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명사 초청

 

 

 

황동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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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을 박자세 명사 초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의 교과서라 불리는 시인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황동규 시인을 즐거운 편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어보면 그 깊이가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삶의 여정이라는 것이 마치 정해져 있는 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며 생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중력에 사로잡힌 시간을 영위하며 그 무한과 영원 사이를 헤집고 다니려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의미 없는 삶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사에 시인은 조용히 화두를 던집니다. 박문호 박사님은 황동규 시인의 시집 풍장에 이런 문구로 정리하셨습니다.

 

초월은 초월되지 않는 곳에 , 무생물화되어 가는 세계상’  

- 박문호 베스트북 33 ‘풍장

 

삼 년 전 여름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황동규 시인의 “걷다가 사라지고 싶은 길 - 울진 불영 계곡 소광리”을 보았다. 한 편의 시가 선명한 풍경으로 되살아났다. 그 해 여름 거의 두 달 가량 그 시의 영상을 가슴에 담고 지냈다. 살다 보면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25년 전 군 훈련소 신병훈련 기간 내내 안소니 킨 주연의 “길” 주제 음악이 하늘 저 위에서 풀어 흩어지며 가슴 아리게 했던 것이 기억난다.

 

황동규 시인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은 10년 전부터 서가에 있었지만, 서너 편 읽다가 책을 내려놓고 하기를 몇 년간 되풀이 하다가 그만 잊어버린 시 세계였었다. 그 땐 느낌이 잘 스며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 아침 황동규 교수님의 시가 확연한 느낌으로 홀연히 나타났다. 기억 속의 자연풍광이 감성을 연결했다우연한 입구를 찾은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울진군 살았기에 학창 시절 기억의 배경엔 파도소리와 불영 계곡 소나무들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미지의 세계는 입구가 가려져 있나 보다. 그 후부터 생소한 분야를 만나면 항상 “들어가는 문을 찾아라”라고 속으로 되뇌곤 했다.

 

그 해 여름 연이어 시집 “풍장”을 읽었다. “읽었다”가 아니라 스스로 “풍장”이 된 것처럼 가슴 휑하니 바람이 스며들었다. 살아서 죽어가는 세계, 천천히 무생물화 되어가는 삶의 천이과정을 14년간 72편의 연작시에 담은 “풍장”은 늦가을 홀로 정진하는 늙은 수행승의 기침소리와 같은 그런 세계였다.

 

시인은 풍장 연작을 끝내면서

“초월은 결국 초월을 하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14년이 걸렸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책을 내려놓고 망연했었다. 그 후 시인이 펼친 풀어져 무연해진 소식인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와 “꽃의 고요”에서 초월에서 평범으로 전환된 세계상이 편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 시인의 시 세계를 만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환해지는 것. ‘– 박문호 (박자세 에세이 36)

 

최근에 발표한 ‘ 사는 기쁨은 풍장에서 초월은 결국 초월을 하지 않은 곳에 있다는 시를 다시 말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조만간 나도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겠지./…내가 그만 내가 아닌 자리,/ 매에 가로채인 토끼가 소리 없이 세상과 결별하는 풀밭처럼/ 아니면 모르는 새 말라버린 춘란 비워낸 화분처럼/ 마냥 허허로울까?/ 아니면 한동안 같이 살던 짐승 막 뜬 자리처럼/ 얼마 동안 가까운 이들의 마음에/ 무중력 냄새로 떠돌게 될까?/(시 ’무중력을 향하여’ 중)

 

무중력을 향하여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가슴 시린 느낌이 전해옵니다. 삶을 떠나 그 자리에 무엇이 있을지를 가늠하는 읍조림이 서려 있습니다. 태울 것 다 태우고서야 비로소 붉은 빛을 내며 떨어지는 낙엽처럼,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을 하는 낙엽처럼 제 속에 있는 생각과 느낌을 한 껏 종이 위에 각인 시키고 있습니다.   

