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섯시에 일어나서 아홉시 십이분까지 잔잔한 일들을 
연이어서 하다보니 한자공부도 빼 먹었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 입니다.

아침살림을 끝내고 탁자에 앉아 적어보았습니다.

<밥하기, 미역국 끓이기, 반찬들 정리하기, 아들도시락 싸고 밥 먹이기, 
남정네들 밥차리기,주방뒤 계단공간 물걸레질하기, 아래욕실 청소하기, 
세탁기 섬유유연제 통 세척하기, 그리고 세탁기 돌리기...
그리고 다시 주방으로 와서 식탁치우고 설거지 끝내기.>

다리에 힘이 빠져 커피 한 잔 타서 좀 쉬었다가
카페처럼 꾸민 탁자에 공부할 책을 펼치고 사진 
한 컷 찍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나의 공간이 두개나 완성된 이 싯점은 
내 나이 오십일곱살 현재입니다.

옛날에 이십대때 직장생활하며 외근차 나간 곳이 
어떤 빌딩안의 은행이였습니다.
슈베르트의 숭어가 잔잔히 흐르고 실내는 밝은 햇빛색깔이 
가득하고 정돈된 가구들과 조용한
느낌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공간에서 맘껏 책보고 평안을
누리고 싶다는 강렬한 소원이 만들어졌던 순간이였습니다.

그때는 매일 싸우는 부모님, 어두운 지하방에서
끝이 없는 우울한 인생을 견디던 시간들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룰 수 없는 꿈일꺼라는 생각에 더욱
간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꿈이라도 꿔야 견딜 수 있는 세월이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돌아보니 그 때가 꿈인지
현재가 꿈인지 알 수 없는 나의 인식입니다.

세상은 내게 한없이 불친절하다고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라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친절했습니다.

모든 것이 친절한 배려인데 나의 실천력에 따라
세상은 지옥 같기도 하고 천국이 되기도 합니다.

왜 실천하지 않느냐?
지금 돌아보니 실천이 되기까지 준비작업이 꽤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준비작업도 없이 
실천을 아무리 하려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나의 준비작업은 시간을 아끼며 하는 독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십여년을 넘어서면서 
나의 뇌는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공부하는 책이 뇌과학에 대한 것인데
우리의 뇌는 불교에서 나오는 십우도의 
소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 소를 다스리기까지는 수 없는 밀당과 
진실직면과 뒷걸음질과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나는 그 소의 정체를 제대로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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