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어찌됐든 성가시럽다. 그 이유는 아마도 무수히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도 흔한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기실 시간이 없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여유도 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대다수에게 힘든 일이다. 그래서 마음을 내서 댓글을 다는 것도 나름 대단한 공력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여기서 글을 쓰려면 일단 홈피에 들어와야 하고, 글을 읽어야 한다. 그 다음 재미있는 글이나 관심가는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댓글이라도 달 수 있을 것이다. 댓글이나마 꾸준히 달려면 그것도 나름 자신의 포지션, 즉 시공간 관계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리하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삶속에서 위치를 잘 파악하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언뜻 보기에 이런 전제들은 글쓰기에 있어 사소한 신경씀으로 보이지만, 일정 정도의 정신적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때마다 선택을 해야 한다. 시간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떨 때는 차라리 아예 안하는 쪽으로 맘을 먹으면, 다시 말해서 글만 읽되 글은 안 쓰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글을 안 쓴다는 전략이 일상생활에 훨 편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의 원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상황이 된다. 공부를 안해도 되는, 즉 박자세를 몰랐을 때의 처음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면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다.
공부를 안한다면 모를까, 한다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먼저 책을 읽어야 하고, 암기해야 하고, 그리고 말을 해야 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자기 완성적인 구조를 가지려면 글쓰기라는 것도 해야 한다. 따라서 글쓰기는 공부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길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글쓰기를 통하여 생각들을 정리하고 체계화시킬 수 있으며,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개인적으로도 편하지 못한 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는 일단 유보의 상황에 머문다.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굴리며 글을 쓴다. 이런 형편이므로 글쓰기에 당해서는 항시 글쓰기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등의 원론적인 질문부터 거듭 확인을 거쳐야만 반드시 써야한다는 필연성을 얻는다. 그제서야 그 동력으로 글을 써가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가를 스스로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몇 가지를 떠올리곤 한다.
1. 이 세상에서 나의 위치를 되도록 확인하려 애쓴다. 세상은 내 삶이 뻗어있는 영역이다.
2. 그 위에서 다른 것과 의사소통을 하려 힘쓴다. 다른 것은 나와 관계맺는 어떤 것이다.
3. 소통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그 흐름을 매듭지며 가는 것 하나가 글쓰기다.
회원님들도 공부를 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해본다. 혹 글쓰는 일이 즐거운 이가 있다면, 이는 부모님에게서 문필운을 받고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러하지 못한 듯하다. 이런 분들은 아무래도 약간의 코치를 받는 것도 좋을 듯하다. 뭐 최소한 글을 쓰려면 지켜야 할 몇 가지 등등의 공식도 좋을 듯하고. 글쓰는 일에 도움이 되는 팁을 줄 수 있는 분들은 좀 나눠주어도 복받지 않을까? 특히 글쓰는 일이 즐거운 이들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본다.^6^ 나두 생각해보고 나중에 함 말해봐야겠다.
저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의사소통을 하는 의미입니다.
글읽기와 쓰기는 방식은 다르지만 의사소통을 하는 동일한 행위의 의미를 갖습니다.
글쓰기는 장르에 따라서 문장과 표현 방식이 다를지는 몰라도 글쓰고자 하는 사람의 생각을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하여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글읽기 역시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저자의 입장에서 정확히 전달받는 소통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글읽기에서 비판적 독서를 하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통이 먼저입니다.
글읽기와 쓰기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개념의 명확성입니다.
글을 읽을때 저자가 글을 쓰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개념적 정의가 내가 생각하는 개념의 정의와 일치하는 지 주의깊게 살핍니다. 서로 다른 개념의 범주화가 되어 있으면 글을 읽어도 정확한 저자의 생각을 전달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오해와 무의미한 비판이 앞서기 쉽습니다.
특히 어느 분야의 전문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 분야의 주요 개념을 전문가 수준에서 파악하지 못하면서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모함을 떠나서 경악스러운 방법입니다. 이 경우는 책과 글을 통해 상대방과 소통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개념과 견해를 되풀이하여 반복 강화할 뿐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반드시 사전을 뒤져서라도 명확한 개념과 용어를 파악 하여야 합니다.
글쓰기를 함에 있어서도 읽는 사람이 예상되는 경우는 그들이 가지는 개념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과 다를거라고 예상되는 경우는 반드시 내가 가진 범주화된 개념을 반드시 밝히고 서술하여야 합니다.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 "신"이라는 표현속에는 무수히 많은 신의 개념이 들어있습니다. 저자나 읽는 사람은 차별화된 많은 신의 개념을 파악하고 있어야 명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적 정의가 명확해야 이를 바탕으로 정당한 추론을 통한 내용의 확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글쓰기와 읽기 만이 아닌 대화나 강의를 듣기에도 적용되는 윈리입니다.
의사소통이 출발점부터 잘못되어감을 방지하는 방법이기에 저는 항상 이점을 의식하곤 합니다.
제가 평생 글을 써 본 일이 없음에도 나름대로 쉽고 편안하게 글을 씁니다. 이런 기본적인 요소를 충실하게 고려하면서 의사소통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이젠 글을 써서 제 지식도 체계화하고 남들과도 글로써 대화하고 싶은 데 막상 글쓰기는 쉽지가 않네요. ㅜ.ㅜ
이화종 선생님께서 제 마음을 이리도 잘 표현하셨나 싶습니다. 글쓰기를 훈련의 관점에서 시도하고 있는 데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요. 가장 큰 어려움은 공부량이 적어 정보들이 조각조각의 단편들로 남아 있고
범주화된 지식이 별로 없다는 점이 구요. 다음으로는 일상의 생활에 매여 글쓰기 훈련 시간이 적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글쓰기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박자세 회원님들의 좋은 글들을 읽으면서 차차로 글쓰는 량을 늘려
가겠습니다. 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글쓰기는 무의식에 가까운 말하기와 다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가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일단 글은 순서상으로 정렬되어야 하고, 문맥이 일치하여야 하며, 논리가 맞고, 문법에 맞아야 하는 등의 규칙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은 남는 것이고, 널리 퍼지는 것입니다. 람세스에서 나온 서기관이 되기위한 문제가 역사를 바꾸고, 운명을 바꾸며,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이냐의 답이 끌개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석판에 글을 남겨야 했기에 끌개를 가지고 글을 석판에 파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였으니 남겨지는 것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재정렬되는 것이 글쓰기이니 나의 발전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글쓰기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