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끌벅적한 설 전날의 집.
음식냄새가 명절 분위기를 한층 넉넉하게 합니다.
명절마다 각기 다른 냄새가 있는데, 저의 집에서는 만두 빚는 냄새로 설날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혼 초, 고향이 전라도인 시어른께서 만두 없는 떡국을 끓여내시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앞으로의 설날은 지나온 설날과는 다를 거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1년 6개월 만에 만난 작가지망생 친구.
영하 12도의 날씨에 더욱 또렷해진 냄새로 그를 단박에 알아봤습니다. 쓰던 향수가 여전한 모양입니다.
변함없군.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쉴 새 없이 재잘거렸습니다.
영화 <잊혀진 꿈의 동굴>,
프랑스 조향사협회 회장이 동굴의 냄새를 한껏 들이켜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록합니다.
동굴을 복원하여 테마파크를 조성하는데, 실제 동굴과 똑같이 제조된 향기를 분사한다는 것입니다.
실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겠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세분화한 작업방식이 놀라웠습니다.
테마파크 동굴이 개장하면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살다보면,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소꿉친구와 놀던 골목길과 비슷한 곳을 갔을 때,
20대 첫사랑과 같이 듣던 음악을 들었을 때,
봄을 느낄 수 있는 비에 젖은 흙냄새가 코를 자극했을 때 등등.
뇌의 중요한 기능은,
외부에서 들어온 감각정보의 입력으로 기억을 참조해서 운동으로 표출한다고 배웠습니다.
감각이 그 때 그 시절로 데려다 줍니다. 삶의 갈증을 적셔 줄 그런 추억이 있는 그 곳으로.
온 가족이 모인 설날, 모든 감각이 풍성한 감흥으로 남게 되길 바랍니다.
훗날 거대한 향수가 될 테니까요.
그리움에 젖어 조금이라도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마음 따뜻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참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몇 년전에 이름 모를 카페에 들러 이름이 아리송한 화장실에
이름 모를 비누를 쓰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향기가 너무도 낯이 익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생각했습니다.
오이 냄새인가, 아니야 쑥 냄새야.....
분명 쑥 냄새였습니다.
국민학교가 있고 국민학교 대문 옆에 동물 동상이 진을 치고 있고,
학교 옆으로 도로가 있고, 너머에 벼가 푸르게 자라고
그리고 뚝방이 있고,
뚝방 너머에 우리들이 갔던 놀라운 파라다이스 개천이 흘렀지요.
학교에서 제법 멀어서 빨리 뛰어가야 제일 먼저 물 속으로 뛰어 들 수 있었습니다.
시골 유치원생에 짧은 발걸음으론 먼저 뛰어 들 수 없지요.
그래서 어느 날은 미리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형들이 뛰어 오는 것을 보다가
이내 뛰어 들었지요. 일등으로 물에 뛰어 들던 날 기억이 살짝 사라져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꿉니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 끌고 나를 건져 줍니다.
난 꿈인줄 알았더니
삼촌이 나를 구해 주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꿈속에서 삼촌이 나타나
나를 건져 줍니다.
이 생각을 할 때 즈음에 내가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등장 합니다.
어린 시절은 사라지고, 손을 들어 한 모금 할 때
쑥 향기가 들어 칩니다. 비누 냄새가 내 기억의 창을 엽니다.
물에 들어갈 때 귓 속으로 물이 들어오지 말라고 말아 넣었던
쑥이 내게 쑤~~~~~욱 들어 옵니다.
주변은 커피내음이 가득하고, 나는 7살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시골에 내려와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 내가
아무도 찾지 않는 뚝방에 서서
귀에 쑥을 뜯어 꾸겨 넣는 나를 발견합니다.
물이끼 가득하고 물을 틀어 막은 제방엔 졸졸졸 추억처럼 물이 흐르고
눈에 가득 흐르는 소리 넘치게 받아 옵니다.
냄새, 창호지에 뚫은 손가락 자욱 같아서 시간이 송두리쳐 쏟아집니다.
추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고운 마음 돌아서 챙기시길 바랍니다.
아이들과 만두를 빚었습니다.
형님내외분과 함께 저녁도 하고 오랫만에 작은설의 기분을 만끽합니다.
작은 설날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고하여
밤늦게 까지 가족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 옛날이 생각납니다.
음식냄새가득한 집안에서
그때의 명절 분위기는 아니지만 까치 설날을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