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사회>

 

15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1200만명 이상의 인디언이 600개가 넘는 부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들어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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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2008년 조사에서는 202개 종족 150만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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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팅불 >                                                                                 <수우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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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르니모 >                                                             <사탄타 - 카이오와 족 추장> 

   

 

크기가 천차만별인 이들 부족은 제각각의 언어에 생활방식도 조금씩 달랐다.

그렇긴 해도 그들 나름의 공통점이 있는데, 지리적 위치와 경제생활을 기준으로 삼으면

몇 개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대체로 열 개 남짓한 문화 지대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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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 지대는 삼림이 우거지고 기후가 온난다습해서 식량이 풍부했다 수렵과 채집을 주로 하되,

경작도 함께 했다. 이로쿼이 연합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부족이다

 

남동 지대의 부족은 한 곳에 머무르며 경작하거나, 옮겨다니며 수렵,채집을 하는 두 유형으로 나뉜다.

 전자의 예로는 푸에블로 부족이 있고 후자의 경우는 나바호. 아파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대평원지대의 부족민은 초원 지대라는 특성 때문에 버펄로를 쫓아 수시로 이동하며 살았다.

 라코타, 다코타 등으로 불리는 수우부족이 이들이다

 

그 밖의 몇몇 지대에 살았던 부족까지 포함하여 북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부족은 독립된 사회를 이루며 살았다

 

 

. 그들은 자발적으로 국가를 만들지 않았다

 

북미 인디언들의 전설적인 전사로 기억되는 아파치족의 제로니모는 19세기 중반 멕시코,

미군과 밀고 당기는 전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천부적인 전술과 지략으로 인디언을 승리로 이끌던 제로니모는 어느 날 아파치족 추장들에게

부족 연맹을 결성하고 자신에게 군사 지휘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추장들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인디언은 왜 소규모 부족사회를 고집했을까.

 

인디언들 각자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주인이며

인간은 모두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서로 간의 차별이나 우월성은 없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들이 만든 ‘위대한 평화의 법’에 따르면 부족의 중요한 문제나 중대한 위기 상황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 부족민의 결정에 맡겨야 했고 이는 일종의 투표였다.

인디언들은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길고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즉, 인디언은 각각 부족마다 고유의 정체성, 즉 부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부족주의(tribalism)였다. 인디언들은 부족끼리 자주 전쟁을 벌였지만 그것은 자원이 없어 그것을

강탈하려는 싸움이 아니라 부족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유지하기 위한 다툼이었다.

부족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부족 간 전쟁의 주된 목적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땅과 자연을 알고, 부족 성원 대부분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부족주의가 생활 전반을

지배했고 부족사회로부터 분리된 더 거대한 정치권력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회규모가 적으면 정치권력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사회가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인디언은 부족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이 생기는 것을 거부했고

따라서 이런 것을 유지하기 위한 '적'이 필요했다.

전쟁은 어떤 면에서는 '제의'(祭儀)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결투에 참가한 전사들은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면 그 이후 화해와 중재가 뛰따랐다

 

부족사회는 권력자가 등장하는 것을 거부했다.

인디언 사회는 부족이라는 관계망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순명했던 사회였다.

지배계급이라는 존재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나누면 족장사회(chiefdom), 부족 (tribe), 무리나 군단(bands),씨족(clan)등이 있다

 

. 인디언 사회는 대칭성의 사회였다

 

그들의 사상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조절하는 작용을 중요시하였다

 

여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자연을 취해서는 안되고 동물도 지구상에서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는 동료라는 생각이 배어있다. 인디언들은 이런 신화를 통해 인간과 동물간의

관계에 있어 서로 대칭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 말한다면 곰은 인간과 자연을 잇는 통로, 대칭적인 사고의 중심에 자리잡은 일종의 매개였다.

곰은 털가죽을 벗겨내면 인간의 모습이고, 인간 또한 곰이다.

이런 신화에서 곰과 인간은 서로 증여적 관계 내지는 대칭적 관계를 지니는 친구다.

인간은 곰의 털가죽을 가짐으로써 곰에게 빚을 지고 제의를 통해 갚는다.

곰은 제의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받음으로써 인간에게 빚을 진다.

 

이러한 공생의 철학을 가진 것이 신화요, 신화적 지식이었다.

