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19일 첫째 날

인쳔공항에 4시까지 집결하는 문자를 받은 것은 출발 전날이었다. 학습 탐사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몇 차례 서래마을의 사무실에서 사전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맞은 날씨는 생각보다 많이 춥고 더웠다.


모임장소인 공항 내 B카운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용 짐꾸러미를 챙기고 있었다. 송수신기를 담은 지퍼백과 책자를 건네받았다. 책의 무게가 제법 나갔다. 한 손으로 들기에는 손목에 힘이 많이 들어갈 정도였으니 책두께는 알만했다. 트렁크 얹은 캐리어에 몸의 무게를 절반쯤 기대고 책장을 열어 펼쳐 보았다. 깨알같은 글씨가 가득 적힌 B4 사이즈 크기의 종이가 반으로 접혀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공항에 나갔기 때문에 사실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 상태인데다 낮은 조도에서 잔글씨를 내려다보려니 눈이 침침했다.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고 괜히 머리만 복잡하고 설친 잠이 덜 깨서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왔다.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파란색 짐가방에 침낭 등 물건들이 하나둘 들어찼다.


그 와중에 박문호 박사는 대원들에게 쪽수를 알려주며 책을 펴도록 지시했다. 이번 탐사의 대장이신 박사님의 목소리는 새벽인데도 카랑카랑했다.. 대장이 그러한데 하물며 대원들이야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공부에 대한 지적 탐구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답게 모두 대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짐을 붙이고 탑승권을 받아들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까지는 출발이 매우 순조로웠다. 그러나 문제는 비행기가 이륙을 앞둔 활주로에서 발생했다. 활공장을 서서히 빠져나간 비행기의 엔진소리와 함께 가속을 해야할 지점에서 딱, 멈춘 것이다. 직감적으로 기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 한참 기다려도 비행기는 움직이지 않았고 추가점검을 위해 다시 격납고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기장의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 시각은 아마도 보딩 타임에서 두어 시간 흐른 뒤였을 것이다.


하여, 울란바토르의 징기스칸 에어포트 도착 시간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을 가든 공원을 둘러보든, 일정이 있었으나 늦은 점심 식사로 인해 전부 취소되었다. 예상한 일이었다. 몽골의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 그때 그때에 따라 행선지가 달라질 거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 식당에서 먹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맛이 일품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몹시 허기져 있기도 하였지만 손맛도 좋았던 것 같았다. 아무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부르자 사람들은 좀 노곤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애매해서 어디를 갈 상황은 못 되었고. 장을 보기 위해 큰 몰에 들르기로 했다.

가이드인 유로님을 비롯해서 먼 길을 운전해 주실 낙츠카, 아키숙, 앙코뜨라 등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은 러시아제 버스에 각각 나눠 탔다. 버스는 듣던 대로 오래된 차였다. 차 안에서는 연료가 제대로 타지 않아 그런지 매캐한 기름내가 코를 찔렀다. 나는 3호차 버스에 올라탔는데 나이키 상표가 그려진 파란 색 츄리닝의 아홉 살 짜리 사내아이가 타고 있었다. 기사의 아들이라고 했다. 까까머리 사내아이는 아이답게 천방지축 꾸밈없이 뛰놀았다.


장을 본 뒤에 버스는 도로 위를 한참 달렸다. 부족한 수면에, 비행기에서 보낸 지루한 시간 때문인지 피곤이 쉽게 밀려왔다. 졸립고 목도 뻐근하고 등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어디서 야영을 하게 될지 궁금해 할 무렵 선두 차량인 스타렉스가 광활한 초원 위에 차 바퀴 자국을 만들며 길을 내고 있었다. 자리를 잡은 차량에서 각종 장비들을 한 곳에 내려졌고 조 별로 텐트 장비가 든 기다란 가방을 옮겼다.


아, 오늘 밤은 여기서 자는구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몸은 피곤하고 게다가 저녁 때가 되자 바람이 불어 춥게 느껴졌다. 워낙 추위를 타는 체질이라 손발이 시리기까지 했다. 막막했다. 그때, 낮은 구름 사이로 눈썹 같은, 노랗게 생긴(정말 그게 달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상한 물건이 걸쳐 있었다. 그 순간, 앗! 달이 떴네요, 박문호 박사님의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그 신비롭다 못해 괴이하게 생긴 달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에 처음 몇 초, 아니 몇 분간은 그게 진짜 달이란 생각을 미쳐 깨닫지 못하고 멍하게 바라만 봤다. 아무튼 달은 영험한 기운이 있었다. 순식간에 피곤함을 몰아냈으니 말이다. 이어 박문호 박사는 붉은 빛이 감도는 화성과 안타레스 그리고 토성까지 일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할 뿐이었다.

여정의 첫날 밤, 달과 별과의 첫 대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