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과학 대중 강의를 무려 14년!

[심재율의 과학자 이야기] 박문호 ETRI 박사


‘과학의 대중화’는 악순환을 가져올 우려가 있으니, ‘대중의 과학화’로 선순환을 일으켜야 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인 박문호 박사는 과학지식 확산의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선 개척자이다. 대중의 자연과학 지식을 높이자고 앞장서자, 수천 명의 어른들이 그의 뒤를 따라 고난의 순수과학 공부에 뛰어들었다.


순수과학 학습 해외탐사만 벌써 16번째


지난해 12월 8일 미래부는 2015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개인 수상자로 박문호 책임연구원 등 3명을 뽑았다. 조혜경 EBS 과학다큐멘터리 PD, ‘무한상상실’에서 앱 개발과 아두이노(자유 조립형 전자기기) 교육에 힘쓴 권명희 인천대 교수도 수상자로 뽑혔다.


'박자세'는 뉴질랜드로 16차 해외탐사를 떠났다.

‘박자세’는 뉴질랜드로 16차 해외탐사를 떠났다. ⓒ 박자세


박문호 박사는 전자공학 박사이면서도 무려 14년 동안 일반인 대상으로 뇌과학·물리학·우주과학 등 오로지 ‘순수과학 강연’을 했다.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박자세)라는 시민 학습 동아리를 조직해 몽골 탐사, 호주 탐사 등을 떠나고 책도 출간했다. 지난 10일 박자세는 16차 해외학습탐사지인 뉴질랜드로 떠났다.


박 박사는 ‘대중의 과학화’ 운동을 한다. 과학이 어렵다고, 과학계 인사들은 수 십 년 동안 ‘과학의 대중화’를 내세웠다. 어려운 내용은 알아듣기 쉽게, 복잡한 수식은 절대 꺼내놓지 말고, 대중들이 어렵다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과학자가 설명을 잘 못 한 것이야~ 라고 되뇌이고 되뇌었다.


박 박사는 반대로 뒤집었다. 무슨 소리, 기초가 없는데 어려운 것이 어떻게 이해가 되는가? 이해하기 보다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지. 익숙해지려는 노력도 안하면서 어떻게 순수과학을 이해하려는가?


박 박사가 보기에 과학의 대중화는 점점 더 대중들로 하여금 과학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그래서 박 박사가 추진한 것이 바로 대중의 과학화이다. ‘엄밀한 과학’을 가르쳐서 대중들의 과학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발상이다.


박 박사는 “우리나라 어른들이 대학졸업 이후 정년퇴임까지 과학교육의 공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보기에 어른들이 30년 전 고등학교 때 배웠던 과학지식은 지금 수준으로 보면 중3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른들은 과학적 갈증을 종교나 문화에서 얻으려고 했다. 이런 상태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면 미래방향성에서 착오가 생기기 쉽다.


“과학의 대중화는, 말하자면 부드러운 죽을 주라는 것인데, 죽은 위장이 약하거나 아플 때 잠시 임시방편으로 주는 것이지 1년 내내 죽을 주면 안된다.” 그러면서 박 박사는 “우리가 살 길은 대중의 과학화이다”고 강조한다.


체질개선하려면 ‘대중의 과학화’가 살 길


그것이 가능할까? 박 박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가능할 것 같다. 대중의 과학화를 문화현상으로 바꿔 많은 사람이 동참해야 한다.


마라톤을 보면 알 수 있다.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동참하는 일반인이 1만명이 됐다. 아무 대가도 없이 훈련해서 나간다. 풀코스 도전은 꿈도 못 꾸던 평범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참여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박문호 박사 ⓒ 심재율 / ScienceTimes

박문호 박사 ⓒ 심재율 / ScienceTimes


런데, 지금 이 과학시대에 그 중요하다는 순수 과학은 훈련할 생각을 안한다고? 과학이 대중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배우려 들지 않는다. 마라톤은 힘들어도 많은 국민이 참가하게 됐듯이, 순수 과학이 힘들어도 많은 국민들이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훈련하듯, 대중의 과학화를 달성하려면, ‘엄밀한 자연과학’을 추구해야 한다. 엄밀한 자연과학은 사회에서 공인된 과학을 말하는데 이를 가장 잘 정리한 것은 교과서이다. 자연과학 대학교과서는 그 분야의 대가들이 수 천 편의 논문을 3~5년 주기로 집대성해서 쓴 것이다.


대학 교과서는 천 편 이상 논문이 레퍼런스로 들어가는 인류 노력의 집대성이다. 단행본은 독자들이 원하는 기호 따라 나오고, 독자들이 선택한다. 그러나 교과서는 교수가 선택한다.


박 박사는 인문학 강의모임인 수유너머에서 5년 동안 천문학 등을 강의하고 불교TV와 YTN 사이언스에서 뇌과학 등을 강의했다. 대전에서 출범한 독서클럽인 백북스(100books) 활동을 7년간 거쳤다.


7년 전 부터는 서울 건국대학 강의실에서 일요일 마다 4시간씩 집중강의를 해 왔다. 강의는 완전히 순수 과학만 한다. 자기 전공분야인 전자공학 조차 응용과학이라 배제했다. 입자물리학·일반상대성이론·양자역학·열역학·천체물리학·분자생물학·진화학·지질학·생화학·뇌과학 등이다.


4년 전에는 백북스에서 완전히 갈라져 나와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http://www.mhpark.or.kr)을 조직했는데 회원수가 5,400여명으로 늘었다.


강의는 철저히 검정받은 과학만 취급하므로 교재는 교과서와 논문이다. 강의시간엔 파워포인트를 쓰지 않고, 복잡하거나 어려운 수식이나 분자식을 그대로 소개한다.


그렇다면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한 그가 지금 새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무엇일까?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암석학·지질학이 양자역학보다 더 어렵다. 물리학이나 양자역학은 젊은 시절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만, 암석학은 경험이 축적되면서 복합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노련함이 있어야 한다.”


30년 독서를 했는데 10년 전 까지는 단행본을 많이 봤다. 그러나 엄밀한 과학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최근 5년 간은 60%는 교과서를 보고 40%는 논문을 본다. 단행본은 몇 권을 빼면 거의 안 본다. 왜냐하면 교과서는 어떤 단행본 보다 탁월하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율곡 이이(李珥) 선생의 ‘10만 양병설’이 새 옷을 입고 나타난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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