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치료받으러 오는 녀석에게 시를 읇게 한다. 이육사의 ‘청포도’, 김소월의 ‘못잊어’,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조용히 눈을 감고 듣는다.

 

아이에게 물어본다. 이 시 중에 어떤 부분들이 좋냐고 말이다. 청포도에서는 ‘두 손을 흠뿍 적셔도 좋으련’을 몾잊어에서는 ‘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라려’를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는 ‘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는 부분이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이렇게 답했다. '청포도' 에서는 기다린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왔을 때 난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몾잊어' 에서는 ‘세월이 흐르는 그 사이에서 내가 알아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에서는 ’모란이 피기까지만 기다리고 그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슬프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의 할머니가 아들내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집에 찾아 갔더니 아이가 요람에 묶여져 있고 수면제가 옆에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pc방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너무 울어서 그랬단다. 그 자리에서 아이를 안고 집을 나오면서 아기를 본인이 키우겠다고 다짐하셨단다. 그 당시에는 할머니의 집이 일 매출 천만원 가까이 되었다. 사는 일이 어떻게 그런지 아이를 데려오고 얼마 되지 않아 부도가 나면서 평생 살던 집마저 팔고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죄송합니다’라는 쪽지 하나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 아이는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병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엄마가 데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내게 아이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해서 찍어드리고 나서 ‘어디에 쓰실 겁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아이의 엄마가 보지 않겠냐며 미니 홈페이지에 아이가 얼마나 잘 컸는지 올리려고 한다고 하셨다.

양하지를 잘 쓰지 못하는 뇌성마비를 가진 아이가 드럼을 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3년이 넘게 치고 있는 녀석의 실력은 수준급이다. 아이의 꿈은 판사가 되는 것이다. 머리도 명석해서 내가 채근담, 성경구절, 시 등을 읇어 주면 두 번 들으면 거의 외울 정도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올라간다. 내 바람은 시간이 지나 엄마가 보고플 때 이 시들이 녀석에 가슴달램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곤 나직히 미소 짓기를 바란다.

 

8년 정도 이 녀석 치료를 하다보니 어떨 때는 아들처럼 느껴진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그런 감정이 들면 치료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때론 엄하게, 때로는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프게도 치료를 하기 때문이다.

 

치료실을 둘러보면 어느 누구하나 사정이 없는 집이 없다. 때때로 내가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 겨우 겨우 몸을 추스려서 출근을 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아이들과 보호자를 보면 어느새 내 고민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양귀자의 모순에서 나온 얘기처럼 인간은 자기보다 더 큰 불행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자신의 불행에 안심하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런 감정으로 내 고민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내 손을 통해 아이의 몸이 변하고 인생이 바뀌며 아이의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지는 것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케가야 유지는 마음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 자동차를 아무리 뒤져도 속도라는 부품은 없습니다. 우리의 뇌를 아무리 해부해도 마음은 없습니다. 자동차가 달리면서 속도가 탄생하듯, 우리가 행동을 할 때 마음이 들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내 행동에서 마음이 태어나는 것이다.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하게 된다. 치료사는 아이의 인생을 손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에 소망을 빌어본다. 어쩌면 내 평생의 소망이기도 하다. 내 소망은 내가 하는 행동에 향기가 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때때로 가슴이 먹먹해져 치료할 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뛰어놀던 아이가 아무것도 못하고 내 앞에서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다. 아이가 발이 커져서 롤러블레이드를 못타는 걸 보고 새걸로 사줘야지 사줘야지 했단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다며 그 때 사줬어야 했다고 아이 아버지가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아이를 평생 키운 할머니가 옆에서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신다. 아이를 볼 때면 별 생각 없이 치료를 하다가도 뛰어 놀았던 아이를 생각하고 있을 할머니를 보면 심장 언저리에 썰물 빠지듯 텅 빈 공간이 느껴진다. 이럴 때 치료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더 내가 하는 손길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하는 치료로 희망을 보기를 원한다. 내가 하는 노력들이 산들거리며 불어와 스친 향기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 듯 웃기를 바란다.

 

왼손과 오른손이 부딪쳐 나온 것을 박수 소리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일어나는 소리를 인연이라 한다. 왼손도 오른손도 박수 소리를 자기라 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만든 인연의 소리도 주인이 없다. 그러니 기억하기를 바란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 인연을 말이다. 내 치료가 기억되기보다 아이의 웃음이 기억되면 좋겠다. 올 한해에도 많은 미소가 나를 더 미소짓게 하기를 바란다. 60년 만에 찾아 왔다는 흑룡해에 비는 내 소망이며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