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 두 번째 이야기
 
서래마을에서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것도 이젠 제법 익숙해져 그 속에서 저는 책도 잘 읽고, 생각도 잘 하고, 잘 졸며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다른 직장인들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습니다. 돈이 목적이 아닌 출근, 미래에 쓰일 경험의 결과와 가치가 목적인 출근에 오늘도 정신 없이 하루를 시작하지만 즐겁기만 합니다.
 
여전히 출근길 달리기의 기록은 10분 40초대로 고정되어 버렸지만(금요일 이후부터). 조금만 뛰어도 입구에서부터 헐떡거리던 제가 조금씩 변했다는 것을 느끼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고 있습니다.
초시계.png
 
또한 아침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림 공부가 튼튼한 기본이 된다는 김향수 선생님과 김현미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구조도 더 잘 들어오고, 머릿속에도 더 잘 남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390장의 그림들도 찬찬히 그려봐야겠습니다.
 
요즘 사무실은 2월 말에 나올 두 권의 책 작업과 뇌과학 정보 센터 설립을 위한 데이터 베이스 작업, 박자세에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기부금 영수증 발급하는 일로 하루가 바쁘게 흘러갑니다. 업무총괄을 하시고 요즘은 기부금 영수증 때문에 바쁜 김현미 선생님과 데이터 베이스 작업을 하는 양겸군, 미국책 작업을 하는 이정희 선생님이 사무실에 매일 모여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운로드 (2).jpg 다운로드.jpg 다운로드 (5).jpg 다운로드 (6).jpg 다운로드 (3).jpg

계속되는 야근과 퇴근, 주말이 없는 삶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각박한 현실에서도 서로 웃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아는 시 한 편과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들이 서래 마을에서는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서투른 것을 끌어안고, 덮어주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박자세에는 강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제가 안다는 그 시를 한 편 소개해 드리고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한데요. 복효근 시인님의 ‘덮어준다는 것’이라는 시 입니다.
 

 
덮어준다는 것  
                                          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다
빈 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이었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은 아닐까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 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나절을 몇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
 
우리의 삶이 벽뿐인 생애이고, 평생을 벽을 지고 기어가야 하는 길이라도 기꺼이 나를 덮어줄 수 있는 박자세와 미래가 있다면 ‘esperer en lavenir’ 미래에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다운로드 (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