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마귀가 겁 없이

        수레 앞에 버티고 서서 한번 해보자고 덤비는 것이지요.

        참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짓이지만, 시도 그런 것 아닐까 해요.

        아름드리 나무 기둥을 뽑겠다고 부둥켜안고 용써보는 것,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 인'하는 것. 그거라도 안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 《무한화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절이다.

   마지막이라서 특별할 게 있겠는가마는 내 가슴에 특별하게 다가와 꽂힌 구절이다.

 

   그렇다. 용써보는 것이다. 

   토할 것 같은 실존의 장에서 공부라도 안 하면

   내가 이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 있겠는가?

 

   그렇다고 뜬구름으로 시작하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성현의 말씀에 귀 기울인 적은 있으나 종교의 문턱을 넘은 적은 없다.

   과학을 좋아했거니와 이성적 합리성 아니고는 나를 설득할 유혹은 없었다.

   현실적 필요로 인해 불교명상을 9년 동안 실천하고 있지만,

   두루뭉실 손에 잡히지 않아 늘 답답했다.

   이래저래 과학공부가 절실했다.

 

   과학적 사유를 표방하는 단체는 많겠지만,

   내가 박자세를 선택한 계기는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의 메모 한 구절이었다.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 www.mhpark.co.kr 

      (박문호 - 우리 나라 최고의 뇌과학 전문가)

 

   뇌과학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고,

   평소 그쪽 얘기를 자주 하던 선생님에게 자문했더니 내게 돌아온 쪽지였다.

   다마지오, 드루 등 몇몇 뇌과학자들의 책과 함께.

   이것이 내가 박자세와 인연을 맺게된 과정이다.

   그리고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난 그 선생님의 표현이 적절했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고 있다.

 

   오랫만에 글앞에 앉아 박자세 3년 반을 돌아보니

   안도의 한숨이 흐른다.

   긴 시간 유예할 수밖에 없었던 과학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안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긴장을 동반하지만,

   그건 내가 감수할 몫이다.

   뭐라도 해봐야 휴회 없을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