부족이나 무리를 지도하는 수장은 곰의 털가죽을 입고 이런 신화를 모두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수장은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다른 신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범고래나 바다표범의 신화다. 곰 신화가 수렵을 하던 여름을 대표하는 신화라면,

바다표범의 신화는 주로 휴지기였던 겨울의 신화였다

 

여름에는 수렵을 통해 인간이 자연의 것을 취했다면 겨울에는 자연이 인간을 취해야 하는

시기라고 신화인들은 생각했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겨울은 자연의 힘(권력)이 지배하는 시기이며

‘식인(食人)’의 시기다. 자연은 인간을 잡아먹고, 잡아먹은 인간을 다시 세상에 뱉어놓는다.

 이렇게 세상에 다시 뱉어진 인간은 새로 태어난 인간, 자연의 권능을 지닌 인간(=초인)이다.

 이 초인이 전사(戰士)의 우두머리, 샤먼이었다.

 

이들은 수장과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었으며, 수장이 여름철 부족의 가족적 체계를 관장했다면

 이 ‘식인’들은 겨울철 비밀결사적 체계를 관장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수장과 식인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권력, 원래 자연의 권능이었던 권력이 인간 사회 내부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것이 국가의 성립과 왕의 출현이다. 왕의 본질은 바로 이 식인이다.

왕이 개체성을 먹고 뱉어낸 존재, 그것이 백성이 된다.

이렇게 해서 신화의 세계, 대칭성의 사고, 자율성의 사회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

 

- 나카자와 신이치 ‘곰에서 왕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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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도자이면서 수장과 왕은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로위Robert.Lowie 는 1948년에 쓴 논문에서 남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사회를

관찰한 결과를 근거로 수장이 갖는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번째 수장은 평화를 가져다 주는 자이다. 수장은 집단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자인데, 그 점은 평화시와

전시의 권력이 대개의 경우 분리되어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두번째 수장은 재물에 애착을 가져서는 안된다. 수장에게는 피통치자의 끊임없는 요구를 물리치는 건

불가능하다. 인색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세번째 말솜씨가 뛰어난 자만이 수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을 통해 국가나 정부라는 것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대칭성의 사회)의 정치적 리더가

갖추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즉 달변에다가 인색하지 않으며, 분쟁을 해결하여 사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서 상당히 고귀한 인격을 갖추어야 했다.

 

수장이 장군의 자리에 머무르거나, 군사력이나 신비한 권력(샤먼)을 겸비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대칭성 사회에서는 수장은 결코 왕이 될 수 없었다

 

인디언 수장 제르니모의 비극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인디언 사회는 1만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속에서

그들의 문명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대칭성의 원리를 버릴수가 없었다

 

하지만 개인을 파편화해 그들의 욕망을 한껏 부채질하고 그런 개인을 국가라는 거대 조직으로 통제하는

서구 산업사회의 물결은 인디언들이 그렇게 살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인디언 부족사회는 강, 산, 골짜기 등 특정 장소에 신앙의 본거지를 두고 이를 경배했기 때문에

홀로 땅을 독차지하는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는 당연히 신세계 미국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미국 정부는 인디언들을 화학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땅을 조각 내서 나누어주는

사유지화 전략을 썼고, 부족의 신앙을 미개하다는 이유를 대며 탄압했다.

 

이름도 마찬가지다.

'늑대와 함께 춤을'  '구르는 천둥' 같은 자신의 이름을 그들 씨족이 숭배하는 동식물이나 자연물을 따서

작명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물려받기도 한다

유명한 전사가 죽으면 후대의 사람에게 그의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죽은 전사가 부활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또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름을 갖는다.

자신은 누구이며, 자신을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정말 자신을 나타내주는 '진짜 이름'에 대한 열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모든 이름은 당신에게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따르고 지키며 살아가야 할 무엇이 된다.

그것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걸어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는 인디언들의 사고방식은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땅에서 본향(本鄕)을 체험하려는 의식과 맞닿아 있다

 

 

 * 지난주 금요일, 차코 캐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 

워드를 현미샘에게 보내고 새벽2시경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드디어 꿈속에서 나는 차코 인디언들을 만났다.

그들과 같이 제의도 지내며, 축제에도 참석하며 밤새도록 그들과 같이 지냈다

꿈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