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하루는 정말 학자처럼 공부하는 박자세의 목표에 어울리는 날이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조선 시대 선비의 일과표와 비슷하게 공부했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나들이 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느라고 애썼을 것 같지만 나들이와는 다른 방식의 기쁨이 있었기에 아쉬움이나 미련이 없는 하루였습니다. 딸아이의 표정도 그러하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137억년 우주의 진화 강의를 신청하고 호주 학습탐사까지 가기로 결정을 해 두고서 걱정과 부담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의 목표는 소박하게 전강 출석이라 세웠지만 강의 내용은 예상과 달리 수식이 많아 낯설고 어려운데다 복습조차 하지 않으니 매주 일요일마다 내리 다섯 시간동안은 낯선 언어를 견디는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딸아이와 같이 하는 일정인데 이 녀석이 강의 중 집중력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오가는 차 안에서 잔소리를 하다가 지쳐서  ‘나나 잘하자’ 혹은 나나 잘 견뎌보자는 심사였습니다.  


호주 학습 탐사에서 한다는 비박의 정확한 뜻이 뭔 줄 몰랐습니다. 설마 비 맞고 자는 건가 싶었는데 노숙하는 것이니 맞다고 하더군요. 현장 학습 탐사에서 잠은 5시간 이상 자지 못하고 새벽 강의가 있으며 긴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데 길이 시원치 않을거라 합니다. 밥차려 먹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들립니다. 탐사에 대해 하나씩 물을 때마다 일상과는 너무 다른 대답에 그냥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비박을 하니 먹고 씻고 싸고 자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화장실과 세면대가 아니라 에렉투스 방식으로 해결할 각오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고데기를 새로 장만한 열일곱 살 딸래미가 받을 충격에 비하면 제 걱정이야 소박한 것이죠.


휴가 여행과는 차원이 다를거라 짐작은 했지만 못먹고 못씻고 못자고 등등의 말을 듣다 보니 슬슬 걱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주는 분들의 한결같은 태도 때문에 기대도 됩니다. 혹시 훈련생 놀리는 선임하사의 표정인가 싶어서 자세히 관찰해 보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고, 다른 방식으로 즐거워들 합니다. 강의 중 많은 사람들이 “와아~” 하고 탄성을 내지르거나  “세~상에!  놀라워요!  어떻게 이런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있죠?” 하는 박사님을 볼 때마다 사실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감탄이 부럽고 공감하고 싶어서 같이 웃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탐사 이야기를 하는 경험자들의 표정이 그때와 비슷해 보인겁니다. 분명히 뭔가 있습니다.     


