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많지만

스스스로 공부하여 글을 쓰는 기자가 많지 않지요

그 중 한분의 글

 

---------------------------------------

 

유전자, 사람을 만들다

[강석기의 과학카페 86] 진화의 원동력 유전자 중복

2012년 07월 03일

 

●뉴런 성숙에 관여해

 

최근 고릴라 게놈과 보노보의 게놈이 연달아 해독되면서(각각 ‘네이처’ 3월 8일자와 6월 28일자에 게재) 유인원의 게놈 정보가 대부분 밝혀졌다(사람(2003년), 침팬지(2005년), 오랑우탄(2011년)의 게놈은 이미 해독됐다). 이제 이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면 무엇이 사람을 진화의 경로에서 다른 유인원과는 다른 길로 이끌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이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을 비교할 수 있게 된 지도 7년이나 지났는데 막상 게놈상의 어떤 차이가 둘이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는가를 그럴듯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큰 영감을 주는 발견이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소위 ‘언어 유전자’로 알려져 있는 FOXP2의 경우 침팬지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한 결과 사람에서 돌연변이가 생긴 것. 그런데 이 변이가 사람이 언어능력을 갖게 된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9년 10월호 ‘언어 유전자는 존재하나’ 참조).

그런데 최근 사람의 뇌 진화에 관련된 또 다른 유전자가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11일 생명과학분야의 저명한 저널인 ‘셀’에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고 해설 논문까지 붙었다. ‘네이처’ 6월 28일자에도 해설 논문이 실렸다. ‘네이처’가 다른 저널에 실린 논문을 해설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뉴런 성숙에 관여해

논문은 SRGAP2라는 유전자가 사람의 신경세포(뉴런)가 독특한 구조를 띠게 하는 데 역할을 했음을 밝히면서 뇌가 커지는 데도 관여했을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유전자의 변이로 기능이 바뀐 FOXP2와는 달리 이번에는 ‘유전자 중복(gene duplication)’이라는 다소 복잡한 과정이 개입됐다.

유전자 중복이란 한 게놈에 어떤 유전자가 두 개 이상 존재하는 현상이다. 주로 감수분열 과정에서 재조합이 일어날 때 착오가 생겨 DNA 조각이 한 염색체에 몰리면서 유전자 수가 늘어난다. 드물게는 게놈이 통째로 두 배가 되면서 전체 유전자의 중복이 생기기도 한다. 일단 유전자 중복이 일어나면 대체로 다음 단계의 변화가 따른다. 똑 같은 유전자가 두 개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덤으로 생긴 유전자는 변이가 생겨 기능을 잃어버리거나 때로는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된다.

사람의 SRGAP2가 바로 유전자 중복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획득한 경우다. 즉 포유류는 이 유전자가 하나뿐이다. 그런데 유독 사람만은 이 유전자가 네 개나 존재한다(각각 SRGAP2A, SRGAP2B, SRGAP2C, SRGAP2D). 미국 워싱턴대 에반 아이클로 교수팀은 이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해 유전자 중복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냈다.

즉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가고 있던 340만 년 전 쯤 처음 SRGAP2 유전자 중복이 일어나 2A(원래 버전)와 2B가 생겼고 약 240만 년 전에 2B에서 두 번째 유전자 중복이 일어났다(2B와 2C). 그리고 100만 년 전 2B에서 다시 한 번 유전자 중복이 일어나 2D가 생겨난 것. 인류의 계보에서만 일어난 이 현상은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프랭크 폴루 교수팀은 이어지는 논문에서 그 답을 제시했다. 즉 유전자중복으로 생긴 2C유전자가 새로운 기능을 가지면서 인류의 뇌진화에 관여했다는 것. 먼저 SRGAP2유전자의 기능을 살펴보자. 뉴런은 주변의 뉴런과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수상돌기라는 가지를 뻗치고 있다. 그런데 수상돌기를 자세히 보면 수상돌기 가시라는 돌출부분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수상돌기 가시는 시냅스의 신호를 주고받는데 관여한다. 사람의 뉴런은 다른 영장류나 설치류에 비해 수상돌기 가시의 숫자가 많고 밀도도 높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SRGAP2는 수상돌기 가시의 성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발생초기 일찌감치 수상돌기의 형태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수상돌기 가시가 빽빽한 사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연구자들은 네 가지 유전자의 발현 정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다른 포유류의 SRGAP2에 해당하는 2A와 함께 2C만이 충분히 발현돼 단백질을 만들었다. 반면 2B는 발현이 미미했고 2D는 발현되지 않았다. 결국 2C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뇌팽창 보여주는 화석 결과와 잘 맞아

