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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별 것 없다. 물론 별것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별 것과 별 것 아닌 것 사이에 인생의 좌표를 설정한다. ‘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몇 몇은 독하게 자신의 열정을 불태운다. ‘별 것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일부는 자살로 일찍 세상을 마감하기도 한다. 더 이상 의미 없는 하루라는 마감에 시달리기 싫었겠지.

 

별 것 있든, 또는 별 것 없든 그 동안 인류와 자연이 만든 유산은 들여다보자는 입장도 있다. 들여다봐야 별 것 없는지 알지 않겠는가? 문제는 인류와 자연이 쌓은 유산이란 게 거대해서 거의 숨넘어갈 정도라는 점이다. 누군가 인류가 만든 책의 목록만을 하루 종일 읽어도 1년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서 음악에 미술에 건축에 요리에 춤에 영화에, 이런 식으로 목록을 작성하면 끝이 없다.

끝이 없지만 어쨌든 방법은 없다. 그냥 하나씩 챙겨볼 밖에.

 

‘지구의 이해’는 지구과학 대학교과서다. 710쪽이다. 이 책은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 대학교과서에서 호감이 가는 편이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땅과 바위, 바다와 신문에서 자주 보는 지진과 화산 등 이 나온다. ‘지구의 이해’는 지금의 살기 좋은 행성이 된 ‘우연’과 그 ‘우연’이 집적된 ‘필연’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이다. 달에 도착한 미국의 우주비행사 한 명은 달에서 푸른 지구를 바라보고 지구라는 필연에 대해 감동받고 열렬한 전도사가 되었다. 다른 우주비행사는 황량한 달의 표면에서 지구와 우주의 허무와 우연성을 깨닫고 믿었던 종교를 떠나 우울증에 걸렸다.

 

현재 우리의 삶은 그 ‘우연’이 진화한 수 억 년 연장선상에 놓였다. 지구 표면에서 40키로 정도의 지각은 지구 질량의 0.4%에 불과하다. 2,890키로까지 차지하는 맨틀은 지구 질량의 67%를 차지한다. 지구 중심부 핵은 고체인 철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지각에서 겨우 몇 백 미터 깊이를 차지하고 우주와 인문학과 예술을 논한다. 어찌 생각하면 슬픈 우연이고 다르게 보면 필연적인 기적이다.

 

책을 조금씩 나눠 6개월에 걸쳐 읽었다. 탁자에 쌓인 경쟁자 책들이 많아 대학교과서는 조금씩 읽지 않으면 아예 뒤로 밀려난다.

 

책 표지 뒷면에 ‘판’ 그림이 나온다. 지구의 암권은 움직이는 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제목 아래 한반도 주변에서 1년에 태평양판은 81밀리, 북미판은 74밀리 움직인다.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 북미판, 태평양판, 나즈카판이 서로 충돌한다. 태평양판은 10년이 지나야 내 컴퓨터 모니터 길이 정도에 불과한 81센티를 움직인다. 별 것 없다. 이들 판이 믿는 구석은 시간이다. 100년 단위로 끊으면 8미터 10센티다. 만년 단위로는 810미터다. 지질학에서 만 년은 잠깐이다. 그 판의 움직임이 수십만이 죽는 지진을 만들고 궁극에는 대륙의 위치와 모양을 바꾸고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그 거대한 흐름의 일부분이지만 그 흐름을 감지조차 하지 못한다.

 

책의 광물과 암석, 지구의 진화, 지구 내부 시스템, 지표의 시스템을 읽어 나가며 가장 흥미 있었던 부분은 지구 자기장이었다.

지구자기장의 기원은 지구 외핵의 대류로 만들어지는 지오다이나모이다. 지오다이나모로 만들어지는 지구자기장은 단순히 쌍극자로부터 나오는 자기장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며, 외핵의 유동으로 인하여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학자들은 과거 지질시대의 지구 자기장 기록을 조사해 35억 년 전에 자화된 암석을 찾아냈다. 지구자기장은 정상(자북=진북인 상태)이다가 수 만 년에서 수백 만 년의 불규칙한 시간 간격으로 역전되기도 한다. 1억 7천 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고지자기 층서표를 보면 지구 자기장은 역전된 기간도 적지 않다.

 

다음 구절을 보면 이런 책을 읽는 맛이 살아난다.

“암석에 기록된 잔류자화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오다이나모는 지구가 탄생한 초창기부터 작동되었기 때문에 생명체도 지구자기장 영향하에서 진화되어 왔다. 이러한 사실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비둘기, 거북이, 고래, 심지어는 박테리아 등과 같은 많은 생명체들에는 지구자기장을 이용하여 이동 시 방향을 결정하는 감지기관이 발달하고 잇다. 감지기관은 생명체 내에서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져서 지구자기장에 의해 자화된 작은 자철석(Fe₃O₄) 광물 결정이다. 이 광물 결정은 작은 나침반 역할을 하여 생명체가 자기장 내에서 방향을 결정짓도록 한다. 지구생물학자들은 최근에 일부 동물들이 체내에 있는 자철석 결정들의 배열 상태를 이용하여 지구 자기장의 강도를 감지하고, 이를 이동 경로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책은 어떤가 싶어 참고로 산 ‘고등학교 지구과학 ⅠⅡ’ (천재교육)는 이미지와 그래픽이 잘 되어 있다. 대학교과서만큼 깊이는 없지만 요점을 잘 정리하고 쉽게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