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11월 16일(水)
생각하는 인간… 뇌에 ‘가상세계’ 만들어 현실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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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송재우 기자 jaewoo@

- 박문호의 뇌과학 이야기… 꿈, 기억, 그리고 현실 

뇌는 스스로 문을 열고 닫는다.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에 따라 뇌의 상태가 전환된다. 뇌는 낮의 각성상태와 밤의 수면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신생아는 각성과 수면 상태를 교대로 자동스위치처럼 교번한다. 자라면서 낮과 밤의 주기에 따라 수면 시간이 밤에만 집중하게 된다. 수면 상태도 서파수면과 렘수면의 두 가지 상태로 구분된다. 출생 직전의 태아는 24시간 렘수면 상태이다. 꿈은 렘수면 시에 80%, 비렘수면인 서파수면에서 20% 발생한다. 렘수면의 꿈은 놀람 반응으로 가득한 운동성이 풍부한 내용이며, 서파수면의 꿈은 시각 장면의 반복이 흔하며 이야기로 엮어지지 않는다.

낮 동안에는 관심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정신활동이 진행된다. 반면에 렘수면 꿈에서는 등장하는 장면에 따라 주의가 분산된다. 변화하는 꿈의 내용에 따라 주의가 분산되지만 아세틸콜린의 작용으로 꿈에 등장하는 기억 단편들이 연결되면서 꿈의 짧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꿈에서 다음장면을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주의력 결핍으로 기억 단서에 제한 없이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낮 동안에도 주의가 산만해지면 상상과 공상이 펼쳐진다. 각성 시 주의력 분산은 일시적이지만 꿈에서 주의력 분산은 본질적이고 지속적이다. 뇌간 청반핵에서 분비되는 노르에피네프린의 작용 여부에 따라 주의집중과 주의력 분산이 각성과 꿈이라는 두 개의 뇌 상태를 만든다. 낮 동안에는 감각의 폭주와 목적 지향성으로 뇌는 각성된 상태를 유지한다. 목적 지향성이 사라진 뇌는 공상에 빠지거나 멍해진다.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약해진 상태인 꿈과 공상은 기억되기 어렵다. 

낮의 각성 상태에서 목적 지향성과 감각 입력을 제거한 상태가 렘수면 꿈의 상태와 비슷해진다. 목적 지향성이 없는 상태는 쉽게 생기지만 감각 입력 차단은 쉽지 않다. 꿈과 현실의 비교는 새벽에 잠에서 깬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방금 꾼 꿈과 각성상태를 면밀히 오랫동안 살펴보아야 한다. 깜깜한 방에서 그냥 누워 목적 없이 생각을 방치할 때 전개되는 뇌의 과정이 렘수면의 상태와 비교할 만하다. 아무런 목적의식이 없으면 뇌가 인출하는 기억에 제한이 없어지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매 순간 맥락 없이 변화한다. 상상과 렘 상태의 꿈은 주의력이 소멸된 점은 동일하지만 렘수면에서는 강한 정서가 동반한다. 꿈은 정서의 시각적 상영이다. 그리고 꿈에서는 분노와 공포가 주된 정서이다. 공포감을 일으키는 정서적 상태가 먼저 생성되고 그 상황에 부합하는 기억 단편을 인출하므로 꿈에서는 꿈의 내용과 정서가 부합된다. 렘수면 꿈에서는 내측 전두엽, 편도체, 해마, 해마방회, 전대상회가 활발히 동작한다. 그중에서 전대상회와 편도체가 특히 활발하다. 꿈에서 활성화되는 영역은 주로 감정 관련 영역으로 꿈에서는 전전두엽 대신 정서 담당 영역이 핵심 역할을 한다. 꿈속의 시각적 장면들은 연합 시각피질에 저장된 기억이 재료이지만 꿈에서는 언어와 관련된 왼쪽 하두정엽의 작용은 약해지고 은유적 표현과 관련된 오른쪽 하두정엽이 활발해져 꿈은 언어의 직접 표현보다 정서의 은유적 표현이 우세하다. 그래서 꿈 내용은 무슨 암시로 가득하다고 느껴지고 우리는 꿈의 의미를 해석하려 노력한다. 꿈은 잊히도록 진화해왔다. 하지만 잊히지 않은 꿈은 현실이 된다. 

