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천문.우주 뇌과학 모임에서 박자세의 발전방안을 발표하면서

"자연과학운동"이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맥으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었습니다.

아래 글 쓴이가 말한 '인문학'의 영역 문(文),사(史),철(哲)은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명확한 존재이유와 가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연과학도 이런 의의와 가치를 개인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봅니다.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가져온 글이 많이 길지만 숙독을 권합니다.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

이계삼 _ 경남 밀양 밀성고,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ygs0720@hanmail.net

우선, 나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가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다. 오후 시간, 5교시, 6교시 수업을 들어가면 모든 아이들이 자고 있는 일도 흔하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 기대감보다 권태감이 엄습한다. 올해도 또 매일처럼 졸음과 싸우겠구나, 하는 생각.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모든 수업을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는 권태로부터 교육 불가능에 대한 나의 사색은 출발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체로 이렇게 극심한 육체적 피로에 노출되어 있다. 왜 이렇게 많이들 자는지,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전국민적인 척추측만증이 만연해 있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건 못하는 아이건, 그들에게는 밤새 잠을 자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아이들의 부족한 잠을 달아나게 할 수 있을 교육적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 턱없이 실패하고 있다. 아니, 아이들의 부족한 밤잠은 학교가 갈수록 무의미한 공간으로 전락해 가는 것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빼앗긴 하루 일과 이후로부터 자신에게 실제로 중요한 뭔가를(그것이 학원 수강이건 과외건 알바건 예체능 교습이건 컴퓨터 게임이건) 하다 보니, 밤잠이 그렇게들 부족한 것이다. 내가 체감하고 있는 바, 오늘날 대한민국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사실상 ‘여관’이다.
교육 당국과 일선 학교 관리자들은 어쨌든 모든 아이들을 깨워서 수업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교육행정을 펼쳐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므로 그들은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그들의 관심이란 오직 드러난 수치(이를테면 대학 진학 성과, 일제고사나 사설 모의고사에서 거두는 성적)일 것이며, 이와 연관된 자신의 관료적 이해관계뿐일 것이므로. 

왜 아이들은 갈수록 글쓰기를 귀찮아할까
내가 체감하고 있는 몇 가지 평범한 사실들을 통해 좀 더 진전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우선, 아이들의 글쓰기와 관련한 문제이다. 국어 교사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서로 돌아가며 모둠 일기를 쓰면서 소소한 일상의 경험을 나누는 글이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쓰는 일이건,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기억, 욕망 따위를 드러내는 글이건, 삶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천금처럼 소중하다고 믿어 왔다. 그동안 이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자평하는 내가 실감하는 변화는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고, 그 글을 읽는 작업이 갈수록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성스러운 글, 절실한 글, 사고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글을 만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글쓰기 교육은 교사의 정성이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고, 나 또한 그 정성 면에서 지속적으로 열도가 떨어져 왔던 것도 분명하므로 이런 표현은 분명 어폐가 있다. 그러나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아이들의 글쓰기에서 갈수록 짙어지는 특징이란 한마디로 글쓰기 자체를 귀찮아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글을 쓴다고 한들, 그럴듯한 이야기,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로 시종하는 글들이 그렇지 못한 글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굉장히 복잡한 인과관계가 작용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뚜렷한 것은 아이들이 지적 사고로부터 퇴화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내면의 진실이건 사회적 진실이건 ‘현실’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른 표현으로 아이들이 내면적인 고립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도취’와 ‘자기혐오’의 쳇바퀴를 돌아가는 미성숙한 자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뚜렷한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더 넓혀 보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는데, 내가 관찰하기에 아이들에게 타인에 대해 기대나 설렘보다 두려움을 먼저 갖게 되는 경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친하지 않은 아이’를 경계하며, 자기들의 동아리 바깥 세계에 대한 적의와 공포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교우 관계는 수없는 오해 속에서 왜곡되며, 작은 일그러짐에도 예민하게 폭발하거나 무너져 내린다. 내친 김에 한 가지만 더 짚어 보자. 아이들에게 청소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 힘들다. 집에서든 어디서든 일손을 돕거나 몸을 써서 무슨 일을 해 본 경험 자체가 전무한 아이들이 적지 않다. 모둠 활동이나 협력적 작업에도 턱없이 무능하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의 성장과 관련되는 총체적인 판단이지만, 학교가 한 존재의 지적 정서적 ‘성장’이라는 과업으로부터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의 뚜렷한 증거이기도 하다. 