그 와중에 천뇌 발표자 명단에 제 이름이 올랐고 일주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사정이 더 급박해졌습니다. 발표 자료의 별자리표 역시 낯설었고 강의 중 다루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혹시나 동영상 강의가 있을까 하여 찾아보고 고민하다가 결국 김현미 선생님께 문의 드렸더니 다들 처음 발표하는 거라 비슷한 사정이니 그냥 해보라는 박자세식 격려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우선 자료를 몇 부 프린트 해 두고 날마다 짬을 내서 봅니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소리 내어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별자리표도 검색해 봅니다. 다행히 ‘별밤 365’ 책이 있기에 뒤적거려 봅니다. 몇 달 전 받아서 볼 땐 재미가 없어서 미뤄 두었는데 이 책이 이리 재미있는 책이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천뇌 발표는 자료를 보지 않고 암기해서 발표해야 하는 것이니 이해하고 재미를 완상하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일단 이름이 익숙해졌으니 따라 그려봅니다. 호주의 밤하늘을 염두에 두고 겨울부터 시작합니다. 북극성 아래의 거인 사냥꾼 오리온 허리띠 삼태성을 찍고 어깨엔 붉은 베델기우스, 반대편으로 내민 발은 푸른 리겔, 맞은편 위에서 달려드는 붉은 눈의 황소 알데바란, 오리은 뒤쪽엔 큰 개자리의 파란 시리우스와 펄쩍 뛰어 올라 하얗게 질린 작은 개 프로키온, 시계 방향으로 쌍둥이 형제 폴룩스와 카스토르, 노란 염소 카텔라가 새끼 세 마리와 마차부 자리에서 이 상황을 지켜 봅니다. 이렇게 그려진 커다란 육각형의 오른편에는 천마 페가수스와 카시오페이아 가족, 육각형 왼편엔 사자와 게, 위쪽엔 곰 가족과 용을 그리면 완성입니다. 겨울을 완전히 익히고 나니 벌써 목요일이 됩니다. 서둘러 가을의 별자리를 찾아봅니다. 남쪽 물고기자리엔 포말하우트가 있고,  견우와 직녀, 백조자리의 데네브 같은 삼각형의 새로운 별자리가 등장합니다. 북쪽의 곰들은 그새 위치를 살짝 바꾸었습니다. 열심히 따라 그립니다. 여름을 보니 새로운 별자리가 대거 등장합니다. 중앙의 헤라클레스와 목동, 뱀주인 아래는 전갈과  궁수자리. 계절마다 북쪽의 곰들은 규칙도 없이 몸을 뒤틀어서 영 헷갈립니다. 마음이 촉박하니 봄에 새로 등장하는 처녀자리의 새하얀 스피카는 겨울의 오리온만큼 반갑지 않고 지구가 도는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래도 일단 그립니다. 별밤 365의 저자가 말한대로 지식은 사랑의 선행조건이니 그냥 외우고 자리에 맞는 이름을 불러주니  별들은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어제 하루 종일 별자리를 외우고 발표하고 듣고 잠들기 전 머릿속으로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오늘 아침도 역시 별자리를 생각합니다. 발표가 끝나니 부담은 줄고 즐거움과 의욕은 배가 되어 호주의 밤하늘이 무척 기대됩니다. 학력이나 미모, 나이와 무관하게 공부하려는 자 모두에게 기회를 열어놓은 천뇌 발표 덕분에 딸아이와 함께 공부하고 발표를 했습니다.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했지만 대학원의 어지간한 학술대회보다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타박의 대상이었던 아이가 저보다 더 열심히 했으니 ‘나나 잘하자’는 말은 쏙 들어가고 ‘나도 잘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딸아이의 나이에  유치환의 ‘생명의 서’를 읽고 난 후부터 사막에 가고 싶었던 오랜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드디어’라는 말이 붙는 상황에서 몸을 삼가기 위해 침묵 수행하는 심정으로 공부해야겠습니다.


공부의 방향이 어떠해야하는지는 어제 천뇌 발표 마지막에 박문호 박사님이 마지막으로 정리해 주신 말씀에서 실마리를 잡아봅니다. 


- 해외 학습 탐사는 철저하게 학습을 목표로 하는 탐사다.

현재 지식 습득의 일반적인 세 유형은 학생들의 시험형, 직업인들의 생계형, 종교나 이념을 위한 신념형 공부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를 보면 이와 다른 방식의 500년의 공부 전통이 있다. 바로 학자형 지식 습득 집단이다. 선비라 불린 이 학자들은 ‘학문을 통해 자연을 보는 안목’을 길렀다. 이는 별, 대지, 생명을 통해 천지인(天地人)을 아는 것이다.

- 우리는 이 학자들처럼 공부해야 한다. 그러려면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계획성, 구조성, 항상성이다.

계획성- 자연과학은 인문학과 달리 끝이 있는 공부다. 공부 총량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공부에 계획을 잘 세워서 접근해야 한다. 강의 준비시간의 1/3을 계획하는데 쓴다.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을 포함해 대략 30개의 모듈을 알면 된다. 하나를 확실히 구획해서 약 3년 잡고 공부하면 전문가의 수준에 이른다.   

구조성- 1차 언어인 말, 2차 언어인 문자, 3차 언어인 그래픽 중 이 공부는 3차 언어로 공부한다. 그림이나 수식, 도형 같은 3차 언어는 말이나 글과 달리 왜곡되지 않으니 사용에 있어 전문가와 초보자간 차이가 없다. 3차 언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뉴런의 연결 축삭을 바꾸는 훈련의 대상이다.

항상성-제일 중요한 요소인데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 천뇌 발표처럼 하루 종일 3차 언어로 생각하고 훈련하는 연습을 많이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