렘수면 꿈에서는 전전두엽의 활성이 약화된다. 그 결과 꿈의 불연속성과 기질정신증후군이 나타난다. 꿈의 놀라움은 주로 꿈 장면이 맥락 없는 불연속이기 때문이다. 꿈에서는 시간, 장소, 사람, 행동이 수시로 바뀐다. 꿈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와 시간이 혼란스럽게 바뀌는 이유는 시간적 순서를 생성하는 전전두엽이 거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꿈의 내용은 원인과 결과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각성 시 논리적 사고는 전전두엽이 시간과 장소에 적합한 순서대로 기억을 인출해 연결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뇌 정보처리 과정이다. 렘수면 꿈의 기질정신증후군은 환각, 작화, 기억상실, 그리고 방향상실이 있다. 감각 입력이 없는 상황에서 작동하는 지각을 환각이라 한다. 감각 없이 전개되는 시지각이 렘수면 꿈의 주된 내용이어서 꿈은 환각과 같다. 낮 동안 내면 상태에 몰입하면 외부감각이 입력되지 않고 기억에만 의존하는 뇌 작용이 전개되어 생각의 흐름이 생긴다. 그래서 놀랍게도 생각과 꿈은 외부감각이 입력되지 않는 비슷한 뇌 작용이다. 서파수면의 뇌파는 느리고 큰 전압의 동기된 파형이다. 그러나 렘수면과 각성상태의 뇌파는 빠르고 전압이 낮은 비동기파로 거의 비슷하다. 각성과 렘수면 동안 뇌파의 유사성은 꿈과 각성상태를 살펴보는 관점을 차이점보다 유사성에 더 주목하게 한다.

대략 1억4000만 년 전 원시적 포유류인 바늘두더지는 서파수면만 가능하며 이후에 진화한 포유류인 유대류와 태반포유류에서 렘수면이 확실해진다. 그러나 동물이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은 명확히 확립되어 있지 않다. 잠을 자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다양한 학설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설명은 수면과 기억의 상호관계이다. 서파수면은 해마에서 일시적으로 저장된 사건기억이 대뇌 연합 피질로 이동하는 현상과 관련된다. 렘수면의 꿈은 대뇌피질로 이동한 기억이 공고화되는 과정과 관계된다. 이처럼 수면과 꿈은 기억능력의 진화와 관련된다. 꿈에서는 외부세계의 공간과 시간 정보를 반영할 수 없으며 내부의 논리적 사고의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정서의 강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꿈에서는 오직 정서적 내면 상태만 존재한다. 객관 외부세계의 비교 대상이 없는 상황에서 꿈은 시각과 운동이 가득한 독자적인 환상의 세계상을 상영한다. 그래서 꿈은 꿈을 깨기 전에는 꿈인지를 모른다. 꿈이라는 자체 완결적 세계 속에서 나는 맹목적으로 움직이고 놀라움을 느낀다. 꿈속에서 나는 과거의 기억에 접근할 수 없는 기억상실 상태이다. 꿈에서 나는 과거가 없는 존재지만 감정의 뇌가 영화감독이 되어 시각이미지를 불러와서 은유적으로 상영한다. 낮의 ‘현실’이라는 영화의 감독이 전전두엽이라면 꿈속 드라마의 감독은 정서의 뇌이다. 전전두엽이 작동하는 현실은 논리적 맥락으로 예측 가능한 드라마이지만, 꿈은 시간과 공간이 불연속인 돌발적인 상황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현실이 인과로 연결된 연속의 세계라면 꿈은 예측이 불가능한 불연속 세계이다.  