학교는 ‘의미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한 번 더 짚어 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런 점이다. 아이들이 의견을 묻는 글쓰기 과제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해 버리고 마는 것, 판단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 ‘그냥’이라거나, ‘그런 것 같다’라고 얼버무리는 것에는, 아이들이 엎드려 자는 것으로 학교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때워 버리거나 흘려버리는 것으로 학교생활의 무의미함을 잊어버리려는 것과 비슷한 동기가 엎드려 있는 것이다. 요컨대, 아이들의 이러한 무기력과 권태의 뒤편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대하고 복잡하고 짜증나는 어떤 세계’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기력하지만 또한 이 세계와의 대면을 주체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갑자기 생겨난 현실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의 흐름과 폭에 최근 들어 분명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내가 지금껏 이야기한 이런 일련의 경향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그래도 중학교 내신 성적 기준으로 50% 내외의 학생들로 채워진 고등학교에서 얻은 실감이다. 양태는 다르지만, 여러 공간에서 여러 방식으로 아이들의 변화는 감지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전문계고를 포함한 거의 모든 학교들에서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의 배면에 광대하게 흐르는 저류가 존재하며, 여러 계기를 만나 분출하고 있다. 이 다양한 변화는 학교가 의미 없는 공간으로, ‘교육 불가능’의 공간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말로써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사회경제적 변화에서 일차적으로 연유하는 현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내가 겪고 들은 현실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지역 중학교들에서 큼직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교사의 체벌에 불만을 품은 아이들이 학교에 불을 지른 일이 있었다. 다행히 큰 사고로 번지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 중학생들이 교사에게 대들거나 위협을 가하는 일은 이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중생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규모의 상납 조직이 적발되고 있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가해자 아이들과 그 부모, 피해자 아이들과 그 부모 사이에서 심적 고통을 겪던 한 여선생님이 자살하는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치를 떠는’ 일들이 생겨난다. 어서 빨리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자기들만의 자리에서는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호소한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교사들은 아이들이 통제가 되지 않고 무엇보다 수업 자체가 너무나 힘들다고 호소한다. 나는 이러한 ‘교육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를 지역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타 지역에 강의를 다니면서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교사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오늘날 많은 교사들에게 화급한 것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교사로서 자기 입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만큼 교실에서 교사의 입지가 위태롭다. 원래 교실은 교사가 행사하는 ‘공식 권력’과 자기네들 사이에 구축된 ‘비공식 권력’이 각축하는 장이었다. 그러나, 교사의 공식 권력을 아이들의 비공식 권력이 넘겨받고 있는 경향이 존재한다. 젊은 여교사, 육체적인 완력을 행사하지 않거나, 인간적인 약점을 노출하는 교사들에게 마치 용암이 약한 지반을 뚫고 분출하듯이 수업이나 학급 운영에 대한 통제를 거부하는 일이 생겨난다. 비공식 권력이 공식 권력을 제압하는 어떤 계기를 겪은 이후로부터 교실은 급속도로 무너진다. 

전문계고는 일찌감치 게토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문계고는 나름의 적응 기제(포기와 인정)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전문계고는 숙련된 기능 인력을 배출하는 과업에 거의 실패하고 있지만, 대학 정원이 이들 전문계고 졸업생들까지도 포괄해 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존립할 수 있었다. 

오늘날 아이들의 이러한 일탈과 저항을 학교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익히 지켜보았다시피, 학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저, 학칙의 처벌 규정을 턱없이 강화하고, 자퇴나 전학을 권고하거나 퇴학시키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학교 바깥 기관에 떠넘기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 전문계고의 선례를 따라 적극적인 일탈과 저항에 대해서는 교육을 포기하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관하면서 연명할 가능성이 높다.

