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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세 스토리(가칭) 책을 편집하는 중 박사님의 시론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25분의 길지 않은 강의라서 강의를 들으며 곧장 글로 옮겨야지 생각하고 작업하던 중 10분쯤 듣고선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슬픈 것도 아닌데 먹먹해집니다.

 

오래전 그러니까 제가 대학 입학 전 겨울 방학 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을 적에 그랬습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산 책을 돌아가며 보았는데, 다음 권을 빌려다 놓지 않으면 책을 절반쯤 읽은 다음에는 속도가 나질 않았습니다.  한 번에 홀랑 다 보고 나면 그 다음이 궁금해서 잠이 오질 않으니 저도 모르게 책 읽는 속도를 조절하는 겁니다. 덕분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소리내어 읽거나 보고 또 보며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박문호 시론을 한 번에 다 듣기가 아깝습니다. 개나리 피어있는 마당도 한 바퀴 돌아보고 몇 년 전에 쓴 시도 뒤적거려 찾아내었습니다. 심지어는 박사님에게 문태준 시인을 대신해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낼까 생각했다가 꾹 참았습니다. 개나리가 너무 노래서 감정이 과잉된 것이라 탓을 합니다. 그래서 대신 친구를 부릅니다. “지금 오면 좋은 시학 강의 하나 보여줄게” 문자를 보내고 맛난 것까지 사오라는 주문도 합니다.

 

 

오래 전 제가 쓴 시도 하나 올립니다.

이 봄날, 태초의 언어를 과학의 언어로 풀어내는 ‘박문호 시론’을 꼭 만나 보시라 권해 드립니다.

 

 


발칙한 꿈의 해석

 

- 프로이드를 위하여

 

 


그 날

 

가로등에 기대 선 골목길

 

자취눈이 내리는 포항 여인숙

 

화강석 댓돌과 붉은 알전구 아래 금 간 거울

 

서걱거리는 혓바닥으로 부르는

 

겨울밤의 연가(戀歌)

 

가난한 주문

 

안아줄래

 

 

 

 

넌 몰라

 

보이는 건 꿈이 아냐

 

밤마다 희뿌연 소리의 바닷속을 자맥질하며

 

거친 숨으로 뉴런의 그물을 헝클어 버리는 무법자여

 

검붉은 입술로 부르는 야성의 노래에

 

달콤 씁쓸하게 중독돼버린

 

나의 아바타

 

 

 

 

쉿!

 

내려가지마

 

발버둥치게 될거야

 

그 아랜 시작도 끝도 없어

 

오직 인간의 혀로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

 

절름발이로 뫼비우스의 띠를 감돌아

 

선악이 아닌 물길을 내면

 

해일처럼 차오르는

 

무의식의

 

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