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정오. 오랜만에 탄동천(내가 근무하는 연구원 주변을 흐르는 작은 개천) 둘레를 걸었다. 휴무일이지만 박자세 회원들의 절대 미션 ‘frame 10’을 암기하러 나왔다가 짬을 내 산책을 했다. ‘암기는 안되고 잠깐 산책이나 할까!’하는 심사였다

 

여유롭게 산책하는데 봄이 오고 있었다. 겨울이 가고 있었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고 있다.  봄은 막바지 겨울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탄동천에는 어느새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쑥이다.


나는 불현듯 계절을 실감했다. 그리고 겨울을 한번 회상했다. 가만 보니 나는 이번 겨울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바로 박자세 때문이다. 이번 겨울, 낯선 뇌과학을 만나 친해지느라 정신이 없었다.(물론 아직 뇌과학은 나에게 손을 뻗어 잡아주지 않고 있지만.) 뇌과학과의 첫 만남에 정신을 뺏겨 겨울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탄동천의 쑥.jpg  

내가 근무하는 연구원의 탄동천 주변에는 어느새 쑥이 돋아나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잠깐 나의 겨울을 살펴보자. 지난 1218일 나는 처음으로 박자세를 찾았다. 나이 오십 넘어 새로운 걸 배운다는 긴장감 때문에 엄청 쫄았다. 중도포기하면 창피해서 어쩌나? 지금까지 인문학만 해왔는데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자연과학)을 돌파할 수 있을까?

 

나는 몇 번의 결석위기를 겨우 넘겨 과학리딩에 9번 참여했고, 내용도 모른채 발표를 4번이나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당시 내 모토는 일단 저지르고, 나중 수습하자였다. 그래야 중도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저요! 저요!” 매주 손을 들었다.

 

지난 겨울동안 나는 점심시간 때마다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렸다. 뇌간의 뇌신경, 뇌간(앞면, 뒷면), 척수, 변연계, 브로드만 맵 등을 그렸다. 그도 그럴것이 절대적으로 공부시간이 부족했다. 박문호 박사님이 공부하기 가장 좋은 사람은 가정주부라는 말이 실감났다. 나는 점심식사 후 그림을 그리다 졸리면 회의실에 있는 대형 화이트 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회의실 한쪽 면을 화이트 보드로 만들자는 제안을 내가 했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어쨓든 이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그리고 3.1, 나는 봄이 오는 풍경을 목격하고, 봄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소리없이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은하의 <봄비>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