물론 사람을 갖고는 실험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2C유전자를 생쥐의 게놈에 넣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2C는 SRGAP2의 작용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수상돌기 가시의 성숙을 늦춰 계속 가시가 생기게 해 조밀해지고 대뇌피질이 커지는 효과를 냈던 것. 결국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SRGAP2 유전자 중복으로 대뇌의 구조와 크기가 바뀌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1970년대 과학자들은 정신지체가 있는 아이들은 수상돌기 가시가 적고 형태도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아이클로 교수팀은 뇌 발달 장애가 있는 환자들 가운데 일부가 2A 또는 2C유전자 이상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또 사람이 상대적으로 신경질환에 취약한 현상도 유전자 중복처럼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인류의 뇌가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오류가 날 확률이 높으므로).

한편 이번 분자유전학 연구결과는 화석을 토대로 한 고인류학 연구결과와도 잘 들어맞는다. 즉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뇌의 팽창은 호모(Homo)속이 등장한 2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걸로 나타나는데 2C유전자의 원형이 나타난 유전자 중복이 일어난 게 240만 년 전이기 때문이다.

●컬러 보는 것도 유전자 중복 덕분

사실 유전자 중복은 생명체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사람과 관련된 예를 하나 더 들어본다. 우리는 컬러로 세상을 지각하는데 사실 이는 포유류에서는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이다. 즉 영장류만이 3색형 색각(trichromacy)을 지닌다. 즉 3가지 색소단백질(포톱신)이 3원광인 파랑, 초록, 빨강을 다르게 지각해 다채로운 총천연색을 볼 수 있는 것. 반면 포유류 대다수는 색소단백질이 2가지뿐이어서 2색형 색각(dichromacy)으로 세상을 본다.

2색형 색각으로 바라본 과일(위)과 3색형 색각으로 바라본 과일(아래). 3색형 색각으로 봐야 과일의 성숙도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marmosetcare.com 제공

2색형과 3색형이 본 세상은 꽤 다른데 2색형 색각은 녹색~노란색~빨간색에 걸치는 긴 파장의 색 스펙트럼이 노란색 계열로 뭉뚱그려져 보인다. 한편 영장류에서 3색형 색각이 진화한 이유는 과일을 따먹는데 유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즉 열매가 익으면서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는 데 2색형 색각일 경우 이 변화를 잘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3색형 색각은 녹색과 빨간색이 대조가 뚜렷하다(뇌가 보색관계로 인식하도록 진화했다)!

미국의 월간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009년 4월호에는 사람의 3색형 색각이 어떻게 나왔는가를 설명하는 글이 실렸는데 무척 재미있다. 요약하자면 영장류의 진화과정에서 색소단백질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유전자 중복(재조합 오류)이 생기면서 2색형에서 3색형이 나왔다는 것.

먼저 우리가 어떻게 컬러를 보는지 알아보자. 포톱신은 3가지가 있는데 S형은 430나노미터(파란빛)에서 최대 흡수율을 보인다. 파장이 짧은(short) 빛이어서 S다. 다음으로 M형(medium)은 530나노미터(녹색빛)에서 최대 흡수율을, L형(long)은 560나노미터(노란빛)에서 가장 높은 흡수율을 보인다. 망막에 있는 원추세포에는 각 세포마다 한 가지 포톱신이 존재해 빛의 정보를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한다. 뇌는 세 가지 원추세포가 보낸 신호의 세기를 비교해 ‘색을 창조한다’.

