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오라

                 박노해

나는 머릿속의 진리를 믿지 않는다.
네 입술의 사랑도 뜨거운 가슴도
이젠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나는 오직 네 발길이 가는 곳
너의 두 발이 딛고선 자리의
발자국의 무게만을 믿을 뿐이다

마음 가는 곳에 몸은 가지 않지만
발이 가는 곳에 마음은 늘 함께했으니
오라, 두발로 오라, 내 사랑이여
너는 나직한 발자국에서 피어났으니

 

작년 가을 '광명YMCA 촛불대학' 에서 박문호 박사님을 모시고 총 4강-16시간, 그해 겨울 제2회 '박문호박사님의 특별한 뇌과학' 총 6강-24시간, 지난 일요일에 종강을 한 제3회 특별한 뇌과학 총8강-36시간, 굳이 수치로 표현하는게 큰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떠나보는 자연과학 공부의 여정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박문호 박사님의 뇌과학 강의를 접했을 때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일단,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는 것, 무슨 외계인이 제 눈앞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을 그리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해야할까요 ? 다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간 직업적으로 발달한 나의 민감한 촉수를 믿어보자면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나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 정도였습니다. 촛불대학에서 그 낯선 시간들을 근근이 버티고, 그해 겨울 수강한 특별한 뇌과학 강의는 계속되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강의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 '내가 지금 황금같은 일요일 오후 시간에 도대체 여기 앉아서 뭐하는건가, 무슨 뇌과학 논문을 써서 학위라도 받을 것도 아닌데' 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아프나 열심히 나갈수 있었던 것은 힘든 버티기 중간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 영감과 통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주로 인문학적 통찰이었네요.)

 

'아, 척추동물로서 인간은 저러한 존재구나.' (이 '척추동물' 이라는 단어 속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네시간 반 이상의 긴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가슴속에 무엇인가 하나씩은 마치 선명한 칼자국처럼 새겨지는게 있었습니다.

 

꿈은 정서의 시각적 분출이며, 능동적인 행위이다.

 

지난 일요일 제3회 특별한 뇌과학 마지막 강의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뇌로서의 진화의 결과물로 가장 중요한 '신피질(Neo Cortex) 를 배우는 시간인데, 그것의 결과물인 '행동,언어,꿈' 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꿈' 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은 많은 생각들을 일깨웠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이드의 '억압된 욕망과 무의식의 발현' 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뤄집니다. 유명한 꿈연구 전문가인 알렌 홉슨은 '프로이드의 꿈 이론은, 50%는 맞고 100% 틀렸다' 라는 알듯말듯한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있습니다. 

 

꿈에 대한 부분은 오늘 수요모임에서 구체적으로 배운 내용들을 한번 말씀드려 볼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꿈은 잠자는 시간조차도 낮동안 벌어지는 많은 양의 정보를 기억하고 향후, 정교한 운동(행동과 언어)을 출력하기 위한 일종의 학습이자 시뮬레이션 이라고 보시면 되는겁니다. 내용 자체로만 보자면 일종의 말도 안되는 '정신분열' 상태이지만, 그 꿈은 앞으로 다가올 어떠한 위험이나 새로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예측시스템을 위한 '능동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 증거로, 꿈을 꾸는 REM수면 단계의 뇌파를 측정해 보면 '각성' 상태와 비슷한 뇌파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좀더 깊이있게 들어가면 풀어놓을 이야기들이 많지만, 결론은 잠은 정말 중요한 것이고 특히나 꿈을 꾸는 REM수면 단계는 (기억을 하든 못하든) 내 삶을 진화시키기 위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질적으로 충분히 자야만 하는거지요.

 

생각은 별볼일 없는 바람과도 같다, 머리를 믿지 말고 내 손과 발을 믿어라.