교사-학부모 : ‘공모’
한국 교육의 근원적인 불행이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외에는 다른 삶을 향한 출구가 이 사회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식민지와 해방,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 사회는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도 가능성도 원천적으로 봉쇄된 ‘닫힌 사회’로 급속하게 재편되었다. 따라서 학교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 ‘육체와 영혼의 조화로운 성장’ 따위 전인교육의 가능성은 근대 학교교육이 수입되던 애초부터 거의 박멸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인간의 품위을 지키는 방식, 살림살이를 혼자 힘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독립의 능력, 심미적 감수성, 지적 사고와 비판적 지성의 배양 따위가 학교교육에 기대되지는 않았다.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치는 턱없이 낮았다. 그것이 비교육적 반교육적 습속과 관행으로 점철된 한국의 학교가 지금껏 존립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 체제는 두 개의 축이 지탱해 왔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형성된 공모共謀 관계가 그 한 축이다. 학부모는 다른 곳에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었다. 설령 그런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노동시장으로 배출되는 통로를 학교가 독점한 상황에서 학교 바깥을 사유하는 것은 용기 있는 극소수와 학교로부터 구체적인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교사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체제의 적극적인 공모자였다. 물론 전교조가 태동하던 무렵 짧은 시간 동안 변혁의 열기를 발산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그리고 전교조가 이 체제를 승인하는 사실상의 들러리가 되어 버린 오늘에도 공모 관계에 놓여 있다. 공모에는 독재 정권 찬양이나 입시 경쟁 교육의 기획과 실무를 담당하는 적극적인 방식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고통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하게 외면함으로써 이 체제를 더욱 탄탄하게 해 주는 소극적인 방식도 있다. 예컨대, 일제고사와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지금 전교조의 대응을 생각해 보라. 독재 정권 찬양에 앞장선 옛날 교련과 일제고사와 학생인권에 침묵하는 지금의 전교조가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학생 : 복종과 동일시 
일찍부터 자신의 삶을 관리당해 온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한다, 학원에 다녀야 한다, 그래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당위를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쨌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머니까지 나서서 학원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원에서 돌아올 때까지 밤참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며 부모는 자식에게 최대한의 헌신으로 모범을 보인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이 당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강력한 호소이며 웅변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이 체제에 복종할 수 있게 했던 또 다른 힘은 ‘어쨌든, 너는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예외자로서 자기 암시, 다른 말로 극소수 성공한 이들과의 동일시이다. 이를테면, 중학교 내신 성적이 20% 이내에만 들어도 아이들은 2% 정도의 아이들에게만 허용되는 ‘스카이 대학’ 이상을 꿈꾼다. 동일시의 프레임은 대단히 강력하여 최소 30%, 최대 70% 이내의 아이들에게까지 이 가망 없는 경쟁의 대열에 남아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 복종과 동일시의 프레임으로부터 현저히 밀려난 아이들, 동참할 조건이 되지 않거나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아이들이 자신들을 향한 무시와 냉소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면서 또 한편 자신들만의 성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학교 폭력으로, 때로는 교사에게 대들면서, 때로는 졸업식 알몸 뒤풀이 같은 가학적 유희로써 사회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현실의 밑바탕에 작동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변화   
아이들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이 현실의 변화를 설명하는 여러 관점들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사회경제적 변화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데 두 가지 동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싶다. 하나는 IMF 구제금융체제 이후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경쟁 사회로의 재편이며, 다른 하나는 ‘취업난’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불황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테면 ‘졸업식 알몸 뒤풀이’ 같은 일들 때문이다. 올해는 경찰 권력의 유례없는 호들갑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는 했으나 아이들 세계에 자리 잡고 있는 선후배 사이의 먹이사슬과 그들 동아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학적 유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미 학교에는 상당한 형태로 이와 같은 아이들의 일탈이 교사들의 정상적인 수업과 학급 운영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커다란 질곡이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세레모니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일탈 심리와 학교에 대한 조롱, 그리고 자기네들 사이에 구축된 대단히 조직적이고 공고한 먹이사슬의 구조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졸업식 알몸 뒤풀이뿐 아니라 지난 시절과 구별되는 숱한 극단적 저항과 일탈에 연루된 아이들이 1990년대 중반, 혹은 후반 출생이라는 점이다. 즉, 그들이 대부분 IMF 구제금융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부모의 삶과 가족사를 글로 정리하는 과제를 주었을 때, 굉장히 많은 아이들의 글에서 ‘IMF’가 등장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을 그만두었거나, 그 이후 어려워진 살림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아졌다거나, 더러 이혼을 했다거나, 대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거나 하는 식의 변화 말이다. 물론 IMF 이후로 살림살이가 더 나아졌다는 경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IMF 구제금융 사태는 말하자면 그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를 뚜렷하게 구분 짓는 계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에 미친 일차적인 영향은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양육 패턴이 질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변화를 어느 칼럼에서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들이 이때부터 생겨났고, 생계 비용에 대비한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할 수 없이 맞벌이를 해야 했고, 많은 부모들이 이혼과 별거로 아이들을 홀로 키우거나 시골의 조부모님 댁에 맡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남겨진 아이들이 유소년기의 대부분을 학원과 인터넷, 텔레비전으로 보내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뛰어놀 수 없었고, ‘살아 있는 세계’와 교섭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움터 오르는 그 ‘정직한 에로스’는 억압되었고, 자폐적이고 파괴적인 놀음의 과정 속에서 ‘욕구와 충동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렇게 자라난 첫 세대가 지금 중학교를 졸업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부모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지난 10여 년 사이에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가파른 곡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먹고살려고 몸부림치느라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다. 뒤처지면 곧장 먹잇감이 되는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그나마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부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했고, 그 학원에 다닐 비용을 대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했고, 그래서 더더욱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이 악순환의 시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IMF 구제금융체제 이후에 사교육이 번성했다는 것은 비상한 의미가 있다.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생계 비용에 대비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이 감소되는 시점에서 아이들이 사교육을 시작하는 시점이 더 낮아졌고, 사교육의 영역과 종류가 확대되고 다양해졌으며, 가계경제에서 사교육비의 비중이 더욱 높아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느 논객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패러다임으로써 사교육 학습 노동으로 자식을 내모는 ‘의식 있는 인텔리 부모’의 이중 심리를 비판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설명력을 가질 뿐이다. 오늘날 사교육의 번성은 부모의 학력이나 사회의식,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강파른 곡예가 되어 버린 현실과 그 개선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공부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한 공포감에서 연유한 것이다. 

