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전전긍긍하며 공부를 했다. 중력장 방정식으로 프리드만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의 크리스토펠 6, 리치텐서 4개와 슈와르쉴츠의 해를 푸는 중의 크리스토펠 9개와 리치텐서 4개를 반복해서 푼 것이 노트 한권은 족히 될 것이다. 계속해 오답이 나오는 슈와르쉴츠의 R33만 정답을 얻지 못했다. 복잡하다는 부분이 익숙해진 것이다.

 

상대성 이론의 구체적 풀이는 익숙해지는 것이 핵심이다. 너무 생소해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던 수식도 계속 적고, 찾아보고, 풀다보면 어느 덧 진도가 나가고 있었다. 귀한 시간을 내서 발표를 들으러 올 회원들 생각을 하면 최선을 다해 전달하고 싶다. 발표 전날은 2주 만에 집에 온 아들의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일반상대성이론에 집중했다우주 시공의 구조를 밝힌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이해 할 수 있다니, 이런 공부의 인연이 나에게 주어지다니 너무도 고맙고 소중하다,

 

아직 개념적으로 명확히 안 오는 부분이 있었으나 흐름과 뼈대는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며 올려다 본 하늘, 내일 내가 보게 될 하늘은 오늘과 같은 하늘일까? 드디어 발표가 시작되었다. 우주의 구조와 물질의 운명을 밝혀낸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얼마나 되는 사람이 이 중요한 지식을 알고 느끼고 즐길 수 있었을까? 갑자기 뜻하지 않은 뜨거움이 울컥한다. 당황스럽다. 가만히 마음을 달랬다. 내가 준비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1. 측지선 방정식은 F=ma4차원 버전이고, 중력장 방정식은 뉴턴의 중력이론인 포아송 방정식의 4차원 버전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원리를 도출하는데 기준으로 삼았던 4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중력과 가속도의 등가원리

-일반공변성 원리

-고전물리는 일반상대성 원리의 특별한 일례일 뿐이다

-에너지와 운동량 보존법칙을 준수해줘야 한다.

 

2. 중력장 방정식의 왼쪽항을 계량텐서, 크리스토펠, 리치텐서, 스칼라리치텐서의 순서로 값을 구해 프리드만 방정식이 나옴을 보인다. 이것은 고전물리는 일반상대성 원리의 특별 한 예 일뿐이다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3. 비앙키 항등식에서 아인슈타인텐서를 유도해 중력장 방정식의 왼쪽 항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여준다. 시공의 일그러짐 정도를 알 수 있다.

 

4. 뉴토니안 조건에서 측지선 방정식과 포아송 방정식을 비교하여 비례 상수 K를 구한다. 중력장 방정식은 좌변의 아인슈타인 곡률과 우변의 에너지-운동량 텐서로 구성된다. 중력장 방정식이 도출되었다.

 

5. 구대칭 중력장 방정식의 해인 슈와르쉴츠의 해(ds2)를 구한다. 중력장 방정식은 결국 ds(ds2)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시공간의 변화율을 재는 것이다.

 

6. 계량텐서를 알면 시공간의 변화율을 알게 된다. 미분계수가 중요하다. 물질-에너지에 의한 시공의 동력학이 계량텐서로 표현된다.

 

7. 슈와르쉴츠매트릭과 FLRW매트릭의 차이를 설명한다. 슈와르쉴츠매트릭은 질량이 있을 때 시공의 관계를 보이는 것이며 FLRW매트릭은 우주전체를 4차원의 구라고 보고 우주가 팽창 할 때 시공의 관계를 계산하는 것이다.

 

 

드디어 칠판 앞에 섰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칠판색이 된다. 시작에 엉뚱한 식을 써버렸다. 박사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간신히 쥐고 있던 맥락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숙달되어 몸에 붙었던 것만 살아남고 머리에서 잡고 있던 것은 하나도 인출이 안 되는 사태. 숙성되지 못한 공부량과 훈련되지 못한 전달력이 그만 엉킨 실타래가 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1,23의 일부 그리고 67의 일부만 전달을 했다. 준비한 것의 절반도 안 된다.

 

그동안 20분이나 1시간 발표는 있었지만 2시간짜리 발표는 처음이다. 내용도 어려웠지만 역시 운동장돌기와 마라톤하프는 달랐다.

- 시간안배와 칠판안배를 치밀하게 준비하라.

- 글씨를 선명하게. 찐한 매직펜을 꾹꾹 눌러 쓰고 색깔펜을 활용하라.

- 훈련하고 훈련하고 훈련해서 숙달하고 숙달하고 숙달하라.

- 박사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좀 더 섬세해지자

 

 

집으로 내려오는 길.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봄밤은 일 년 중 며칠이 안 된다. 그래서 늘 감질나고 아쉽고 아깝고 그랬지. 오늘 발표, 준비한 것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속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차이는 없다. 과정이 오롯이 큰 공부였으니까. 집에 와서 옷도 벗지 못하고 책장 앞에 앉아 강의 노트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간 숙달하고 암기했던 수식들이 살아 꿈틀댄다. 언젠간 이들을 다 품어 주리라. 누군가 전해주는 ‘~카더라하는 소문이 아니라 아는 만큼만 보이는 진품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과학자, 수학자뿐 아니라 내 몸을 비롯해 이 우주에 가득한 온갖 조상님이 너무도 고마워서 행복했다.

 

박자세의 공부법이 바로 진품을 만나는 지름길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단숨에 본질에 접근하게 하는 공부방법론의 탁월함에 감탄과 감사를 보낸다. 수학은 정말 위대한 언어구나. 이야기책이 된다. 그것도 어느 환타지보다 재밌는 우주의 리얼을 들려주는. 어떻게 이 공부를 안 할 수가 있을까.


박사님이 상대성이론은 계량텐서, 크리스토펠, 리치텐서, 스칼라리치텐서를 반복 숙달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발을 훅 들여 논 것이다. 문밖에서 계속 망설이다 이제 서야 문을 열고 한 발을 디딘 것이다. 태산을 향한 힘찬 한 걸음을 떼었다. 올 공부 농사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 해 줄 만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우주론으로 연결시켜 좀 더 진도를 뽑고 싶지만 참아야한다. 진행되고 있는 강의와 벡터를 맞추려면. 그리고 내년 137억년까지 실컷 참아보자. 그 또한 공부이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