 

마지막 강의의 여는 말은, '생각은 별볼일 없다' 라는 또 한번의 충격적인 발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박문호 박사님의 강의는 전체적인 맥락속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한 입시세대들에겐 무척 불친절하고 불쾌할 수 있는 요지가 다분합니다. 그 단계를 뛰어넘어야 그 이면의 깊은 통찰을 스스로 나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생각, 우리는 '사유' 라는 말이 더 친근하게 다가올 것 같은데 어떠한 문제에 봉착했을때 무작위적인 사고(그냥 하염없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일) 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유로부터 어떠한 결과물을 가져오려면 적어도 그 전에 충분한 학습량(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이 필요하며 아무런 준비없이 그 생각속에서 허우적 되어 봤자, 마치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는 꿈처럼 그냥 흘러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생각을 할 시간동안 내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 낫다는 거지요. 이를테면, 어떤 문제상황에서 막연한 걱정보다는 차라리 책을 뒤져 보는 것, 그리고 내 손과 발을 움직여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 충분히 그러한 시간을 가져보아야 그 다음 단계에서 의미있는 사고들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생각과 사유'는 그 다음 과정이라는 거지요.

 

충분한 경험과 학습량이 있고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깊은 사고는 응축된 덩어리의 개념으로 크게 몇가지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행해야할 필연적인 과정은 글쓰기입니다. 생각은 너무도 잘 기화되기때문에 우리는 그걸 꼭 언어로 묶어둘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저장된 장기기억들은 언제고 자신이 필요로 할때 정확한 운동 출력의 훌륭한 뉴런들이 되는거지요.

 

또 한가지, 뇌는 '도제식'으로 배우는 방식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보면서 배우고 모방을 통해 창조한다' 는 겁니다. 그것은 뇌가 시각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며 배운다' 라는 말은 사실 뇌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말인거지요. 아이들에게 '말'로써 무언가 주입하려는 일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것인지 뇌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선명해 집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훌륭한 스승의 등을 보며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런 배움을 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지요.

 

뇌는 단일한 FUNCTION 이 아니다,'예측'을 통한 정확한 '운동'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다.

 

박문호 박사님의 뇌과학 강연의 특징은 '실용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교육시장과 의료시장에서 떠돌고 있는 장사꾼들이 사용하는 뇌에 관련된 화려한 수식어들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다만, 브레인 진화의 역사속에서 느끼고 깨달으면서 앞으로 벌어질 우리의 삶을 잘 예측하고 그에 따른 정확한 운동(행동과 언어)을 만들어 내는것이 뇌과학을 공부하는 진정한 목적인 것입니다.

 

글의 마무리 시점이 다가오니 그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진정한 스승들을 만나기란 이 땅에선 얼마나 어려운지, 마찬가지로 진정한 스승들은 왜 늘 변방에서 외쳐야만 하는지 많은 생각들이 서글픔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한편으론 새로운 희망처럼 떠오르기도 합니다. 새벽 4시45분에 절로 눈이 떠져 두시간을 꼬박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박사님 말씀처럼 제대로 공부한 학습량이 부족한 탓에 매끄러운 글쓰기가 어렵네요. 아직은 안개속 같은 덩어리들만 만져 질뿐이지만 글을 쓰다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내년 3월부터는 '137억년 우주의 진화' 라는 제목으로 길고도 혹독한(제게는 아마도) 여정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감히 엄두가 안나서 시도를 못했는데 내년에는 꼭 그간에 길러진 학습근육으로 버티어 볼 생각입니다.

 

 

어떤 분이 그런 질문을 하셨어요.'도대체 무슨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러 다니냐고, 도대체 공부모임이 몇개나 되냐고' 그러한 저의 대답은, 할 수 있을 때, 훌륭한 스승이 옆에 계실 때, 함께 공부할 동무가 있을 때 가능한한 많이 한다 라고,

 

 

* 박문호 박사님의 자연과학 세상 : http://mhpark.co.kr/

 

* 원문 : http://cafe.naver.com/mindlehis/2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