고등학교에 이어 초등학교, 중학교 교실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은 많은 부분 학원과 과외에 시달린 아이들의 정서, 너무나 이른 시기부터 경쟁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스트레스와 이를 풀어내려는 충동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어차피 공부는 학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며, 학교는 재미없고 따분하기만 하다. 새롭게 배울 것도, 재미도 없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그저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고 싶을 따름이다. 잠을 자든, 떠들고 놀든 어차피 아이들은 학교 끝나면 학원에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이제 보육保育 시설도 되지 못하고, 보육保肉 시설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학교의 교육 불가능은 많은 부분 IMF 구제금융체제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화로부터 발원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교실 붕괴’가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교실 붕괴 현상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으로 일찍부터 자유주의적 분위기에서 양육되었고 소비문화에 노출된 세대가 학교로 진입하면서 권위적인 학교교육과 충돌하면서 생겨났고, 그런 의미에서 문화적 성격이 짙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짙은 농도로 학교 공간을 발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교육 불가능’이 앞서 보았듯이 한국의 사회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연관된 심층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취업난 문제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취업난
학교는 학력을 인증하는 유일한 기관이며, 따라서 상급 학교로 ‘진학’을 시킬 수 있는 권능을 여전히 독점하고 있다. 오늘날 학교는 학벌이라는 증서를 획득하여 노동시장으로 진입시켜 주는 기능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취업이라는 최종의 ‘출구’가 서서히 막혀 가고 있다. 이 부분은 좀 더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우선 내 개인적인 체험을 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재작년 무렵의 일이다. 교무실로 한 졸업생이 인사를 하러 왔다.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해서 많은 선생님들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방 국립대 중에서는 손꼽히는 대학의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그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신 성적이 3년간 평균 1.5~1.8등급 이내에 들어야 하고, 수능 성적 역시 언·수·외·탐 평균 2등급 이내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발령받기 전에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다녀간 뒤, 교사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학과는 예전에는 졸업하고 나면 행정고시를 보거나, 아니면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적지 않게 합격하던 명문학과였는데, 그새 눈높이가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9급 공무원 시험에서도 7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했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 무렵, 나는 교원대학교 학생들의 초대를 받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국어교육과 학생이 와 있기에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쓴 국어교육 관련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 책은 주로 언어교육, 인문교육에 관한 내 체험을 정리한 것인데, 제목을 굳이 ‘삶을 위한 국어교육’이라고 정한 것은 현장 국어 교사나 그 친구 같은 국어교육과 학생들이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말이, 국어교육과 학생들은 이런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과 친구들은 대부분 2학년 때부터 임용고사 준비를 시작해서 4학년 때까지, 방학 때는 노량진까지 올라가서 공부를 하는데, 졸업할 무렵에는 한 학년 30명 중에 겨우 5명 내외가 합격한다는 것이다. 임용고사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교원대 국어교육과는 고3 담임을 해 본 내 경험으로는 거의 ‘SKY’ 대학에 들어갈 정도의 수능과 내신 성적이 되어야 입학할 수 있는, 굉장히 우수한 아이들의 집단이다. 그런데 그 학과에서도 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다른 대학 생활 전부를 희생시키면서 시험을 준비해도 합격률이 20%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런데 그 합격률도 다른 학과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9급 공무원, 중등 국어 교사라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데에도 이 정도로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것이다. 상위권 대학이 이 정도이니 지방 사립대학이나 전문대학은 굉장히 심각하다. 얼마 전, 3학년 때 담임을 했던 아이 몇 명이 학교를 찾아왔다. 군 입대를 앞둔 대학 2학년생들이었는데, 셋 중에 두 녀석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지방 전문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학과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취업 전망이 어두워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 되어 일단 휴학을 했다고 한다. 군 입대 전에 육체노동을 해서 돈을 좀 모아 보리라 생각하고는 함께 몇 달간 일을 했다고 한다. 말투에서 서울 쪽 억양이 느껴지기에 어디서 일했냐고 물었더니 경기도 어디 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여름날 고된 노동으로 눈에 띄게 검어진 낯빛에 서울 쪽 억양으로 말투가 변해 버린 아이와 마주 앉아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군대를 다녀와도 녀석은 이렇게 세상에서 떠돌아야 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이런 취업난은 이제 대학 교육뿐 아니라 초중등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쟁은 갈수록 극렬해진다. 거의 총력전 체제이다. 그것은 물론 역대 정권의 적극적인 교육 시장화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앞선 사례들처럼 ‘교육을 통해 먹고살 만한 지위를 얻기가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등교 마감 시각이 되어 학교 교문이 스르르 닫히기 시작하면 그 이전까지 천천히 걷던 아이들도 선 안에 들어가기 위해 질주를 시작하듯이, 안정적인 삶으로 나 있는 문이 스르르 닫히기 시작하면서 경쟁은 더욱 극렬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일시적인 경기 하강 국면에서 생겨나는 취업난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대단히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사실상 공황에 준하는 수준으로 주저앉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1930년대의 공황을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돌파한 세계 자본주의는 전쟁 후에는 제3세계를 공략하면서 크게 성장했지만, 그 이윤율 성장의 정점은 1970년대였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 이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WTO 체제, 그리고 FTA 체제로의 이행은 사실상 이윤율 저하로 생겨난 손실을 자국의 약자나 제3세계 민중들에게 떠넘기는 과정이었다. 산업자본주의가 사실상 돈 놓고 돈 먹기에 다름 아닌 금융자본주의로 이행한 것도, 물건을 만들어 파는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큰 이윤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카 지 노 자본주의’는 2008년 크게 한 번 요동쳤지만,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으로 틀어막음으로써 몰락을 유예한 것이라는 게 독립적인 경제학자들의 견해다. 사실상 앞으로의 세계 경제는 ‘공황’ 상태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전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부모들은 ‘웬만하면 비정규직, 아니면 청년 실업’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도합 16년을 온통 지옥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이 경쟁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비정규직 산업 예비군이 되기 위해 이런 따위 미친 경쟁에 16년간 뛰어들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IMF 구제금융 시절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그 예민한 후각으로 학교라는 공간의 실질적인 무의미함을 선구적으로 자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라난 세대들이, 그중에서도 일찌감치 경쟁의 대열에서 자신이 가망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아이들이 일탈과 폭력으로써 이 체제를 들이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저 껍데기뿐인 학교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학교에 교육비를 내려 보낼 것이고, 교사들은 월급을 받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를 맡겨야 하며, 아이들은 그래도 졸업장은 받아 두어야 하니깐. 