객관 세계는 감각 입력을 통해 뇌가 지각으로 재구성한 세계이다. 즉 세계는 뇌의 창조물이다. 현실 세계는 감각과 지각이 함께 작동하는데, 간혹 생각에 몰입하면 지각만이 작동한다. 대상에 대한 감각 입력이 없는 상태에서 지각만이 작용하는 현상이 바로 환각이다. 환시는 정상인도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환청은 대개 병적인 상태와 관련된다. 우리가 무언가에 몰입해 생각하면 눈앞에 바로 존재하는 사물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의식은 외부자극과 내부자극 사이로 분배될 수 있다. 몰입된 생각과 꿈에서는 전적으로 내부자극에만 의식이 전념한다. 그래서 생각에 몰두할수록 감각은 차단되고 완전한 내면의 상태만 존재하게 되어 꿈과 같은 상태가 된다. 꿈과 몰입된 생각은 내면 상태만 존재하는 환각 상태이다. 즉 생각이 환각일 수 있다. 생각이 끊어지는 틈새로 감각적 현실이 순간순간 확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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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범주화된 지각의 언어적 지시과정이다. 그리고 생각은 지각의 상위과정이 아니고 기억처럼 지각처리 과정의 한 단계이다. 단편적 감각 입력이 ‘무엇’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내는 창조적 과정이 지각이다. 감각 대상이 무엇인지 아는 과정이 곧 기억저장과정이 된다. 감각된 대상의 의미를 밝히는 과정이 생각이 된다. 그래서 기억과 생각은 지각의 한 형태이다. 지각은 그 자체가 만들어가는 창의적 과정이기에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생각은 기억의 이미지를 연결하는 연상과정이며 생각에서 기억은 주로 언어로 표상된다. 언어의 핵심은 사물과 사물을 지시하는 소리의 대응관계이다. 이 지시관계를 나타내는 단어 그 자체는 관습적으로 생성되며, 실체가 아닌 상징이다. 하지만 상징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 환각과 같다. 생각은 현실을 반영하는 환각이란 관점에서 꿈과 같고, 그리고 생각은 언어에 의한 상징적 표상이므로 실재가 없는 환각과 같다. 결국 내면에만 몰입된 생각과 꿈은 감각 세계가 배제된 환각의 세계이다. 신체감각이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논리적 사고 없이 흥미로운 영화에 몰입해 끝없이 영화를 본다면 현실과 영화는 구분하기 어렵다.  

가상세계는 인공지능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각에서 지각을 생성하면서부터 지구라는 행성에서 출현했다. 지각은 그 자체가 세계를 흉내 낸 환각이며, 대상에 대한 지각을 상징인 언어로 표상하는 과정이 바로 생각이다. 그리고 상징은 뇌가 스스로 내부적으로 생성한 자극이다. 그렇다면 생각도 그 자체로 환각이다. 우리는 감각의 자극으로 환각에서 벗어날 때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가 공존하는 현실 세계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감각입력이 폭주하는 물리적 자연에서 동물은 감각에 구속된다. 동물은 이전 사건에 대한 기억이 약하다. 그래서 동물은 구체적 사건에 즉시 반응해야 한다는 긴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꿈과 생각이라는 특별한 지각과정이 진화하면서 물리적 인과관계의 족쇄에서 벗어나서 제한 없는 가상세계를 출현시켰다. 물리적 공간의 인과율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은 자연 속에 가상세계라는 또 하나의 자연을 탄생시켰다. 이른바 에델만이 이야기하는 세컨드 네이처이다. 자신의 문제에 몰입할수록 생각은 자신만의 구체적 현실이 되고, 모든 사람은 각자 고유한 현실을 창조하게 된다. 현실이 생각에 의해 더욱 심각해질수록 감각이 차단되어 비현실적이 되는 역설이 생겨난다. 그래서 현실적인 사람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는 비현실적 생각과 가상세계에서 해결해준다. 전두엽이 처리해야 할 현실 문제에 몰입할수록 감각이 사라지고 기억에만 의존한 강한 생각이 만들어진다. 결국 생각만이 존재할 때 생각은 환각이 되고 완벽한 가상세계가 출현한다. 결국 우리의 현실도 환각이다.

< 문화일보 10월 19일자 24면 2회 참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