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삼일째 (Ⅱ)

--티벳 불교 에르디아조 사원-

1535년 몽골의 첫 번째 사원이라는 에르디아조는 매우 인상 깊었다. 난 개인적으로 티벳 불교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흥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번 사전 모임때 서래마을의 사무실에서 구입한 책 중에서<몽골>의 티벳불교에 관한 부분을 먼저 찾아 읽었다. 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길에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금장식의 원통형이 즐비했다. 마음속의 소망을 빌면서 나도 사람들이 지나간 대로 따라 걸어갔다. 사원의 내부에는 겔룩파의 상징인 노란 고깔을 쓴 잔나바자르 탱화가 있었다. 박문호 박사의 긴 설명이 시작되었다. 곰보도로치의 아들인 잔나바자르는 제 1대 몽골 황교의 수장이 된다. 총카파는 티벳 불교가 타락할 즈음 계율 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소남카쵸는 알탄칸을 만나 달라이 라마(바다와 같이 큰 스승) 칭호를 얻고 달라이라마 3세가 된다. 그가 불상을 하사했고 그 불상을 모시기 위해 사찰이 필요했던 것이라 한다.


여느 종교와 다르게 티벳 불교의 출발점은 죽음이다. 죽음과 생 사이에는 중유가 있다. 49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은 단순한 육신의 붕괴상태가 아니라 죽음에 닥쳤을 때 나타난다는 광명의 빛에 주목해야 한다. 몇 해 전 임사체험에 관한 많은 책들을 접한 바 있다. 대형서점에 신간 코너에 깔린 책들이 임사체험에 관한 것들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 1,2’ 가 그랬고 미국 출신의 의사가 쓴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은 한 때 베스트셀로에 등극하기도 했다. 나도 그 무렵 ‘티벳사자의 서’란 책을 접하고 많은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던 때라, 출판사에서 벌인 공개 프로그램인 「독자와의 만남」에 신청하여 찾아갔다.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나는 천국을 보았다’ 라는 책의 추천사를 써준 분들이 패널로 참여 했는데 국내에서 현직 의사로 있는 정신과와 신경외과 전문의였다. 임사체험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놨는데 요약하자면 죽음 직후의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는 쪽이었고 심지어는 사후 세계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어쨌든 박문호 박사는 과학하는 태도로서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티벳 불교의 유래와 달라이 라마로 연결되는 종교적인 집단의식을 토대로 볼 때 이는 실체를 따질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으로 가상 현실과 아바타의 예로 쉽게 이해된다.


인시는 죽음, 중류, 탄생, 세 가지를 두고 말한다. 죽음 상태는 티벳 불교에서 출발점이다. 인시의 삼신이 수행할 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탄트라다. 죽음 직후에 맞는 49일 동안의 일이 ‘티벳 사자의 서’에는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마치 유체 이탈과 비슷해서 죽은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 지를 또렷하게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크게 몇 단계로 나누어 환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살아 생전에 수행을 많이 하거나, 죽은 직후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스승이나 사람들이 많으면 좀 더 나은 단계로 윤회한다. 그런데 가장 큰 열반, 곧 해탈은 ‘광명의 빛’을 본 순간에 나타난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빛을 본 순간 너무 놀라 혼이 동물의 태로 들어가 환생하게 된다. 그러나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죽음을 맞닥뜨리고 광명의 빛을 본 찰라, 스탑한다. 그럼 다시 윤회하지 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궁극의 가리침인 것이다.


만다라 수행법 역시 멘탈이미지라는 점이 강조된다. 승려들이 만다라를 만들어 놓고 그걸 보고 명상을 한다. 박문호 박사의 말을 직접 화법으로 옮겨 보자. “만다라의 본전불을 앉혀.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만들어. 감로병도 멘탈이미지로 만들어. 관세음보살의 자리를 만들어. 보살 안배시켜. 보살 이미지 놓고 종교심이 강해지겠지요. 하나하나 보살의 인상을 그려. 올림픽 선수들 생각해 봐.”


아닌 게 아니라 양궁 선수들이 훈련한 방식이 멘탈이미지였다는 정보가 있긴 했다. 뇌과학적으로 증명된 부분이었고 만다라 수행법 역시 뇌과학과 연결되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날 사원을 둘러 보던 중에 티벳 불교의 예불의식을 보게 되었다. 승려들과 몽골 할머니들의 전통 복장 차림에 손에 염주를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젊은 승려들은 심벌즈를 치고 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는, 클라리넷 같은 관악기를 불기도 하며 경전을 암송했다. 타악기가 주는 심장의 떨림은 참으로 묘했다. 나는 그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나왔다. 그 여운은 점심을 먹으러 몽골 식당으로 옮겨서도 계속 됐다. 몽골의 음식 몇 가지가 차례차례 나왔고 수태차를 나눠 마셨다. 음식의 맨 마지막에는 말고기 요리가나왔다. 말로 태어나 다시 죽게 된 그 말의 전생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말고기가 참 맛있다는 감각이 느껴지자 환생에 대한 잡념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