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 시절
차마 못 가는 곳이 있다.
팔공산 팔부능선 어디쯤
들리는 것이라곤
노스님의 기침소리와
문풍지 울리던 솔바람
허공 가득한 함박눈의 소리없는 아우성
보이는 것이라곤
백흥암 뒤 대나무 숲에
한가히 머물던 여름 산 안개
저녁이면 삼 십 리 밖 대구선 상행 열차의 은은한 불 빛
언젠가 가 보리라 하지만
그리 되지 않는 곳이 있다.
옛글 옮김니다.
(대학 시절 방학이면 항상 영천 은해사 소속 팔공산 정상 부근 암자에서 보냈다.
5년에 걸쳐 15개월을. 너무 높은 곳이어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사람이라곤 주말에 지나가는 등산객 서 넛 뿐인 곳. 지금도 그 때 보았던 전공 책에는 촛농 얼룩이 있는데,
추억이. 옛 추억이 쏟아질 것 같아 차마 못 가보는 그 곳, 팔공산 팔부능선 쯤에 있는
마음속의 한 점)
저도 방학때면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곤 했는데,
박사님처럼 오래 있진 못했지만 그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한 스님께서 산꼭대기 암자에 계시는 묵언수행중인 스님께 저를 데려다 주셨는데,
조각마루에서 조그만 상을 가운데 놓고 세 명이 말 한마디 없이 마주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
서해와 남해에 동시에 황혼이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옆에서는 동자승이 멍멍이와 뛰어놀며 공을 차고 있었구요.
지칠 때마다 그리워지는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