새로운 페다고지를 위하여
학교는 영토를 다 잃어버린 제왕이 되었다. 이 현실에서 새로운 변화를 기약하기에는 삼박자가 다 부족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학부모는 학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할 것이다. 달리 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응하여 교육 관료들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지금껏 해 왔듯이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그것으로 서로 경쟁시키는 데 몰두할 것이다. 교사 집단은 이미 깊숙이 계층화되어 있다. 그저, 별 탈 없이 오늘 하루가, 한 학기가, 1년이 마무리되기만을 바라는 보신주의가 득세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먹고살기가 강파르게 변해 가면 작은 기득권이나마 쥐고 있는 세력은 물질적 이해관계 외에는 철저하게 무심해진다. 교원노조는 이런 현실을 추종하는 경향이 짙어질 것이다. 혹시 모른다.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져서 감봉이나 감원을 해야 할 때, 그때는 아마도 폭발적으로 분출할 것이다. 교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아이들은 삶의 기술도 가르쳐 주지 않고, 성장의 경험도 제공해 주지 않으며, 노동시장으로의 진입도 보장해 주지 않는, 오직 자신들을 통제하려고만 하는 학교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교육 불가능은 이제 대세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보수적 흐름을 추동할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범죄와 약물 중독 등으로 공교육 학교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을 때, 보수적인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자신들 몫으로 배당된 교육비로 종교계 사립학교나 홈스쿨링으로 탈출하는 흐름이 생겨났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러했듯 학교 붕괴에 대한 책임을 교원노조(사실상 무기력했음에도) 같은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이나 개혁적인 교육정책 탓으로 돌리려는 흐름도 가속화될 것이다. 최근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보수 세력의 신경증을 보면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지난 시절 진행되어 온 한국 사회의 변화와 무력한 대응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므로 일단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사유이다. 어설픈 희망의 언사, 개선의 노력들, ‘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는 식의 언술은 그것의 현실적인 의미와 도덕적 가치를 떠나 이 교육 불가능을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시키는 것에 기여할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문제를 일으킨 그 마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재개념화해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란 무엇인가’, ‘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새롭게 던져져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아마도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를 ‘어른들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만든 공간’으로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찰’이 밥 먹여 주느냐고,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 성찰은 학교의 존재 의미 자체를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천금처럼 소중하다. 



