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의 개똥 철학과 박자세 과학의 관계적 想像

 

. 201811월 도봉문화정보도서관2층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연에서

 

1. 강연 내용과 부딪친 생각

  

哲學이란?- ~게 보는 것. 앞으로도, 뒤로도...

  

지구상에서 人類最惡의 동물인 이유 :

BC5천년 경 말()을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후 

인간을 가축화(노예화奴隸化)하는 문명의 시작.


그 뒤로 지금 자본주의 세상까지 인류를 관통하며 피흘리는 2 P 

PROPERTY / POVERTY

-------------------------------------

날 몸으로 태어나 빈 몸으로 가는 인생인데,

 

잉여가 생기면서,

잉여를 욕망하므로

인간의 고통은 연속되는 지금....

 

'소유(to have)'가 아닌 '존재와 있음(to be or being)'의 영토로 건너가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는 자각自覺의 떨림으로부터 자꾸 멀어져가는 우리네 인생의 가엾음을 어찌할거나...

.............

생각나는 책과 사람 :

'소유의 종말' - 제러미 리프킨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슈마허

'무소유' 부제:삶의 향기 그리고 텅 빈 충만 - 김세중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 - 장혜민

----------------------------------------------

2. 강연 聽 衆 問 答

Q1. 아이 훈육으로 고민하는 엄마의 질문에 대한 답 :

 

A. 勿忘 勿助長, 농부 아들의 우화(寓話)-

     빨리 자라게 할 요량으로

     밤에 논에 나가 갓 심은 모 자락을 1cm씩 뽑아 올린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 아들.

 

      모가 다 뒈졌다.

 

Q2. 50을 넘긴 오싱녀(original single woman)의 결혼 상대선택의 고민에 대한 질문과 답.

 

A. 사랑은 배고플 때 딱 한 공기의 밥만큼만 되어야...

        사랑도 넘치면 서로 지옥이 된다..

 

Q3. 내 질문과 답 :

      동물로 생존(生存)하는 인간과

      사람으로 생활(生活)하는 인간이

      그 경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A. 선문답처럼 답이 왔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다. 한 쪽 발은 앎이고 다른 발은 행동이다.

     앎의 한 쪽 발만 고집하여 나아가면 나머지 다른 발의 행동이 따라오지 못해 가랑이가

     찢어진다.

     행동도 마찬가지.

 

     그래서 인간은 앎과 행동이 교번交番으로 움직여야 하는 존재다.

      그래야 지혜智慧가 발현發顯하여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3. 강연과 부딪침 후 단상

     누구나 하나의 머리를 이고 살지만

     왜?

     지식(知識)이 아닌

     지성(知性)으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각성(覺性, 覺醒)?......

 

이상이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강연장과 그 후 내 안에서 부딛쳐 일어났던 풍경이다.

 

 

. 201916일 서래마을 명궁빌딩3층 박자세의 시즌4 35회 과학리딩모임에서

 

매년 겨울, 동면의 계절임에도 깨어 공부하는 사람들의 박자세 과학리딩모임’.

 

심심하면 놀러 가는 동네 도서관 옆 공원을 걷다가 느닷없이 말을 걸어 온 큰 돌멩이에 멍 때리다가 무심코 눈 길 돌려 부딪친 스마트폰 박자세 공지.




암석학과 지질학’     하~


그런 시절인연으로 햇수로 2년을 건너뛰고 서래마을로 향했다.

돌멩이와 흙더미의 오래 된 노래를 들으러.....

 

12주간 암석학,지질학 강의 중 첫 번째 시간에 벼락처럼 들이닥친 


주기율표의 충격衝擊!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118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모두 약138억 년 전 빅뱅 후 100만분의 1초(1us, 1마이크로세컨드)에 나타난 양성자와 빅뱅 후 38만년 때 우주 온도가 내려가면서 약간 굼벵이가 된 전자가 양성자에 포획되어 탄생한 수소원자 H의 자손들이다. 이로써 138억년 우주의 역사 중 38만년 만(0.00275..%의 시간)에 모든 사건의 90%가 끝났다!

