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무렵 뇌의 해부학적 구조가 알듯 말듯 확실히 잡히지 않고 알듯 말듯하여 참 답답했습니다.  내 머리를 쪼개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에릭 캔델의 <기억을 찾아서>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 나는 뇌의 생물학에 대하여 무언가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가지 이유는 내가 의과대학 2학년 때 수강한 뇌 해부학 수업이 대단히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그 수업을 담당한 루이스 하우스먼(Louis Hausman)은 모든 학생이 여러 색의 찰흙으로 인간 뇌의 실제 크기보다 네 배 큰 모형을 만들게 했다.   나중에 학우들이 졸업 앨범에 썼듯이, "그 찰흙 모형은 잠복중인 창조의 균을 자극했고, 우리 중 가장 둔감한 자들조차도 다채로운 뇌를 낳게 했다." -

 

요거 재밌겠다 싶어 형광펜으로 줄을 쳤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채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최근에 저는 둘째 아이가 다니는 감각통합치료실에서 엄마들과 함께 brain을 공부하는 모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박자세 기준으로 보면 저의 뇌공부 수준은 결코 깊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덜컥 뛰어든 것은 '내 아이의 뇌를, 나 자신의 뇌를 이해하고 싶다'는 엄마들의 간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입니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수업을 했는데 두 가지의 고민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제 자신의 능력부족이고 또 하나는 엄마들이 뇌의 단면그림과 글 만으로는 뇌 속의 입체구조들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야 제가 어떻게든 엄마들의 습득속도보다 더 빨리 실력을 키우는 걸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두 번째 문제는 더 심각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아무리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앞/뒤쪽에서 자른 단면인지 항상 생각하라',  '단면을 입체로 바꾸어가며 생각하라',  '뇌실을 중심으로 입체 퍼즐을 맞추듯이 각 구조를 채워가면 된다'고 강조해 본들 소용없었습니다.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니 기능에 대한 설명도 머리속에 제대로 정착될 리 없지요.

 

여러 권의 교재를 뒤적거려 컬러풀하고 입체적으로 표현된 그림이나 실물뇌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갈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더군요.

 

  문득 <기억을 찾아서>에서 읽었던 위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살림하고 아이 치료실 데리고 다니느라 바쁘고 지친 엄마들이 따라줄까? 

 

아직 제안도 해보지 않았는데 한 엄마가 마음이 통한 듯 "우리 찰흙이나 점토 같은 걸로 직접 뇌구조를 만들어보면 어때요? 입체적으로 만들어보면 확실히 이해될 것 같은데." 라고 먼저 얘기해 주었습니다.

 

 시행착오가 있을 지 모르니 저와 그 엄마 둘이서만 먼저 해 보자고 약속을 잡고 오늘 오전에 드디어 실행에 옮겼습니다. 치료실 로비에 찰흙과 칼라점토를 꺼내 놓고 바로 옆에는 의학신경해부학,  그림으로 보는 뇌과학의 모든것, 뇌단 등 몇 권의 책을 펼쳐놓고  작업을 시작했지요.  

 

 제3뇌실을 만들고, 구멍을 뚫어 양쪽으로 시상을 연결하고, 창백핵과 조가비핵 꼬리핵의 구조를 만들어 위치를 잡고, 제3뇌실 앞쪽으로 외측뇌실을 연결하고, 해마와 뇌궁, 중격핵... 그리고 뇌간의 앞뒷면 주요 구조들도 다듬어 만들었습니다.

 

 함께 한 엄마는 이제 드디어 구조가 시원스럽게 파악이 된다며 뿌듯해했습니다. (명절 연휴기간이 되면 시댁식구들은 TV앞에만 앉아 있으니 자기는 그 시간에 뇌구조를 두세번 쯤 더 만들어보겠다네요.)

 

 뇌간까지 만드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는데 점토 만지는 시간이야 그리 길지 않고 나머지는 책에 나온 그림들 찬찬히 뜯어보고 구조물마다 주요기능과 눈에 띄는 내용들 확인해 가며 진행한 시간입니다. 

 

  꼭 해보시길 바래요.  공부가 어느 정도 진행된 사람에게도, 이제 막 입문하는 사람에게도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