 25대 종부로 김치명인이라 불리는 분이십니다. 김치를 즐기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몰랐음에도 처음 맛본 선생님 김치는 정말 개운하고 맛있었습니다. 음식솜씨가 깔끔하신 친정엄마의 김치는 '가짜'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특히나 동치미는 정말 끝내줬습니다.

 

 

수업 중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동치미를 우습게 아는데, 사이다처럼 톡 쏘고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한 맛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하셨습니다. 비법을 전수하는 수업이었기에 알려주신 그 비법은 놀랍게도 너무나도 쉬웠습니다. 기본재료에 충실할 뿐 맛 낸다고 이것저것 넣지 않고 담그는 것입니다. 단지 무, 마늘, 생강, 쪽파, 청갓, 삭힌 고추, 대추, 소금, 물이 전부였습니다. 쪽파와 청갓은 없으면 넣지 않아도 된다니, 이리 간단한 재료로 그 맛난 동치미가 되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지난 김장에 그간 배웠던 비법으로 담근 동치미를 오늘 저녁밥상에 처음 올렸습니다. 제법 그럴싸한 동치미를 보며 과연 그 식자재들이 그리 간단한 재료일까 생각했습니다. 해님, 달님, 바람, 물, 흙이 키운 간단치 않은 생명이겠지요.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진정 이것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박자세 회원분들은 다 아시겠지요.

 

 

'자연이 키우고 우주가 담근 맛'이라는 제목의 김치관련 서적이 있습니다. 어찌 이 말이 김치뿐이겠습니까? 세상 만물이 얼기설기 엮여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거대한 우주 속에 먼지보다 작은 나란 존재. 더불어 산다는 걸 단지 사람관계로만 알았고, 음식 공부를 하면서 조금 시야가 넓어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앞으로 '137억년 우주 진화'를 공부하면 전 무엇을 느낄까요. 137억년동안의 일들을 하나씩 알게 될 때 세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 아직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땅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그 날이 기다려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