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4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공부 기본 서적은 사전 
언어 공부는 단어 공부, 언어는 정직해서 공부한 만큼 잘할 수 있어

"색연필로 밑줄을 치고 손글씨를 써가며 사전을 외운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73개 언어로 책을 읽는 게 가능하지 않겠느냐"

낯설지 않은 표현들입니다.

"공부 기본 서적은 교과서
 새로운 분야는 용어 공부, 공부는 정직하다"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자연과학 전체의 핵심을 꿰뚫어 알 수 있는 게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Why] 73개 언어 공부하는 女子

입력 : 2016.05.14 03:00

이혜영씨의 특별한 언어 도전기 

언어 공부 자체가 큰 위안 
남편 유학 따라간 프랑스서 탈출구였던 언어 공부 
나이 들어 암기력 줄기 전에 다시 공부해야겠다 생각 

처음엔 실패기 올릴 생각 
1년 공부하고 생각 바뀌어 
처음 생소함만 극복하면 문법·단어는 어렵지 않아 

공부 기본 서적은 사전 
언어 공부는 단어 공부, 언어는 정직해서 공부한 만큼 잘할 수 있어

2016051301470_0.jpg이미지 크게보기
이혜영씨는 “언어의 큰 줄기는 하나라서 원칙적으로 모든 언어를 공부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이혜영씨 제공
하우사어(語)·바스크어·펀자브어·우르두어…. 이름조차 생소한 이 언어들을 공부하겠다고 매일 사전과 씨름하는 한국인이 있다. 배우겠다고 선언한 언어만 73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자신의 공부 방법과 73개 언어 도전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이혜영(49)씨에게 최근 전화를 걸어 그의 특별한 도전에 대해 물었다.

1991년 이씨는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가게 됐다. 현지에서 회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프랑스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프랑스 도착 2주 만에 공부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언어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씨는 "현지 어학교실에서 멍하니 수업을 듣다가 '이렇게 백날 앉아 있어 봐야 절대 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후 사전과 참고서들을 사다가 외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6개월 만에 프랑스어를 떼고 난 후 스페인어·이탈리아어 등 9개 언어를 더 공부했다. 프랑스까지 왔는데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았다. 갓난아기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었고 이씨가 택한 탈출구는 언어 공부였다. 이씨는 "프랑스에서 고립되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 때 언어 공부를 시작했다"며 "언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안이 됐다"고 했다.

8년 후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언어 공부는 잠시 머릿속에서 잊혔다. 남편 직장이 안정되고 아이도 어느 정도 자라 여유가 생기자 오히려 공부를 손에서 놓게 됐다. 현지 한국인들을 상대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어학원을 운영하던 이씨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언어 공부를 다시 하게 됐다. 이씨는 "암기력이 50세만 넘어가도 눈에 띄게 줄어들더라"며 "더 나이 들기 전에 언어들을 다시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엔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10개 언어를 복습할 생각이었다. 교재를 찾으러 간 서점에서 우연히 인도네시아어 초급 책이 눈에 띄었다. "한 번 쓱 읽어봤는데 생각보다 할 만하더라고요. 그럼 몇 개를 더 해볼까. 프랑스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를 공부했으니 라틴어 계통의 언어들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렇게 하다 보니 공부하고 싶은 언어가 점점 늘어났어요."

73개라는 숫자는 이씨가 미국에서 초보자용 참고서를 구할 수 있었던 언어들이었다. 목표는 '해당 언어로 된 책 한 권 읽기'로 정했다. 2012년에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블로그에 73개 언어 공부 실패기를 올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1년 정도 공부해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독불장군'인 언어는 없더라고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 포르투갈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언어마다 연관성이 있어서 '아, 성공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혜영씨의 공부 기본 서적은 사전이다. 색연필로 밑줄을 치고 손글씨를 써가며 사전을 외운다. 이씨는 "언어를 공부한다는 건 단어를 공부한다는 말과 똑같다"며 "아는 단어가 많아지면 문법이나 독해력은 금방 좋아진다"고 했다. 마음도 조급하게 먹지 않았다. 초보자용 참고서를 한 번에 익히는 대신 가볍게 여러 번 반복해서 봤다. 몰아서 공부하기보다는 일주일 동안 73개 언어를 한 번씩 다 보는 쪽을 택했다. 이씨는 "단기간 내에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73개 언어로 책을 읽는 게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현재 책을 읽을 수 있는 단계까지 간 건 25개 언어 정도다. 나머지는 계속 단어를 외우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73개 언어를 한다고 '곱하기 73'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국어를 할 줄 알면 터키어·일본어를 배우기 쉽고 프랑스어·스페인어·루마니아어를 알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라틴어를 배우기 쉽다고 한다. 우르두어·미얀마어·이란어 등도 처음의 생소함을 극복하고 나면 문법 구조나 단어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반면 배우기 가장 어려웠던 언어는 아랍어였다. 모음이 없는 아랍어는 발음기호 없이는 읽을 수 없어 단어를 볼 때마다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추측하면서 공부했다.

이씨는 "'공부를 하는데도 언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언어는 정직해서 공부하는 만큼 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언어 공부는 책상 만들기와 비슷해요. 상판이 완성돼도 다리가 없으면 책상으로서 기능을 못하잖아요. 책상으로 쓰이려면 100% 양이 차야 한다는 거죠. 언어도 그래요.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다리 하나만 더 완성하면 되는 상태일 수도 있는 거예요. 저도 그때를 기다리며 계속 공부할 생각입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