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약간 오래된 신경 아틀라스북을 보면서
CIBA collection , 1983 Fank.H. Netter M.D.
20 년도 더 된 책이다. 내 책장에는 대학시절 보던 책중에 몇권이 여러 번의 이사와
세월의 산화에도 꿋꿋이 나를 부르고 있다. 최근 10년만에 우연히 펼쳐본 책이 위의 책이다.
책을 보면 떠 오른다. 기억이. 그곳엔 최신 지식을 원서로 보던 자부심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개념을 쌓아야 하는 중압감이 있었다. 시대의 정의를 몰라 할수 없었던 열정과 청춘의 고민도 있었다. 깊숙히 뒤져보면 종이사이, 뇌 사이에 스며드는 눈물이 보일 것 같아,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
따지고 보면 정원(定員)의 2배가 넘는 학생들 300여명이 공부의 즐거움도 모르고 고통을 당했고,
그중 일부는 미리 갔다. 목숨을 건 연마 과정이었던 것같다. 당시 우리는 몰랐지만
그 이후에 백혈병, 심근경색, 뇌출혈, 자살 등등으로 15년 내에 착하거나 외떨어진 동료친구들이
경계를 달리하여 우주와 하나 되었다. 나도 인턴하면서 흉부외과, 신경외과 돌면서 격무에 하루 3-4시간도 못자길 몇달하니 덜컥 급성간염에 걸려 진급시험도 치지 못하고 1년을 쉬어야 했다. 태어나자마자 죽는다는 애가 살아나고서는 두번째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책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왜 박자세에 나와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 하는 동호인들에게 애기해주려고 해도 어디부터 입을 떼야할지?
애기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될지 확신도 서지 않은 와중에도 가끔씩 감정에 물든 기억을 내뱉곤한다.
시대를 앞서간 의사이자 천재 화가 Netter 의 발자취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일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그리면서 그것을 느끼려고 하는 것일까?
젊은 날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일까?
“기타 등등”을 쓰지 말라고 하였지만, 참 이유가 가짓수로는 많을것같다.
공부를 좋아했지만, 지독히도 못 가르치던 교수님들 밑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한풀이일수도
있겠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위 의대생들에게 물어보니
지금도 그렇게 배운단다.!!)
의학지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니 즐겁다.
시간에 쫓겨 병명 위주로 배운 신경학과는 달리
지각감정인지행동의식을 진화학을 바탕으로 하여
뇌기능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을 음미하는 사람” 특히 전후좌우 극미무한 태초미래를 염주알처럼 꿰어
보여주고 만져보게 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다.
그런데, 아직도 뇌 속 깊은 쪽에서는 반응이 온다, 특히 칠판이 잘 안 보이는 상황이 오면 영락없이 무의식이 작동한다. 싫다. 목숨걸고 공부하던 콩나물시루같던 그 시절 그 느낌이 나를 감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속닥한 과학 리딩 모임이 좋다.
혼자 공부하긴 어렵다. 게을러져서 그러하다. 같이 공부하면서 이번 기회에 새롭게 기억을 공고히 하고 공부 한풀이가 되게하자. 과거로부터 무지로부터 자유로와 지고 싶다! 옹알이 해본다.
"짧은 시간에 많은 개념을 쌓아야 하는 중압감이 있었다. 시대의 정의를 몰라 할수 없었던 열정과 청춘의 고민도 있었다. 깊숙히 뒤져보면 종이사이, 뇌 사이에 스며드는 눈물이 보일 것 같아,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
제게도 뭉클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전후좌우 극미무한 태초미래를 염주알처럼 꿰어" 대목에서 왠지 웃음이.
스마트하고, 진지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지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자하는 열망이
감정에 물든 기억속에 숨어 있다가
세월의 산화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그 존재감을 드러냈나 봅니다.
앞으로 있을 배움의 여정, 묵묵히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도 아직 아트지에 하드커버로 된 커닝햄 해부학 책과 함께 Ciba collection을 가지고 있어요.
대학생 시절에 구입한 원서가 아닌 국내 복제품이지요.
자주 들고 다니던 무거운 커닝햄 해부학책은 책장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으나
Ciba 컬렉션은 아직도 현역입니다.
안면신경 마비나 삼차신경통, 정중신경 장애 환자에게 설명하는 용도로 잘 쓰입니다.
과학리딩 모임 후에는 공부 목적으로 더 자주 펼쳐보면서 이제야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신경해부학을 공부할땐
의대에 갔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고
일반상대성이론을 배울땐
역시 학문의 최고봉은 물리학이야, 그걸 했어야 됐어 하고
입자물리학을 풀땐
아 이걸 평생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우주론을 하면
세상에 더 이상 모가 필요하지? 하고
지질학을 보면서는
이쪽으로 갔으면 일찌감치 성공했을지도 몰라 라고하고
뇌과학의 최신 이론들을 읽으면서는
그래 이게 바로 도(道)지 무어가 따로 있나 한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박자세밖에 없었다.
얼마전 모임에 나가서
'너 이론적인 공부에 너무 빠져들지 마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움찔거리며, 대응할 변명거리를 찾았을텐데
이제는 그래, 너는 너의 길로, 나는 나의 길로 가련다며
털끝만큼도 내 마음은 미동하지 않았습니다.
박자세에 와서
꼭 배워야 할 것을 왜 나는 이제서야 만났는가?
라며 지나간 시간을 통탄해하며
지금이라도 야물게 차근차근 다지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의학지식은 거의 없지만 새로운 학문을 배우니 즐겁다.
시간에 쫒겨 대중적인 뇌에 관한 책만 보다가
지각감정인지행동의식을 진화학을 바탕으로 하여
뇌기능을 배우니 자연과학을 융합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부에 중독된 사람들" 의사도 아니고, 전공할 것도 아니고
학위를 주는 곳도 아닌데, 몇 년씩 박사님 강의를 듣고 암기하고
그림으로 뇌과학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못해 숙연해진다.
무조건니를뿐님의 글을 인용하여 저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어린왕자에게 의미있는 장미는 세상에 단 하나이듯,
우리 모두에겐 각자만의 의미를 지닌 장미가 있겠지요.
내가 의미를 부여한 바로 그 장미요.
추억과 시간을 간직한 소중한 책을 소장하고 계시는군요.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을 앞서간다한들
차가운 '지능'이지 뜨거운 피와 들끓는 경험이 하나된 '의식'은 아닐껍니다.
나의 희노애락이 뒤섞이지 않았을테니 말입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세상에 둘도 없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의 '의식'을 배워가는 이 현장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기억이 없으면 의미도 없을테니,
감정이 알알이 박힌 옛기억들에 새로운 기억을 올올이 엮어 새 의미를 만들어가는 이 시간이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