 

첫 시간 강의 솟대 꼭대기에 걸린 외침!

 

. 우주는 Number!(IDEA!)

. 지구가 만든 원소 없다!(영구 없!)

. 지구는 원소를 결합했다!(지구는 마담 뚜다!)

 

그리고 주기율표 원소의 또 다른 진짜 이름 


Electron configuration!


1부터 자연수로 증가하는 원자번호 원소들의 전자구조식(electron configuration)만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으면 자연과학의 많은 영토를내 발 아래 둘 수 있다?”는 暴言('폭탄같은 발언'의 줄임말이다).

 

그러면 주기율표는 마스터키란 말인가? 오호! 이게 팩트라면 가성비 최고의 공부가 되겠는걸!

 

. 내 일상의 개똥 철학과 과학의 관계적 想像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에서 상여가 나갔다. 그 상여 안에 누운 사람은 얼마 전까지 가끔 우리 동네 꼬마 녀석들과 놀아주던 아저씨였다. 처음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충격이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이상한 발견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지낸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자기는 죽음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것도 별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이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 사건이래로 내 인생을 지긋지긋하게 붙어 다닌 놈은 페시미즘이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정도가 아니라 빛과 그림자처럼 동체란 것. 살아간다는 건 뒤집으면 죽어간다는 것. 산 날 만큼 죽을 날이 가까워진다는 것. 죽음 앞에서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 당연 누구나 가지는 욕망, 혹은 좋은 말로 표현하면 꿈을 가진 자들이 참으로 기이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죽음이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무덤덤함이 말이다. 결국 나만 아는 해프닝처럼 끝난 청년시절 두 번의 자살시도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늦게나마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눈 똑바로 뜨고 대면해보자는 심정으로 삶의 태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30년도 더 전에 사놓고 오랜 시간 끌고 다니며 가끔씩 눈길만 주고 처박아 둔 색도 누렇게 변한 활자본 책,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를 몇 년 전에 다시 붙잡고 끙끙거리며 일독한 후 얻은 화두話頭. (날씨 따뜻한 봄날, 도봉동쪽에 누워계시는 선생님을 찾아 뵐 것이다.)

 

- 존재의 형식과 배치, 그리고 변이變移” -

 

어느 시인의 모임에서 건져 낸 말.

인간은 하나의 이다와 수많은 있다사이에 실존하는 존재이다.;

이름은 아무개 하나지만, 그에게는 아버지, 아들, 형 동생, 친구 등등의 다양한 관계의 이름이 붙는다.

 

그리고 석가모니가 마야부인 뱃속에서 나와 일곱 걸음을 걸어 두 손으로 하늘, 땅을 각각 가리킨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쓸데없는 짓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누군지 아는 게 보통 어려워야지! 그래서 중들은 머리 깍고 절로 산으로 가는구나!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라고 그랬나?

 

화두 - “존재의 형식과 배치, 그리고 변이變移” -를 아직 나도 모르지만 대충 풀어 보면

존재의 형식이란 달리 표현하면 너는 누구냐?이다. who am I?

배치時空場 사물들 간의 관계를 뜻한다. interaction..

변이는 변화하는 방향성 운동을 뜻한다. move for

 

어딘가 좀 닮은 것 같다. 의미보다 문구가 3개라는 게.

박자세의 세계를 담는 세 개의 시선 - 시공의 사유, 기원의 추적, 패턴의 발견.

 

내 개똥 철학의 화두와 주기율표의 관계적 상상:

 지난 16일 서래마을에서 주기율표가 벼락 치듯 내리치는 순간 어쩌면 화두의 입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재앙을 불러오는 판도라의 상자가 아닐까 하는 공포심도 들긴 했지만.(알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불리려면 이름이 있어야 하지만 이름은 징검다리일 뿐이고 실상에 닿으려면 건너가야 한다.

 

주기율표가 부른다. 다리를 건너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한바탕 춤을 춰 봤으면 참 좋겠다.

蛇足 - 

여기서의 개똥은 개가 싸지른 똥이 아니라 

개도 먹을 수 있는 유쾌한 사람 똥의 메타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