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귀국하는 아들의 방 청소에 부산하던 시간,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시고모님의 부고 소식. 연세가 94세시다. 지난 여름,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다녀올 때만 해도, 다리는 불편하시지만 여전히 기개가 있으시고 총기도 단단하셨던 터라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왠지 갑작스럽다는 느낌이다. 여러 번의 전화들이 오고 가고 약속을 정하고 문상을 간다.

그 시절을 보낸 많은 어른들에 비하면 그래도 유복하신 삶이셨다. 결혼하고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사형제 키워 번듯하게 세상에 내놓으셨고, 80이 넘도록 남편과도 해로를 하셨으며 짱짱한 기개 한 번 꺽이신 적 없으신 분이다.

그러함에도 삶이 마무리 된 뒷자리는 어딘가 모를 애잔함이 흐른다. 남은 이들이 지닌 별리의 슬픔이 그 자리를 메우기 때문이 아닐까. ‘호상이다. 옛날 같으면 소 잡고 잔치를 하는 날이다하시면서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시는 작은 고모님의 허전함이 함께 잡혀서일지도 모른다.

 

문상을 하고 돌아나오는 길에 두 얼굴이 밟힌다.

경대병원 입원실 침대에 퀭한 눈과 바짝 마른 몸으로 누워계시던 시아버님.

문병 온 두 누이들의 눈물바람에 왜 우냐고 힘없는 손 저으시더니, 그렇게 세상을 등지셨다.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총명한 청년은 전쟁터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상이군인이 되어 귀환한다.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고 헤쳐오더니 겨우 자식 둘 결혼시켜 놓고서는 병마에 맥없이 무너져 버렸었다.

5남매 제비새끼 같은 입들을 먹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셨던 어머니는, 그 자식들 다 성취시키고 난 어느 순간부터인가 하나씩 세상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들 키우던 예전 집에 대한 애착만이 남아 간혹 집에 데려다 달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욕망 조차 없이 하루 하루 시간을 죽여가고 있으시다. 유달리 큰 고모님을 어려워 하면서도 집안의 큰 행사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을 청하곤 하셨는데, 이 시간에도 소파에 붙박혀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계실 것이다. 간혹 고모님들의 안부를 물어보시던 것조차 끊어져버린 지 이미 꽤 되었다.

그 분들이 얽혀서 살아오신 세월 언저리 어디쯤에 끼어 들어 나도 함께 얼크러져 살아왔음에도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살아 낸 삶을 떠올리니, 먼 옛날의 전설인양 아득하고 생경하기만 하다.

 

집으로 들어서니, 소식 궁금해하며 내처 기다리고 있던 엄마의 얼굴이 눈 앞에 다가선다.

그 얽힘의 세월 안에 저 분도 함께 있었군. 새삼스런 깨달음인양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주름 진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주름살 갈피마다, 하이얀 머리칼 가닥마다 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새겨져 있기나 한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