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식카페게재 일자 : 2017년 02월 28일(火)
현실 예측·인과관계 인식 능력이 ‘창의적 인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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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송재우 기자 jaewoo@

박문호의 뇌과학 이야기 - ⑥ 전전두엽의 작업기억·순서의식·충동억제

전전두엽의 주요 기능은 작업기억, 순서의식, 충동억제다. 작업기억은 매 순간 입력되는 자극에 적절한 반응을 해 주변을 알아차리고 행동하게 한다. 작업기억의 작동으로 ‘지금 여기’라는 현실이 생겨나고 현재의 정보를 처리하면서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즉 작업기억은 ‘우리의 현재 그 자체’이다. 전전두엽의 작업기억 기능으로 인간은 현실적 존재가 된다.  

현실이 무엇인지는 현실이 아닌 현상인 ‘비현실’을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꿈은 비현실이며 꿈을 비현실이라 하는 이유는 자각몽이 아닌 이상 우리는 꿈의 내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기준은 예측 가능성이며 인간의 현재는 시간과 공간상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 패턴이 반복되므로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기에 현재는 현실이 된다.

집과 직장 사이를 오가며 일과표에 맞춰 거의 비슷한 나날이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예측 가능한 현실적 존재가 된다. 전전두엽은 기억을 바탕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회상해 현재를 생성하므로 기억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현실이 출현하게 되고 다양한 과학지식이 기억된 사람은 합리적 사고를 할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과학지식의 기억이 부족하면 느낌과 추론으로 현상을 설명하려 하는데 틀릴 확률이 높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양질의 다양한 기억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을 학습하기 때문에 사전의 기억이 없으면 새로운 지식의 획득은 무척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창의성의 본질도 ‘기억’에 있다. 창의성은 새로운 ‘물건과 방법’을 만드는 과정인데 그 물건과 방법이 새롭다는 사실을 인식하려면 이전의 기억이 있어야 가능하다. 창의성은 기억의 새롭고 독특한 조합방식이며 기억이 많을수록 생각의 결합방식은 급격히 늘어난다. 

대뇌피질에서 창의성에 가장 관련이 높은 영역이 전전두엽이며 전전두엽은 바로 기억을 불러와서 결합해 예측하는 영역이다. 이전의 방식으로 기억을 결합하면 과거에 머물지만 새롭게 결합하면 창의성이 된다. 

전전두엽의 두 번째 기능은 순서의식으로 경험한 사건을 시간 순서로 배열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지각하게 된다. 동물은 전전두엽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사건의 순서 기억이 약하며 저장된 일화 기억도 제한적이어서 본능적 반응에서 행동이 나온다. 동물에게 ‘내일’이라는 개념이 어려운 이유는 동물은 기억이 약해 행동이 기억보다는 본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즉, 동물은 감각에 구속된 존재다. 

해마에서 장소와 사물이 결합된 시각적 장면 기억이 생성되며 낮 동안 임시로 생성된 해마의 일화 기억은 수면 동안 대뇌피질로 이동돼 공고화 과정을 거쳐서 측두엽, 두정엽의 감각연합피질의 옛 기억흔적과 결합하여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새로운 기억의 저장과정은 반드시 이전 기억과 결합하게 되므로 이전 기억이 없는 경우는 무수한 반복을 통해서 겨우 장기기억이 된다. 

반도체 메모리의 기억은 ‘주소지정방식’이지만 인간 기억은 내용이 바로 주소가 되는 ‘내용주소방식’이기 때문에 이전에 기억한 유사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면 학습한 내용은 결합할 연결 손이 없어서 한쪽 귀로 들으면 다른 귀로 사라진다. 장소에 결합된 사건이 바로 해마에서 생성하는 일화 기억이며, 제럴드 에덜만이 주장하는 일차의식인 ‘장면의 생성’이다.  