S, M, L형을 비교해보면 S형은 구조가 좀 다르고 M형과 L형이 거의 같다. 포톱신 단백질은 아미노산 364개로 이뤄져 있는데 불과 3개만 다르다. 또 S형은 7번 염색체에 있는 반면 M형과 L형은 X 염색체에 나란히 있다. 즉 M형과 L형은 원래 하나였던 유전자(M형)가 유전자 중복을 일으킨 결과다.

그런데 영장류의 3색형 색각은 좀 복잡하다. 사람이 속해있는 구세계(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영장류는 정상적인 3색형 색각이지만 신세계(중남미) 영장류는 암컷 가운데 일부만 3색형 색각을 띤다는 것. 많은 과학자들이 이 현상을 설명하려고 고심했고 마침내 근사한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즉 오늘날 영장류의 공동조상은 다른 포유류처럼 S형과 M형만이 있었다. 그런데 M형 포톱신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최대 흡수 파장대가 바뀐 L형과 또 다른 형(M형과 L형의 중간 형태로 ML로 표시)이 생겨났다. 오늘날 신세계 영장류가 바로 이 상태다. X염색체는 성염색체이므로 수컷은 하나, 암컷은 쌍으로 있다. 따라서 신세계 영장류 수컷은 2색형 색각일수밖에 없고(S와 M 또는 S와 L 또는 S와 ML) 암컷은 2색형이거나(두 X염색체가 같은 형을 지닌 경우) 3색형이다(두 X염색체가 다른 형을 지닌 경우).

영장류 색각 진화를 나타낸 그림. 먼저 M형 포톱신 유전자의 변이로 ML형과 L형이 나왔고 4천만 년 전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이 분리되면서 구세계 영장류에서 M형과 L형의 유전자 중복이 일어났다. 그 결과 신세계 영장류는 암컷 일부만 3색형 색각인 반면 구세계 영장류는 암수 모두 3색형 색각이다.
이런 상태에서 약 4천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이 떨어졌다. 이제 지리적으로 고립된 영장류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 결과 남미의 영장류들은 색각에 본질적인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구대륙 영장류에서는 어느 순간 유전자 중복이 일어나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 즉 감수분열 과정에서 M형을 지닌 X염색체와 L형을 지닌 X염색체에서 재조합오류가 생겨 M형과 L형이 한 염색체상에 놓이게 된 것. 보통은 유전자 중복이 일어난 뒤 여분의 유전자가 변이로 새로운 기능을 획득하는데(SRGAP2C처럼) 이 경우는 이미 기능이 달라진 대립형질 유전자가 한 배를 탄 것이다. 한편 ML형은 진화과정에서 도태됐다. 그 결과 구세대 영장류의 구성원인 사람은 제대로 된 3색형 색각을 지니게 됐다.

그런데 최대 흡수 파장이 조금 바뀐 단백질이 하나 더해졌다고 해서 색의 관점에서 밋밋한 세상이 다채로운 세상으로 바뀔 수 있는 걸까. 이런 지각의 변화가 뒤따르려면 시각정보처리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의 변이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2007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은 이런 의문에 대한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필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존스홉킨스대 제레미 나탄스 교수팀은 2007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의 L형 유전자를 생쥐에 집어넣자 색각이 예민해졌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원래 생쥐는 2색형 색각이기 때문에 긴 파장의 빛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L형 유전자가 들어가 3색형이 된 생쥐는 긴 파장의 빛을 구분할 수 있었다.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포유류의 뇌가 상당히 유연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대형 유인원의 진화에서 사람에 고유한 유전자 중복 자리는 140여 곳으로 알려져 있다. SRGAP2는 그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유전자 중복들 가운데 일부도 인류의 진화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어떤 놀라운 사실이 밝혀질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