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마을 가는 길

터널을 연이어서 다섯 개나 지나왔다. 이젠 없으려니 했는데 또 하나의 긴 터널이 나온다. 그러고도 터널을 몇 개나 지나왔다. 양쪽으로 산들이 계속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음은 벌써 섬진강의 매화마을에 가서 맴돈다. 새벽 5시, 일찌감치 출발해서 서울을 벗어나니 길가에는 파란 풀들이 머리를 디밀고 야산의 나무들은 물기를 머금어 겨울 산의 나무들과는 색깔부터 다르다. 스님들 도반(道伴)여섯 명이 오랜만에 만나 봄나들이를 떠나는 중이다. 운전하는 스님 이외에는 모두 피곤한지 잠이 들어서 바깥경치를 놓치고 있어 유감스럽다. 따스한 봄볕아래 보이는 이른 봄의 활기찬 움직임이 그대로 피부에 느껴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에는 마른풀들 사이로 이름도 모를 노오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봄내음을 물씬 풍겨준다. 차안에는 가수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가 흘러나온다. 봄은 이제 시작인데 노랫말은 봄날이 가는 것을 서러워한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잠시잠깐 한눈을 팔았다.

그러는 사이에 차는 지리산 쪽으로 접어들어 산수유 마을로 유명한 산동마을에 닿았다. 들에도, 산에도, 집에도 ,길에도 온통 흐드러지게 핀 노란 산수유 꽃뿐이다. 길가에는 노란 개나리와 어우러져 어떤 것이 산수윤지 어떤 것이 개나린지 구별이 안 된다. 다만 늘어진 것은 개나리고 서있는 것은 산수유라고 알 뿐이다. 노란색 나라에 놀러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 한적한 마을은 봄을 만끽하러 오는 손님맞이에 한창 분주한 느낌이었다.

섬진강이 굽이굽이 굽이쳐 흐르는 길을 따라 차도 따라서 돌아가니 다압 매화마을이란 간판이 나왔다. 매화가지 끝까지 만개한 꽃잎을 달고 우리를 반긴다. 차창을 열고 매화향기를 흠씬 들이마셨다. 향긋한 내음이 코로 들어와 가슴까지 파고드는듯하다. 청매, 백매, 홍매 등, 이름에 따라 빛깔이 다른 꽃들이 저마다 뽐내고 있었다. 불쑥 아까 지나왔던 터널생각이 났다. 터널을 몇 개나 지나 매화향기를 마시려고 예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니 중국의 고사(古事)인 도원경(桃源境)이 생각났다.

도원경은 동진(東晋)때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어부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기를 잡다가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데 너무나 향기로워 꽃잎을 따라 가보니 복숭아꽃이 핀 넓은 밭이 보였다. 계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동굴이 보여서 들어갔더니 처음에는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지만 점점 넓어져서 나오니까 그곳에 별천지가 있더라는 이야기이다. 이상향(理想鄕)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책속에서는 더러 등장을 해서 우리를 잠시나마 유토피아의 세계로 안내한다. 굴은 같은 굴이지만 한쪽은 도원향(桃園鄕) 이 펼쳐지고 또 한쪽은 매화마을이 나온다. 그러나 이상향이 아니라도 좋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일본 시가껜(滋賀県)에 있는 미호(MIHO)미술관은 중국계 미국인인 I. M. 페이라는 건축가가 이 지형을 보고 어릴 적에 들었던 도원경의 이미지가 떠올라 지상에 도원향(桃園鄕)을 만든 곳이다. 특이한 건축미로 인해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아름다운 건축물”에 뽑히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설계가 끝난 뒤, 아래쪽 마을이름이 도곡(桃谷) 즉 복숭아골짜기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복사꽃은 아니지만 늘어지는 진분홍 수양 벚꽃을 심어 놓아서 벚꽃이 피는 사월 한 달은 라이트 업을 해서 더더욱 멋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벚꽃 길을 지나면 긴 터널이 나오는데 그곳을 지나면 미술관 입구가 눈앞에 들어온다. 문으로 들어가면 도원향이라고 붓으로 쓴 큰 액자가 걸려있어 도원경의 정취를 더욱 더 느끼게 된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의 느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정말로 인간세상이 아닌 도원경에 온 기분으로 미술품을 감상했다. 그 외에도 자연환경을 위해 건물의 80%는 지상에서 보이지 않도록 설계해서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전혀 위화감(違和感)이 들지 않는 그 점만으로도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20%만 밖으로 보이도록 했으면서도 미술관 전체에 채광이 잘 되어있어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정말로 도원경을 표현하려는 건축가의 멋진 솜씨에 놀라울 뿐이다.

