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물고기] (닐 슈빈 지음, 김영사, 2009)  '맺는 말' 중에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나는 최근에 동물원, 박물관 수족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방문자가 되는 것은 내게는 기묘한 경험이다. 나는 박물관 수집품을 연구하고 가끔 전시회 기획을 돕기도 하며 그런 장소에서 수십 년 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가족과 놀러 갈 때면 나는  '직업 때문에 세상과 인체의 아름다움과 숭고한 복잡성에 대해 자칫 무감각해질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는다. 나는 수백만 년 역사과 기이한 고대 세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글로 쓰지만, 내 관심은 대체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고 분석적이다. 그런 내가 요즘은 아이들과 더불어 몸으로 과학을 느낀다. 과학을 향한 내 사랑을 처음 키웠던 장소들을 함께 방문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에 아들과 함께 시카고의 과학산업박물관에 갔을 때, 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정기적으로 그곳을 찾았다. 박물관 중앙에 거대한 모형 철도가 있었다. 나는 시카고에서 시애틀까지 운행한다고 쓰여 있는 작은 철로 위의 모형 기관차 뒤를 쫓으며 전시장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차광들의 전당이라 할만한 그곳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아들과 나는 어느 날엔가 박물관의 뒤쪽 전시실로 가보았다. 기차 모험을 즐기는 간간이 실물 크기의 트랙터나 비행기로 진출한 적은 있어도, 구석의 전시실까지는 가본 적은 없었다. 박물관 뒤편에는 헨리 크라운 우주 센터가 있었다. 천장에 모형 행성들이 매달려 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추진되었던 우주 탐사 계획의 기념품들이 우주복과 나란히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박물관의 뒷방이라면 앞쪽 전시실로 진출하지 못한 하찮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겠거니 하고 지레짐작했다. 나는 겉에 상처가 잔뜩 난 우주 캡슐을 보고 있었다. 방문객들이 그 주변을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었는데, 대단해 보이는 물건은 아니었다. 썩 작은 데다가 대충 만들어진 것 같아서 그다지 중요한 전시물일 것 같지 않았다. 안내문도 형식적이었다. 나는 안내문을 거듭 읽은 끝에 갑자기 그 내용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달았다. 그것은 아폴로 8호 우주선의 진짜 사령선이었다. 제임스 러벨, 프랭크 보먼, 윌리엄 앤더스를 태우고 인류 최초로 달 근처를 비행하고 돌아온 그 우주선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 방학 때 발사와 귀환 과정을 열심히 눈으로 쫓았던 바로 그 우주선을, 서른여덟 해가 지난 지금 아들과 함께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우주선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우주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느라 상처가 가득했다. 나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를 붙잡고 그 물건을 설명해주려 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감정이 벅차올라 목이 메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몇 분이 지나자 나는 평정을 되찾았고, 아들에게 달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아들이 더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할 이야기가 있다. 내가 왜 말문이 막히고 감정에 북받쳤는가 하는 것을 말이다. 아폴로 8호는 우주를 이해의 대상으로 삼고 설명해내는 과학의 힘을 상징한다. 우주 탐사 계획이 과학 활동이냐 정치냐 하는 점을 놓고 구구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 핵심만큼은 1968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폴로 8호는 좋은 과학을 발전시키는 일에 연료처럼 힘을 제공하는 낙관주의의 산물이었다. 우리가 미지의 대상을 만났을 때 의혹이나 공포, 미신으로 후퇴하는 대신, 오히려 계속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우주 탐사 계획이 달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놓았듯, 고생물학과 유전학은 우리 자신을 보는 시선을 바꾸고 있다.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한때 까마득하게 멀어서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던 것이 어느새 우리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발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을 통해 해파리, 벌레, 쥐 같은 여러 생물의 내적 작동 방식을 밝히는 시대 말이다. 우리는 과학 최고의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을 어렴풋이 찾아가고 있다. 인간을 다른 생명체들과 다르게 만드는 유전적 차이가 무엇이냐 하는 수수께끼이다. 여기에 더해, 고생물학의 중요한 발견들이 최근 20년 동안 밝혀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즉, 새로운 화석들과 새로운 화석 분석 방법들이 비교적 최근에야 등장했음을 감안하면)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인류 역사의 진실들을 정확하게 짜 맞추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수십억 년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돌아볼 때, 생명의 역사에서 혁신적이거나 독특했던 것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재료를 재활용하고, 재조합하고, 재배치하는 등 새 용도에 맞게 변형시켜 이루어낸 성취들이었다. 바로 우리 몸 구석구석, 감각기관에서 머리까지, 나아가 몸의 체제 전체에 담긴 이야기다.

  수십억 년 생명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직면한 근본 과제는 인체 기관들의 작동 방식과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를 알아내는 일이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의 공통 속성들에서 어떻게 인간 특유의 몸과 마음이 솟아났는지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에 살았던 가장 보잘것없는 생명체들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찾고 인간이 겪는 질병들의 처방을 찾는 것, 나는 그것보다 더 아름답고 지적으로 심오한 작업을 달리 상상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