간단하게 나의 전망을 밝히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학교가 교육 불가능의 공간이 되어 가는 상황은 이런 현실이라도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이들이나, 학교를 통해 무언가 물질적 이득을 챙기려는 이들에게는 확실히 재앙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진정한 교육의 의미와 한국 교육의 현실 사이에 나 있는 절망적인 어긋남으로 괴로웠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12세기 가톨릭 세계의 갱신을 꿈꾸었던 베네딕트 성인의 모토였던 ‘기도’와 ‘노동’이라는 표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종교적 언술이지만, 이것을 오늘날의 교육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인문학’과 ‘농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되는 현실에서 아무런 현실적 쓸모가 없는 것들의 교육적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학교는 현실적 쓸모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해 왔기 때문에 지금 사실상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문학의 가치는 학교교육의 폐허 위에서 이야기될 것이다. 문文은 인간을 언어적 존재로써 완성시켜 주며, 그 너머의 세계로 초대해 준다. 사史는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르쳐 줌으로써 우리의 삶에 역사적 좌표를 부여해 준다. 철哲은 인생의 의미를 질문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는 결국 성찰의 힘에서 오는 것이다.  문·사·철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건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환을 위한 사유에서 또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할 것은 ‘농업’의 가치이다. 여기서 농업은 실제의 농업이면서 하나의 은유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불과 10년 안으로 농사를 지을 세대는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전체 먹을거리의 3/4을 수입해서 먹는 우리나라는 심각한 식량 재앙 앞에 놓여 있다. 농업은 세계 자본주의의 공황적 상황에서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될 수밖에 없을, 인간 생존의 물적 기초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농업은 아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몸의 교육, 실용, 실과, 노작 교육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오늘날 학교교육이 맞닥뜨린 교육 불가능을 솔직하게 인정하자. 그리고 전환을 위한 사유를 시작하자. ‘기도와 노동’, 그리고 그것의 현대적 번역인 ‘인문학과 농업’을 고민하자. 

나도, 우리들 모두도 폐허 위에 있으면서 또한 출발선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