피안(彼岸)의 세계로 가려면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건너가야 간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는 데는 그사이에 강이 있어 타고 갈 배가 필요하다. 그 배를 잘 저어서 그곳까지 가려면 쉼이 없는 노력과 빈틈없는 정진력(精進力),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같이 가야만 한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갈 최종목표인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을 도피안(渡彼岸) 이라고 부른다. 저 언덕은 이상향인 셈이다. 가만히 앉아서 이상향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이다. 아무나 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꿈을 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귀에 설은 유토피아니 파라다이스니 하는 외래어와 도원향이니 이상향이니 하는 이야기가 생기는가 보다.

기독교에서는 천당(天堂)이라는 낙원을 말하고 불교에서는 극락(極樂)이라는 이상세계를 아미타경에서 설하고 있다. 정말로 존재하는 곳일까? 부처님은 “극락은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바로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설했다. 원효스님이 밤중에 해골에 든 물을 맛있게 마시고 깨어난 뒤 해골에 고인 물인 줄 알고 구역질이 나는 것을 깨달은 뒤 당나라유학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체유심조란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정말로 그렇다. 지옥도 극락도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는 걸!

중전(中甸)이란 곳은 지금은 중국어로 香里格拉(Shangri-La)이라는 지명으로 바뀐 곳이다. 영국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인 『잃어버린 지평선』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샹그리라는 티페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샹그리라로 여행을 갔을 때 우리가 탄 버스를 운전한 기사가 중국에서는 장족이라 불리는 티베트 사람이었다. 으레 잘 알리라 생각하고 가이드를 통해 샹그리라의 뜻을 물었더니 왠지 울상이었다. 사십쯤 되는 분인데 티베트어교육을 받지 못해 모르니, 나중에 장족이 사는 마을이나 나이든 장족어른을 만나면 물어보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라 잃은 설음을 그 한마디로 느꼈다. 소설에서 이상향으로 그려진 그곳은 6월 하순께라 드넓은 평원이 온갖 꽃들로 가득 찬 들판이었다. 3 천 미터가 넘는 지역인데 환하게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니 이곳이 샹그리라로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라 잃은 장족들이 슬픔을 깨물고 사는 서러운 땅이었다.

이상향은 이 세상에 없지만, 꿈을 꿀 수는 있지 않는가? 아니 꿈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터널을 지나 매화마을로 가서 하루를 꿈속처럼 보내고 가는 길이다. 돌아가는 길!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간다. 서울까지 가려면 몇 개의 터널을 또 지나야 할까? 아까와 같은 설렘이 없어져 버렸지만, 가슴 가득히 매화향기를 품고 간다. 이젠 꿈에서 깨어나 도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기분이 영 씁쓸하다. 애써 태연해보려고 하나 마음이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는 듯하다. 속담에 똥 누러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더니 그것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게다가 비가 오락가락하니까 기분도 우울해진다. 다시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자 차창 밖의 와이퍼가 왔다 갔다 하느라고 혼자 바쁘다. 터널을 다시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터널은 들어갈 때 갇혀서 깜깜하지만, 벗어나면 바깥풍경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이야기로 만든 것이 아닐까? 굴을 벗어난 저편에 이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모두 긴장이 풀어졌는지 곤히 잠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도 오지 않는다. 노래가 흐른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봄비야 내려라! 언제까지 나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라고 소울 가수 박인수가 절규하듯이 부른다. 흐르는 노래와 함께 차창밖에도 세차게 내리던 비가 점점 약해져서 보슬비처럼 살금살금 봄비를 뿌린다. 비를 바라보며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버렸다. 꿈속에서 또 다시 이상향의 세계로 가게 되려는지 모르지만, 눈을 뜨면 현실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샹그리라는 가슴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