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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주 북서부 해안도시 브룸의 ‘해넘이 낙타 투어’.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여행
북서부지역 관광 거점으로 떠오른 휴양도시…진한 옥빛 인도양 해변의 청정 매력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인도양에 접한 해안도시 브룸. 서호주의 주도인 퍼스에 이은 인구 5만명의 서호주 제2의 도시다. 깨끗한 바다와 이색적 지형의 해안들, 다양한 경관과 볼거리로 최근 북서부지역 관광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휴양도시다. 브룸은 호주의 대표적인 아웃백 지역이자 미개척지로 불리는 킴벌리 지역으로 들어서는 관문이기도 하다. 브룸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대부분 킴벌리 푸눌룰루국립공원 안에 있는 ‘벙글벙글 레인지’로 향한다. 벙글벙글(Bungle Bungle, 번들번들이란 식물에서 유래한 지명)은 2억5000만년 전 바다 밑에서 형성돼 드러난, 웅장한 사암 지형이다.

이번 여행에선 아름답고 깨끗한 소도시 브룸 안팎의 볼거리들을 둘러봤다. 하루 정도면 주요 명소들을 둘러보며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다 둘러보고 브룸의 한 식당에서 내는 달콤한 ‘망고 맥주’ 한잔을 들이켠다면 누구든 기분이 좋아져 벙글벙글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브룸이란 지명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다. 진주조개 때문이다. “1900년대 초까지는 전세계 진주의 80%가 여기서 생산돼 공급됐다.” 브룸 시티투어 가이드 요세 밴더웰드(66)가 바닷가에 자리한 오래된 건물을 가리켰다. “진주조개 껍질을 벗기던 작업장(탈각장) 중 한 곳”이다. 당시 진주조개잡이가 호황을 누리자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진주 생산에 매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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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룸 시내 시티투어 버스.
19세기 진주조개
대량번식 알려지면서
진주생산 위한 도시 형성

브룸은 애초부터 진주조개로 인해 형성된 도시다. 1883년 이곳 앞바다에 진주조개가 대량으로 번식하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이주해와 도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브룸이란 도시명 자체가 당시 총독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유럽 이주민들에게 홀대받아온 호주 땅의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고통은 브룸의 진주에도 아로새겨져 있다. 당시 업주들은 조개껍질 벗기는 일손이 모자라자 애버리지니 어린이들을 강제로 끌어다 건물에 가두고 일을 시켰다고 한다. 특히 임신한 애버리지니 여성을 데려다가 물속에 들어가 조개를 채취하는 잠수작업을 시켰는데, 임신하면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브룸 시내 한복판엔 일본인 묘지와 중국인 묘지가 있다. 진주조개 작업을 하다 불어닥친 허리케인에 희생된 사람들과 잠수병으로 숨진 두 나라 사람들의 묘지다. 그러나 희생된 애버리지니의 묘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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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룸의 바위 해안 갠시엄 포인트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관광객들.
브룸의 진주 생산 산업은 1950년대 인공 진주가 나오면서 쇠퇴해 현재는 1000여명만이 진주 생산에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브룸은 깨끗하고 선명한 진주를 빠른 시간 안에 생산하는 것으로 이름높다. 거리를 거닐며 즐비한 진주 판매장과 진주조개 채취 체험장, 재현해 놓은 진주조개잡이 배 등을 찾아볼 만하다. 5대째 진주를 파는 매장도 있다.

도심의 옛 전신국 건물, 은행 건물 등은 모두 진주로 호황을 누릴 때 지어진 문화유산들이다. 은행 건물은 불타버릴 뻔하다 살아남았다. 오래전 한 시민이 은행의 거래 방식에 불만을 품고 은행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주변 건물들이 모두 타버리고 은행 건물만 멀쩡하게 남았다고 한다.

사라질 뻔하다 살아남은 것에는 숲이 아름다운 ‘미니아 공원’도 있다. 시쪽은 공원 자리에 본디 있던 울창한 숲을 없애고 다른 용도로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애버리지니들이 “대대로 아이들에게 생존하는 법과 땅의 순환, 자연의 법칙을 가르쳐온 숲인데 훼손할 수 없다”며 결사반대해 결국 공원으로 조성해 보전하게 됐다고 한다. 브룸 거리를 아름답고 이색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로수로 심어진 대형 바오밥나무들이다. 카리지니국립공원 등 필바라 지역에선 볼 수 없었던, 밑동 쪽만 뚱뚱한 바오밥나무들이 거리마다 묵직한 자태로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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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으로 열린 브룸의 해안. ‘세계로 향한 문’이라 부르는 구멍바위가 보인다.
인도양 접한 케이블 비치
해넘이 때 사람들 북적
낙타 타고 일몰 감상도 인기