 

“바위에 발톱 박은 나무들이 불길처럼 너울대자/ 부리 날카론 새들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몰려든다./ 느낌과 상상력을 비우고 마감하라는 삶의 끄트머리가/ 어찌 사납지 않으랴!/… 벗어나려다 벗어나려다 못 벗어난/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시 ’사는 기쁨’ 중)

 

사는 기쁨이 어쩌면 내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시인의 처절함과 그 처절함이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이라고 표현한 구절에서 조용히 의식이 붙잡힙니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같은 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읽던 책 그대로 두고 핸드폰은 둔 데 잊어버리고 백주 한 병 차고 들어가 물가에 뵈지 않게 숨겨논 배를 풀어 천천히 노를 저을까?’ 하는 심정이 전해져 옵니다.

 

수박씨처럼 붉은 외로움 속에 박혀 살자, 라고 마음 먹고 남은 삶을 달랠 수 있을까?’

 

사는 기쁨을 읽고 느끼면서 가슴 가득 묵직함을 간직하게 됩니다.

시인의 만년의 시집의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즐거운 편지로만 그의 시 세계를 접한 분들에게 풍장에서 사는 기쁨에 이르는 황동규 시인의 시세계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약력 및 소개 


 

황동규 [ 黃東奎 ]


          

세련된 감수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서정의 세계를 노래해 문학엘리트와 대중 모두에게 사랑 받는 중견시인. 주요 작품으로 《즐거운 편지》 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출생-사망      -   1938.4.9 ~

본관             -   제안

국적             -   한국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평남 숙천

주요수상       -  현대문학상(1968), 한국문학상(1980), 대산문학상(1995),

2회 미당문학상(2002)

주요작품       -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노래》 《삼남에 내리는 눈》

 


 

 

본관은 제안(濟安)이다. 세련된 감수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서정의 세계를 노래해 문학엘리트와 대중 모두에게 사랑받는 중견시인이다. 1938평안남도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맏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7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661967영국에든버러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다. 19701971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연구원으로 수학했으며, 19871988년 미국 뉴욕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2002년 현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58서정주(徐廷柱)에 의해 시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가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초기에는 대표적인 연시 《즐거운 편지》를 비롯해 첫시집 《어떤 개인 (1961)에 실린 연작시 《소곡》과 《엽서》 등 사랑에 관한 서정시가 주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사랑과 미움으로 정형화되어온 전통적 연애시의 정서와는 달리 신선한 정념의 분위기를 형상화한 시인 특유의 독특한 연가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어 두번째 시집 《비가(悲歌)(1965)에서는 초기 시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수용의 자세와는 달리 숙명적 비극성을 담백하게 받아들여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좀더 성숙한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1966정현종(鄭玄宗) 등과 함께 동인잡지 《사계》를 발행했다.

1968마종기(馬鍾基), 김영태(金榮泰)와의 3명의 공동시집 《평균율 1》을 출간하고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열하일기》 《전봉준》 《허균》 등의 시를 비롯한 이 시기 이후의 시에서는 연가풍의 애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모순을 역사적·고전적 제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로 이어져 모더니즘으로 자리잡았으며,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에서 더욱 확실히 나타난다.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노래한 《계엄령 속의 눈》 등의 사회비판시는 예각적인 상황의식을 표출하기보다는 암시와 간접화의 표현법을 사용함으로써 사회문제를 한차원 높게 작품화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이어 나온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에서는 작가의 독특한 시법인 극서정시의 실험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995년 《현대문학》에 연작시 《풍장 70》을 발표함으로써, 1982년 《풍장 1》을 시작으로 14년에 걸쳐 죽음이라는 주제를 계속적으로 발표해 문단의 화제가 된 연작시를 마감했으며, 이 연작시는 시집 《풍장(風葬)(1995)으로 발행되었다. 시인의 죽음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시집은 독일어판으로도 출간되었다.

새로운 변화를 시적 생명력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시인은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개성적인 극서정시와 장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해 문단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대문학상(1968), 한국문학상(1980), 연암문학상(1988),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상(2002)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시집 《열하일기》(1972), 《삼남에 내리는 눈》(1975),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1988),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노래》(2000) 등이 있다. 이밖에 시론집 《사랑의 뿌리(1976)와 산문집 《겨울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4), 《시가 태어나는 자리》(2001),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