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즘들어 종종
말씀중에 명사가 바로 떠오르지 않아 "으응~ 거, 거 있잖아"를 연발하시는 어머니.
궁리끝에
2주전쯤인가 아침밥상에서 어머니에게 제안을 한가지 했다. 시를 외우자고.
그래놓곤 이삼일이 지났다.
퇴근을 하고 어머니 침대에 걸터 앉은 나한테 불쑥 얇은 책자를 안기신다. 반야심경.
외웠다는 거겠지? 해보라고 했다.
우와, 한자도 틀리지 않고 매끄럽게 외우신다.
난 요즘 거의 까먹었는데. .
대단하다고 칭찬을 마구 해주고 바로 그 자리에서
'박자세 베스트북'이 아닌 '박자세 베스트 시'중에서
김영태 시인의 '과꽃'을 싸인펜으로 크게 크게 써드렸다.
그리고 시는 이렇게 읽는 거라고 감정을 넣어 약간 오버하며 낭독을 해보였다.
재밌어 하신다.
비교적 짧고 낱말이 쉬운 시부터 시작해 차츰 난이도를 높여 '박자세 베스트시'를 모두 외우고 감상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 목표다. 기억력 증강, 단어학습을 통한 지식의 확장과 정서함양, 모녀간 친목도모등 다각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그걸 76세 할머니가 할 수 있냐고? 울 어머닌,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게 뭐가 됐든. 부지런하고 심지 굳은 울어머니, 중단하거나 해이해지는게 원래 없는 사람이다. 나랑 다르다. 이 프로젝트가 중단된다면 그건 필시 게으른 나 때문이 될 걸 나는 안다.
며칠 후 당연히 '과꽃'을 외우신 어머니, 퇴근한 나를 붙잡는다.
" 가~꽃, 가꽃이 무슨 기억처럼 피어있네~"
"아니, 피어있지"
" 피어이찌."
"기억가치 세상에'
"아니, 누구나 기억처럼"
"아, 그래. 누구나 기억처럼 세상에 왔다가 가네~"
"아니, 왔다가 가지"
반야심경 외우는 것보다 조금은 더 어려운가 보다. ㅋㅋ
그래도 울엄니 신났다. 아마도 시를 읽고 외우는 것은 한번도 해본적 없는 일이실 거다.
하지만 내가 시범까지 보였는데, 난 어머니가 시를 그렇게 초등1년생이 교과서 읽듯 할 거란 예상은 못했었다.
사실 좀 당황했다. 아니 이건 신데, 시라고요 어머니!
엊그제
어깨 인공관절 수술을 위해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셨다.
다음날 아침. 9시 첫수술이다.
서둘러 수술준비를 하고 나니 한시간 정도가 남는다.
"엄마, 과꽃 외워 봐"
웃으신다.
"가~꽃, 가~꽃이 무슨"
"아니, 과~꽃, 김 영 태 하고"
"응. 가~꽃, 가꽃이 무슨 기억처럼 피어있네~"
"아니, 피어있지"
"피어이찌, 피어이찌. 아이고 이 이찌가 안 돼"
둘이 소리내어 웃는다.
요런 분위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웃음이 있다.
옆 침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결코 모를.
쫌 문제라면 어머니가 여전히 60년대 국민학교 1학년생 국어 교과서 읽기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마치 콩가루 속에서 떡이 아닌 차돌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난 희망을 잃지 않는다. 왜냐고?
암기가 먼저지, 이해가 먼저는 결코 아니라는 건 박자세 회원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ㅎㅎ
언젠간 분명 울엄니가
촉촉히 젖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는 한 15도 든채
황동규의 풍장이나 문태준의 가재미를
80평생이 녹아든 그녀만의 정서로 그윽히 낭송을 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괜찮은 그림 아닌가
얼마전 경인방송에서 박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MC :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습니까?
박사님 :
그 질문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데요.
결국 공부는 기억을 잘 하는 것과 관계가 있거든요. 느낌과 관련이 있어요.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게 핵심입니다.
특히 사춘기 때 초등학교 상급생부터 중 3 정도인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 나온 아주 좋은 시
저 같은 경우는 청록파시인, 박목월, 유치환 시인
아름다운 서정을 노래한 시를 20~30편 정도를 암송하게 하세요.
감성이 풍부해지면 판단력이 좋아져요.
감성이 풍부해지면 기억을 잘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브레인에서 기억을 만드는 영역과 감정을 제너레이션하는 영역이 거의 비슷합니다.
인간이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됐냐하면
기억을 좀 더 돕도록 진화되어온 방편이다.
기억이란 현상과 감정이란 현상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감정으로 물든 기억은 평생 갑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감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막 들 무렵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거나 좋은 시를 암송하게 하세요.
그게 나중에 고등학교 특히 대학 박사 학위 이후에도 끝까지 밀도 있고 끈적하게 그 사람에게 남아
평생 정서의 색깔을 만든다.
MC : 그럼 도시보다 시골, 아름다운 곳에 가서 살아야겠어요.
박사님 :
중요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봐도 안 좋은 장면, 폭력적인 장면은 굉장히 파괴적입니다.
원초적 자연을 사춘기 때 많이 노출시켜 주세요.
시가 모녀간의 친목도모로도 좋은 도구가 되네요.^^
당신의 한 평생이 시 한 구절에 녹아 들어가 허공 속에 울려퍼질 그 순간,
아~ 생각만 해도 참 괜찮은 당신.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의지하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두려움이 없다. 반야심경중 제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과꽃의 꽃말은 " 나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 깊다."입니다.
군대시절 화단 관리병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어지간한 사병의 일이 끝나면 그 시간에 화단을 가꾸는 거지요.
하루는 고참 한 명에게 편지가 한 통 배달이 됩니다. 뭐 대충 " 이젠 안녕."이라는 이별 편지였습니다.
그 고참은 넑을 놓더군요. 매일 멍하니 지내다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내게 저 꽃이 뭐냐고 묻길레
과꽃이라고 말해주고 꽃말을 알려 주었습니다. 일종의 배려였지요.
그랬더니 다음날부터 자기가 화단에 물을 주겠다며 가을이 끝나가고 꽃이 질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매일 자신의 마음을 달래준다고 이름을 심화라고 부르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나니 그 시절의 과꽃이 기억처럼 피어납니다.
과꽃이 피는 가을에는 어머니의 시낭송이 향기로이 풍기길 바랍니다.
시간이 향기로이 기억된다면 많은 시간이 지나서도
과꽃의 하늘거림에 기쁜 눈물 몇 조각 함께 그리게 될테니
저도 우리 어머니께 시집 한 권 보내 드려야겠습니다.
예 ~
드디어 엄니 까지 박자세 회원으로 만드시고 계시군요
'프로젝트' 가 입에 붙어 있으십니다 ㅋㅋ
어깨인공관절 엄니 쾌속 치유 all- r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