브룸의 인도양 바다 빛깔은 진한 옥빛이다. 서너곳에 있는 모래 해변과 바위 해변 중 가장 이름높고 인파가 몰리는 곳이 길이 22㎞에 이르는 케이블 비치다. 한낮에 해수욕객·낚시객들만 간간이 보이던 그 넓은 해변이, 해 질 녘이 되자 해변과 해변이 보이는 잔디밭, 잔디밭 옆 난간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북적였다. 해넘이를 감상하려는 이들이다. 특히 잔디밭엔 눕거나 앉은 사람, 둥글게 모여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 맥주 캔을 들고 쌍쌍이 마주 앉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북새통을 이뤘다.

더 이색적인 풍경을 모래 해변 쪽에서 만났다. 길고 긴 낙타 행렬. 해가 지는 시각에 맞춰 낙타를 타고 이동하며 해넘이를 감상하는 이들이다. 낙타 해넘이 투어는 브룸 여행의 필수 코스로 여길 만큼 인기 있다. 해 지는 쪽을 바라보며 모래밭에 앉아 있다가 낙타 행렬이 지날 때 석양 풍경을 사진 찍는 이들이 많다. 케이블 비치는 모래밭이 얼마나 단단한지 1920년대엔 비행장으로 썼다고 한다. 또 하나 볼만한 해변이, 오래된 등대가 있는 ‘갠시엄 포인트’라 불리는 바위 해안이다. 수중 화산 폭발로 나온 화산재가 퇴적돼 이뤄진 응회암 지대인데, 커다란 붉은 바위들이 깨지고 갈라지고 뒤엉켜 널려 있는 기이한 경치를 보여준다. 이 해안 얕은 바닷물 속엔 1억2000만년 전에 찍힌 공룡의 발자국들이 깔려 있다.

이 해안 바위 바닥 한쪽에 ‘아나스타시아 풀’이라고 부르는 움푹 파인 구덩이가 있다. ‘옛날 이곳 등대지기가 아내가 병을 앓아 몸을 움직일 수 없자, 바위에 이 풀을 파고 밀물 때 물을 받아둔 뒤 아내를 안고 와 이곳에서 씻어주기를 매일같이 해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풀 이름이 그의 아내 이름이다.

브룸을 가장 쉽고 빨리 둘러보는 방법이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것이다. 2시간30분 동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대표적인 볼거리들을 섭렵할 수 있다. 60호주달러.

travel tip

6~10월 여행하기 좋아

 가는 길 싱가포르를 경유해 서호주 퍼스로 간다. 싱가포르항공(www.singaporeair.com)이 인천~싱가포르를 매일 4회, 싱가포르~퍼스는 매일 3회씩 운항한다. 인천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해 퍼스까지 운항한다. 총 비행시간 11시간 남짓. 싱가포르 항공은 전 좌석에 아이팟 및 아이폰 연결 단자를 설치해 고객이 찍은 사진·영상을 모니터를 통해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싱가포르~퍼스 노선의 ‘A330-300’ 이코노미 좌석엔 110V 전원이 설치돼 있다. 퍼스에선 버진오스트레일리아항공을 이용해 뉴먼·브룸 등으로 간다. 뉴먼까지 2시간 소요.

 아웃백·부시 아웃백은 호주 내륙의 건조한 불모지를, 부시는 아웃백보다는 조금 여건이 나은 황무지를 말한다. 두 지역은 흔히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곳이냐 여부로 구별한다. 대체로 해안에서 150㎞ 정도까지 내륙을 부시, 그 안쪽의 사막지역이 아웃백이라고 보면 된다.

 서호주 별자리 여행 정보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www.mhpark.co.kr)은 대학 과정의 자연과학 교과서를 중심으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일반인 학습모임. 분자생물학·천체물리학·뇌과학 등을 집중적으로 학습한다. 

이 모임이 3회에 걸쳐 서호주를 답사한 뒤 올해 초 출간한 책 <서호주>(엑셈)를 참고할 만하다. 천체·지질에 대한 전문지식을 곁들인 생생한 서호주 탐방기와 우주 및 지구의 탄생, 호주의 동식물, 애버리지니 등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서호주관광청 한글 누리집(www.westernaustralia.com)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기타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콘센트 형태가 달라 다기능 멀티탭을 준비해야 한다. 1호주달러는 약 1200원. 6~10월이 여행 적기.

브룸(서호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