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우주를 기억한다

 

과학자로서 살아온 기간의 대부분을 땅에 있는 암석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생명과 우주를 바라보는 나름의 관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바짝 달궈진 사막을 돌아다니든 얼어붙은 북극권을 돌아다니든 간에

내 안에는 하나의 학문적인 열망,

우리의 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려 줄 단서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쭉 잠재되어 있었다.

 

 이 야심이 별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먼 별과 은하에서 오는 빛을 들여다보거나

해저 지도를 작성하거나

태양계의 다른 헐벗은 행성들의 표면을 살펴보는 동료 과학자들의 열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내가 연구하는 내용들을 하나로 엮은 개념

인류가 지금껏 내놓은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축에 속한다.

그 개념은 우리와 우리 세계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내 첫 저서《내 안의 물고기(Your Inner Fish)》에 영감을 준 것은 바로 이 개념들이었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 세포, DNA 조각에는 35억년이 넘는 생명의 역사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인류 이야기의 단서들은 암석에 찍힌 벌레들의 흔적, 어류 DNA, 연못에 떠 있는

조류 덩어리에 들어 있다.

 

 그 책을 쓸 때,

벌레, 어류, 조류가 더욱 깊은 연관성을 드러내는 관문에 불과하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생명과 지구 자체가 출현하기 수십 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관성을 말이다.

우리의 내부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별의 탄생, 하늘을 나는 천체들의 움직임, 심지어 그 천체들의 기원에 관해 쓰는 것이기도 하다.

 

  137억년 전에 빅뱅을 통해 우주가 출현했고,

이어서 별들이 생기고 죽었으며,

우주의 물질들이 모여서 우리 행성이 탄생했다.

그 뒤로 영겁에 걸친 세월 동안,

지구는 태양을 돌고 또 돌았고 그 사이에 산맥, 바다, 대륙이 출현하고 사라졌다.

 

 지난 세기에 계속 이어진 발견들을 통해,

지구의 나이가 수십 억 년에 달하고,

우주가 진정으로 방대하며,

우리 종()이 이 행성의 생명 전체로 볼 때 시시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왔다.

이렇게 보면, 광대하기 그지없는 시간과 공간 앞에서

인류 자신이 아주 미미하고 하찮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

과학자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가장 작은 원자를 쪼개고,

가장 거대한 은하를 조사하고,

가장 높은 산맥과 가장 깊은 바다의 암석을 탐사하고,

오늘날 살아 있는 각 종의 DNA를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한 가지 진리를 밝혀내고 있다.

우리 각자 안에 가장 심오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말이다.

 

: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생물학과 천문학을 오가는 137억년의 경이로운 여정

    닐 슈빈. 이한음, 2015 ㈜위즈덤하우스     

    프롤로그 6~7

 

    The Universe Within :

    Discovering the Common History of Rocks, Planets, and People

    2013.  by Neil Shubin

책-DNA에서 우주를 만나다. 표지.jpg

지난 2019.03.28과 03.18에 은은님이 올려 주신 최병관 선생님의 책 <과학자의 글쓰기> 관련 글을 보고

이리저리 생각타가, 책장 한 쪽 구석에서 박힌 '닐 슈빈'의 위 책을 펼쳤다.  내지 3번 째 장의 '미셀, 나다니엘, 한나에게'라는 헌사의 문구가 박힌 페이지를 넘기자 나타난 프롤로그의 언사가 박자세에서 항상 듣는 것과 닮아있음이 새삼스러웠다. 공기 반 소리 반의 감탄사는 빠져있지만 말이다. 지난 과학리딩 때  숙제 글쓰기로 올린 2019.01.23. <내 일상의 개똥철학과 박자세 과학의 관계적 상상>의 댓글 중에 Damul님의 "모든것에는 버팀목이 있어야한다. 철학도 주기율표를 버팀목으로 삼았다면 인류는 조금 더 생명의 가치를 알지 않았을까 합니다."의 생각에 크게 동감했었다. 


 프롤로그 창에 비친 닐 슈빈의 생각이 눈에 쏙쏙 들어와서 가끔씩 하는 글쓰기 훈련 겸 필사를 해 봤다.  

과학자의 탐구와 글쓰기는 가슴과 발품과 손놀림의 몸뚱이로 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