전전두엽에서 스냅사진 같은 장면이 맥락에 맞게 순서로 연결되면서 시간 의식이 출현하게 돼, 인간은 과거의 경험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의 감각 입력을 처리하면서 감각에 대한 ‘즉각적 반응’보다 ‘지연된 반응’인 행동이 가능해져, 감각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사물배치의 공간적 순서와 사건전개의 시간적 순서에 대한 시간 의식이 전전두엽에서 발달하면서 인간은 동물의 본능적 동작에서 기억을 반영한 행동을 하게 되고, 반복되는 사건의 시간적 패턴에서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면서 미래라는 가상이 생겨난다.  

장소와 장소를 순차적으로 이동하면서 생겨나는 경험기억들이 반복되면서 인간의 ‘예측 가능한 현재’를 만들어내며, 그 예측 가능성이 미래를 낳았다. 그래서 인간은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해석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게 돼, 감각이란 ‘현재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됐다. 

현재라는 시간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그 대가로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결합이 단절돼 자연적 진화에서 문화적 진화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문화적 진화는 자연의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상징을 통한 세계이므로 제한 없는 가상세계를 출현시켰다. 반복되는 기억흔적을 언어적 상징을 통해 지시하면서 전전두엽이 가상세계를 만들었다. 전전두엽은 언어의 지시작용을 통해 기억을 불러와서 조합하는 ‘뇌 속의 뇌’에 해당한다.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1차 감각피질이 자연에서 오는 감각 입력을 처리하며 일차 피질에서 입력을 받는 연합피질인 전전두엽은 감각 입력을 직접 받는 대신 일차 피질에서 처리한 입력을 언어의 상징으로 받기 때문에 제2의 뇌라고 할 수 있다. 상징은 뇌가 스스로 만든 자극이다. 감각 입력이 촉발한 지각과정이 기억과 상징을 만들었고 전전두엽은 장면기억을 인출해 이미지의 연결과정인 생각의 흐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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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두엽의 세 번째 핵심기능인 충동억제는 거친 감정을 억제하고 본능적 행동을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으로 조절하게 된다. 뇌 정보처리 속도는 신경축삭이 절연체로 감기는 수초화 현상의 진행 정도에 관련되며, 전전두엽의 수초화가 가장 느리게 진행된다. 그래서 사춘기 이전에는 감정 충동의 억제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중독현상도 결국 전전두엽의 기능 약화로 충동적 행동을 억제하지 못해 생기며, 술을 많이 마시면 전전두엽의 억제가 약해져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지력의 핵심은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다. 전전두엽이 발달 중인 청소년기의 행동은 보상을 지연하는 힘이 강하지 않아서 즉각적 보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즉각적 보상은 대부분 보상이 크지 않지만 즉시에 보상이 주어져 선호도가 높다. 반면에 오랜 시간 훈련의 결과로 생기는 지연된 보상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목표 달성의 성패는 전전두엽의 인지적 강화훈련으로 어려움을 참아내 더 큰 보상을 선택하는 훈련에 있다. 

작업기억으로 ‘예측 가능한 현실’이 생기고, 순서의식으로 사건의 인과관계를 의식하게 되고, 충동억제로 순화된 감정의 교류가 확산돼 인간의 사회화가 공고해졌다. 인간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현실이 굳건한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영장류도 작업기억은 존재하지만 시간 의식과 충동억제력은 약하고, 이들 간에 상호작용은 인간 수준보다 상당히 낮다. 


고고학자 스티븐 미슨에 의하면 호모사피엔스는 자연지능, 언어지능, 사회지능, 도구기술지능이 격리된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발달하다가 지능이 상호연결되는 ‘인지의 유동성’이 생기게 된다. 언어지능이 사회지능, 기술도구지능, 자연지능을 서로 연결하면서 인간의 의식에 상징이 출현하게 돼, 대략 3만 년 전 후기구석기 문화의 폭발적 발전을 촉발,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 인간 지능의 유동성은 바로 전전두엽이 기억을 불러와서 새롭게 조합하는 창의성의 핵심요소이다. 

인간의 의지력과 유연한 사고는 집중력과 창의성을 발달시켜, 물리적 세계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문화적 진화와 이를 통한 가상세계까지 출현시켰다. 결국 작업기억, 순서의식, 충동억제의 세 가지 전전두엽의 기능이 행성 지구에서 인간이란 현상을 출현시킨 핵심이다. (문화일보 1월 18일자 24면 5회 참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